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
2025년 들어 스테이블코인은 세계 주요국에서 빠르게 제도권으로 편입되고 있다. 미국은 지니어스법을 제정해 연방 차원의 발행 요건, 담보 관리, 이용자 보호 기준을 구체화하며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글로벌 결제 인프라의 일부로 편입시키고 있다. 이 법은 발행자의 투명한 준비금 공개와 일대일 예치 의무를 핵심으로 하며, 스테이블코인이 금융시스템의 새로운 유동성 채널로 작동하도록 제도적 틀을 제공한다. 유럽연합(EU) 역시 MiCA를 통해 자산참조토큰과 e머니토큰을 포괄하는 단일 규제체계를 마련했다.
이는 각 회원국 간 규제 차이를 줄이고, 유럽 내에서 동일한 기준 아래 국경 간 결제 및 금융서비스에서 스테이블코인을 안정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특히 MiCA는 발행자에게 자본요건, 유동성 보유 비율, 감사를 포함한 금융기관 수준의 감독 기준을 적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시아에서도 제도화 흐름은 뚜렷하다. 일본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지급수단'으로 정의해 제도권 금융법 안에 편입시켰고, 은행·신탁회사·등록된 송금업체만이 합법적으로 발행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홍콩은 2025년 5월 스테이블코인 발행자 라이선스 제도를 도입해, 자본금·리스크 관리·공시 기준을 명문화하면서 상용화 단계를 밟고 있다. 이처럼 주요국은 공통적으로 규제 명확성 확보를 통한 통제된 혁신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즉, 위험을 이유로 기술을 멈추는 대신, 위험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전략이다.
한국 스테이블코인 논의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문구에 갇혀 있다. 한국은행은 민간이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금융당국은 법적 근거 미비를 이유로 인가와 실증을 미루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규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무엇이 허용되는지 불명확하기 때문에 시장이 정지 상태에 머무는 것이다. 불허도 허용도 아닌 회색지대가 길어지면서 스타트업과 금융사는 모두 정책 리스크를 회피하고, 그 사이 해외는 명확한 프레임워크 아래 실험과 학습, 확장을 반복하며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훼손 우려와 금융위원회의 보수적 해석이 맞물리면서 인가 요건, 담보 자산 기준, 공시와 감사 범위 등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사업자는 무엇을 준비해도 '추후 판단'에 묶인다.
이러한 불확실성은 금지보다 더 큰 억제력을 갖는데, 해외가 명확한 실행 체크리스트를 통해 작은 파일럿을 허용하는 것과 대비된다. 한국은 사고가 나면 안 된다는 원칙에 갇혀 실증 자체를 막고, 데이터가 없으니 논의도 진전되지 않는다.
중앙은행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국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민간이 통화를 만든다'는 위협 서사로 해석되기 쉬워 논의의 초점이 혁신이나 효율이 아닌 통제와 억제에 쏠린다. 반면 해외 주요국은 스테이블코인을 화폐의 대체물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의 금융상품으로 보고, 거버넌스·준비금·감사·상환 규칙을 정교하게 설계하며 통화정책 범위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를 발전시킨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문제 가능성을 이유로 문제 탐지 실험조차 미루고 있으며, 작은 범위에서 빠르게 위험을 검증하는 대신 큰 틀의 논쟁과 장기 검토로 시간을 소비한다. 그 사이 시장은 달러 스테이블코인 중심으로 글로벌 표준을 형성하고 국내 논의는 뒤를 쫓고 있다. 또한 결제 인프라가 초고도화된 한국은 오픈뱅킹, 즉시이체, 낮은 수수료, 간편결제 등으로 이미 충분히 좋은 UX를 갖췄기에 스테이블코인이 '더 빠르고 싸다'는 이유만으로 채택되기 어렵다. 실사용 수요가 약하니 산업은 투자 중심으로 쏠리고, 변동성이 낮은 스테이블코인은 투자자 관심 밖에 있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Copyright © 전자신문.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