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공예전 '미래유산' 개막…박창영·박형박 부자 작품 10점 전시
옻칠·섬유공예 등 우리공예 품격 뽐내…"외국인 관람객에 인기"
박창영 작가의 '박쥐 문양 갓' |
(경주=연합뉴스) 특별취재단 = 장인의 손길로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만든 '흑립'(黑笠·갓)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원국(경제체) 정상들을 맞이한다.
'2025 경주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지난 27일 경주 천군복합문화공간에서 개막한 한국공예전 '미래유산' 2층 전시실에는 국가무형유산 갓일(입자장) 보유자인 박창영(82)과 그의 아들 박형박(50) 작가의 갓 10점이 전시돼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으로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갓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5대째 갓일을 이어온 박창영·박형박 부자는 대나무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잘라 만든 '죽사'로 갓을 만드는 장인들이다. 죽사 하나하나를 직접 손으로 꿰는 등 총 51개 공정을 거쳐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어서, 작품 하나를 만드는 데만 수개월이 걸린다. 이 때문에 작품 하나의 가격이 수천만 원에 달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쥐 문양을 새긴 '박쥐 문양 갓'과 죽사와 은사(은으로 만든 실)를 섞어 만든 '은갓'이 눈길을 끈다. 조선 시대 일부 양반들은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 등을 갓양태(갓모자의 밑 둘레 밖으로 둥글넓적하게 된 부분)에 새겼는데, 박창영은 복을 상징하는 박쥐 문양을 이 작품에 넣었다. 또 갓 중앙에 '청백리'를 상징하는 옥을 매달아 세련미를 더했다.
박영창·박형박 부자 작업 모습 |
아들 박형박도 은사로 만든 갓으로 한국 전통 기술이 현대 공예로 이어지는 문화적 연결을 선보인다. 죽사 사이에 섞인 은사가 전시실 불빛에 은은하게 빛나는 모습은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보물처럼 관람객을 매료시킨다.
이외에도 갓 중앙에 옥과 공작 깃털을 매단 죽전립(竹戰笠)과 붉은색 염색 실을 섞어 만든 주립(朱笠), 모시를 섞은 백립(白笠) 등도 관람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시를 기획한 임미선 예술감독은 28일 열린 전시 투어에서 "박창영·박형박 부자는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4명의 갓일 장인 중 두 명"이라며 "최근 케데헌의 인기 덕분인지 갓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외국인 관람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해조 작가의 '흑광률' |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인 옻칠 공예가 정해조(80) 작가의 최근작 '흑광률'은 우리 전통공예의 기술적 완성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티로폼으로 만든 원형 틀에 삼베를 겹겹이 둘러싼 뒤 옻칠을 한 작품이다.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진한 검은색 표면에 조명 빛이 은은하게 반사되는 모습이 오묘한 느낌을 준다. 작가는 천연 염색재료인 옻이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붉은색과 파란색 광택이 새어 나오도록 했다.
이날 직접 작품 소개에 나선 정해조 작가는 "옻칠의 본질 속에는 광택이 숨어있다"며 "처음에는 검은색으로만 보이지만 그 안에는 파란색이 들어갈 수 있고, 붉은색이 품어져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장연순 작가의 '중심에 이르는 길 Ⅲ' |
2008년 섬유예술가 최초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에 선정된 장연순(75) 작가의 최근작 '중심에 이르는 길 Ⅲ'도 이번 전시에서 놓쳐서는 안 될 작품이다. 산업용 유리 섬유인 테플론 메시를 엮어 기하학적인 형태의 작품을 창조해냈다. 테플론 메시로 만든 본체에 금박을 입혀 여러 층이 중첩되는 듯한 공간감을 부여한 것도 이 작품의 특징이다.
영화 '기생충'의 가구 미술에 참여한 박종선(56) 작가의 가구 공예 '트랜스_벤치 테이블'과 한국 현대 유리 공예를 대표하는 김준용(53) 작가의 유리 공예 '황혼' 등 우리 공예의 높은 기술력과 미적 감각을 뽐내는 작품 66점이 APEC 정상회의를 맞아 경주를 찾은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박종선 작가의 '트랜스_벤치 테이블 |
'미래유산' 전시와 연계해 경주 지역문화공간인 하우스오브초이에서 열리고 있는 '공생' 전시도 함께 들러볼 만하다. 경주를 중심으로 작업하며 현대 분청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어 온 윤광조(79) 작가를 비롯해 이헌정 유의정 등 주목받는 현대 도예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두 전시 모두 11월 30일까지 이어진다.
(임순현 기자)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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