은행들이 퇴직연금 계좌에서 제공하는 금 투자 상품이 턱없이 부족해 투자자들의 선택지가 제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퇴직연금 계좌에서 투자할 수 있는 금 ETF 상품으로 한국투자신탁운용의 ‘ACE KRX금현물’만 취급하고 있다. 이 ETF는 국내 금 현물에 투자하는 상품이라 국내 금값이 국제 금값보다 비싸 괴리가 발생하는 ‘김치 프리미엄’을 고스란히 감수해야 한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중 퇴직연금 계좌에서 국제 금 시세를 추종하는 ETF에 투자할 수 있는 곳은 NH농협은행이 유일하다. 해당 계좌에서는 김치 프리미엄 우려를 피할 수 있는 신한자산운용의 ‘SOL 국제금’, 삼성자산운용의 ‘KODEX 금액티브’ ETF를 매매할 수 있다.
일러스트=챗GPT 달리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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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이 제한적인 금 투자 상품을 취급하는 이유는 진입장벽이 높은 탓이다. 은행이 특정 ETF를 퇴직연금 계좌 판매 상품으로 넣으려면 각 은행은 비예금상품위원회를 열어 내부 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또 은행 계좌는 유동성공급자(LP)를 거쳐야 하는 신탁 구조라 실시간 매매가 불가능하다. 이에 비슷한 ETF가 이미 판매 상품 라인업에 있다면, 은행들은 새로운 상품을 추가하길 꺼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 ETF의 경우 2021년, 가장 먼저 출시된 ACE KRX금현물이 시장을 선점한 상태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은행 퇴직연금 상품으로 들어갈 자격을 갖춘 금 ETF들이 많지만, 대부분의 은행은 이미 ACE KRX금현물을 담았기에 추가적인 라인업이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모습”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최근 3개월(7월 24일~10월 24일)간 ACE KRX금현물에 대한 은행 순매수액(신탁·퇴직연금 포함)은 2720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 SOL 국제금·KODEX 금액티브 순매수액(총 8억2000만원)의 330배 이상이다.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도매상점에서 고객들이 상품을 고르고 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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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선 은행의 이러한 행태가 투자자 선택지를 제한하고 투자자들의 김치 프리미엄 리스크를 방치해 잠재적인 손실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KRX금시장의 금값과 국제 금값 사이의 괴리율은 24일 기준 2.98%를 기록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20%에 육박하던 김치 프리미엄이 진정된 모습이지만, 여전히 리스크는 남아있다. 지난 20~23일 나흘간 금 가격과 함께 김치 프리미엄이 빠지면서 ACE KRX금현물은 6% 가까이 하락했다. 이 기간 KODEX 금액티브와 SOL 국제금 ETF는 1%가량 하락하는 데 그쳤다.
은행들의 상품 제한으로 인해 ‘왝더독(wag the dog)’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왝더독은 ‘개의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는 뜻이다. 투자자들이 국내 금현물 ETF를 매수하면 운용사는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KRX 시장에서 실물 금을 사들여야 하는데, 은행들의 대규모 매수세가 이어지면 오히려 괴리율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금 가격이 내려가게 되면 국내의 경우 프리미엄까지 꺼지면서 하락 폭이 급격히 커질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프라이빗뱅커(PB)가 투자 권유를 하는 은행 신탁의 경우, 국내 금현물 ETF를 판매 과정에서 추천했을 때 괴리율에 대한 위험성 고지를 사전에 했는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강정아 기자(jenn1871@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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