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집’에 지난 26일 시민들이 남긴 참사 추모 메시지 중 일부가 글씨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훼손돼 있다. 강한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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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년간 이태원 참사 현장을 찾은 시민들은 발자국처럼 메모를 남겼다. 꾹꾹 눌러 쓴 메모지는 시민들 마음의 무게였다. 눈, 비, 바람과 함께 사계절이 3번 지났다. 어떤 메모는 찢어졌고, 어떤 글자는 습기에 번졌다. 필압만 겨우 남은 메모도 있다.
시민들의 마음을 지키고 싶은 이들이 모였다. 10·29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참사 직후부터 지난해까지 시민들이 현장에 남긴 추모 메시지를 모으는 ‘기억담기’ 활동을 했다. 올해는 시민들과 함께 그간 모았던 추모 메시지를 디지털화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데이터로 남기겠다는 취지다. 활동 초기부터 최근까지 아카이빙에 참여한 양진영씨(27), 정준현씨(가명·48)와 프로젝트를 담당한 박이현 문화연대 활동가(37)를 각각 지난 24~26일 인터뷰했다. 이들은 ‘아카이빙’은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무게’를 남기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 집’에 아카이빙 된 추모메시지에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다. 강한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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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활동가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다. 박 활동가는 아카이빙을 시작하면서 ‘Rest In Peace’ 같은 흔히 쓰는 표현들이 담긴 메모가 많은 것을 보고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박 활동가는 스스로 추모 메시지를 남기기 위해 참사 현장에 선 순간에 왜 그런 메시지가 많은지 알 수 있었다. 박 활동가는 “내가 쓰려고 하니 5분 동안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며 “상투적으로 보이는 말 아래 어떤 마음들이 있었을지 그제야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씨와 양씨는 희생자의 유가족이나 지인이 남긴 메시지가 가슴에 박혔다. “엄마의 꿈에 나와주세요”, “혜리야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끝내지 못한 졸업 작품도 너무 멋졌어 230903” 같은 메시지를 여전히 기억한다. 생존자의 메시지도 아팠다. “먼저 구조받아 죄송합니다” “같은 자리 있었는데 살아남아서 미안해요. 열심히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지만 살면서 기억할게요”, “불과 몇 분 전 제가 지나갔던 거리라서, 그 숨 막히는 느낌을 느껴서 얼마나 힘드셨고 고통스러웠을지 공감합니다” 등의 메시지가 대표적이다. 참사 현장에 출동했던 공무원이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 경찰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떤 도움도 드리지 못해 한없이 죄송하다”는 글도 인상적인 글로 꼽았다.
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메시지 아카이빙 ‘기억담기’ 활동에 참여한 정준현씨(가명·48)가 기억하는 추모 메시지. 정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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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메시지 아카이빙 ‘기억담기’ 활동에 참여한 정준현씨(가명·48)가 기억하는 추모 메시지. 정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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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담기 활동을 한 이들은 아카이빙 된 포스트잇을 “물성이 있는 추모 기록”이라고 부른다. 추모 메시지는 총 3만여건이다. A4 종이에 4~5개씩 붙여 200장씩 보관한 서류 보관함이 24개가 넘는다. 온라인 뉴스에 달린 악성 댓글과는 달리 인간성이 가미된 기록들이다. “네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다”, “다시 이런 세상에 놀러오지 말아요. 오고 싶다면 세상을 바꿔놓을게요”와 같은 기록을 보면 희망을 느낀다. 정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에게서 참사의 기억이 옅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참사 현장에 있던 3만여 개의 추모 기록 아카이브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추모했는지 체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10·29 이태원 참사 기억·소통 공간 ‘별들의집’에 지난 26일 시민들이 남긴 참사 추모 메시지가 문서 상자에 들어 있다. 상자 하나당 A4지 200장씩, 한 장당 추모 기록 4~5개씩이 붙어 총 3만여개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강한들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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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메시지 아카이빙 ‘기억담기’ 활동에 참여한 정준현씨(가명·48)가 기억하는 추모 메시지. 정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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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9 이태원 참사 추모 메시지 아카이빙 ‘기억담기’ 활동에 참여한 정준현씨(가명·48)가 기억하는 추모 메시지. 정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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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담기’에 참여한 시민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추모의 방법을 찾았다고 말했다. 양씨는 “비건을 지향해서 이태원에 자주 갔었다”며 “참사 현장에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보면서 함께 슬퍼하고 싶었는데, 아카이빙에는 참여할 여력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씨도 “참사 후 무력감을 느꼈지만, 유가족을 돕는 등 직접적인 활동은 막중하게만 느껴졌다”며 “추모 기록을 보존하면서 간접적으로라도 유족을 도울 수 있고, 무력감도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들에게 메모는 시민들의 마음만큼 무겁다. 아카이빙은 시민들이 남긴 추모의 ‘무게’를 남기는 일로 느껴졌다. 비에 젖거나 찢어진 메모지들은 시민들의 손을 거쳐 다시 태어났다. 박 활동가는 “손상이 심해 자국만 남은 메모는 따로 손글씨로 최대한 복원했다”며 “비를 맞은 메시지는 얼려서 습기를 제거하기도 하고, 곰팡이로 덮인 메모는 긁어내서 메시지를 최대한 잘 보이게 했다”고 말했다. 지난달부터는 보관했던 기록을 한 장 한 장 스캔해서 모두 이미지로 만들었다.
시민대책회의는 공론장 플랫폼 ‘빠띠’와 함께 시민 참여를 받아 스캔한 기록을 텍스트로 만들고 있다. 스캔한 메시지를 텍스트로 변화하는 광학 문자 인식(OCR)으로 한 차례 만든 뒤, 온라인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오탈자를 교정했다. 빠띠 갈무리 |
시민대책회의는 공론장 플랫폼 ‘빠띠’와 함께 시민 참여를 받아 스캔한 기록을 텍스트로 만들고 있다. 스캔한 메시지를 텍스트로 변화하는 광학 문자 인식(OCR)으로 한 차례 만든 뒤, 온라인으로 참여한 시민들이 오탈자를 교정했다. 시민들의 참여로 이날까지 2만 1000여개의 기록이 텍스트로 태어났다.
3주기를 앞두고는 참사 현장과 별들의집을 찾은 시민들이 다시 추모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시민대책회의는 올해 생긴 추모 기록도 모을 예정이다. 박 활동가는 “모든 메시지에 시민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전자화해서 공개할 생각”이라며 “텍스트 데이터로 만드는 게 끝난다면 학술 연구에 활용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이 되기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언니 오빠들 안녕하세요? 오늘 사고가 있던 곳에 처음 와봤어요. 여기, 기사에서 봤던 것보다 길이 훨씬 좁네요.. 얼마나 힘들고 아팠을까? 그저 어린 나이에 할로윈을 즐기러 온 것일 뿐인데.. 그곳에서는 항상 즐겁고 평안하기를 바랄게요..
230903 혜리야 너무 늦게 와서 미안해 졸업 축하하고 행복해야 해 끝내지 못한 졸업 작품도 너무 멋졌어
엄마의 꿈에 나와주세요
서은아 안녕 :) 인서 언니야 인사가 너무 늦어서 미안해 그래도 자주 오래 기억할테니 너무 서운해 말아줘. 웃는 모습이 참 예뻤는데 아직 그 모습이 눈에 훤해 그곳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하길 바라 종종 또 보러올게 사랑해
먼저 구조받아 죄송합니다.. 저보다 더 오래 압박 받으면서 많이 힘드셨을 텐데 부디 좋은 곳 편안히 가시길 기도드립니다....
나도 그 날 있었는데 이제야 와서 죄송합니다. 마음이 아파서 심장에 구멍이 난 것 같아요. 한동안 이 마음이 계속 갈 것 같습니다. 쉬세요. 나중에 만나요.
구해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지레 겁먹고 도망가서 죄송해요. 좀 더 용기 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부디 편히 쉬시기를 바라요..
세상에 나쁜 어른들도 있는 걸 알죠. 만약 들을 수 있다면, 볼 수 있다면 당신들을 사랑하는 사람들만 보아도 잘못한 게 아닌 거 알죠? 다시 이런 세상에 놀러 오지 말아요. 오고 싶다면 세상을 바꿔놓을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치적 책임을 모르는 자들이 애도를 입에 담아요. 분향소가 아닌 이곳에서 애도가 무엇인지 보고 갑니다.
세 번째 방문인데 이제야 글을 남깁니다. 나의 동생이거나 친구들일 너희들이 그곳에서나마 편안했으면... 올 때마다 눈물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마이 춥네... 일단 세월호 친구들과 같이 있어. 떨어지지 말구. 머잖아 만나면 술 한잔 나누세.
해가 다시 뜨고 사람들이 이 길을 다시 걸어 다니고, 밤이 되어 사람들이 다시 어색하게나마 웃음 짓고, 안부를 물으며 젊음을 보내는 날이 언젠가 오더라도 여러분들을 잊지 않을 거예요. 우리는 너무 가슴 아파하고 있어요. 부디 좋은 곳에 가셔서 편히 쉬시길 마음 모아 기원합니다. 미안해요.. 많이.. - 이태원의 한 30대 청년이
매일을 기사만 보며 울다, 정말 찬 바람이 드는 이제야 옵니다. 많이 괜찮아졌다 생각했는데 아직도 친구들의 생각에 눈물만 흐릅니다. 미안하다고, 또 미안하다고. 이런 말을 내가 해도 되는 건지 조차 마음이 아립니다. 미안합니다. 날이 추운데 더 따뜻하게 품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네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잘못이다.
사람들을 지키고 싶어서 경찰의 길을 선택했지만 어떠한 도움도 드리지 못해 한 없이 죄송합니다. 부디 아픈 일 모두 잊고 평안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기자입니다. 제가 쓴 기사가 피해자와 유족들의 고통을 더하는 것 같아 늘 죄스러운 마음입니다. 우리 사회가 이 참사를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 더 고민하고 쓰겠습니다.
10대에는 바다에 친구를 보냈고 20대에는 길거리에 친구를 보냈다. 얼마나 더 잃어야 이 나라 “일부” 어른들은 정신을 차릴 건가?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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