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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에디터의 창]내란 1년, ‘민주주의 외양간’을 고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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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법계엄 1년이 지나서야 윤석열 등 내란 세력에 대한 1심 재판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 특검은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의 혐의를 받는 한덕수에 대해 징역 15년을 구형했고 내년 1월21일 법원의 1심 선고가 예정돼 있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과 김용현, 노상원, 조지호 등 내란 중요임무 종사자들에 대한 선고도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제1야당 국민의힘 지도부는 아직도 윤석열을 옹호한다. “우리가 윤석열”이라며 계엄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를 받는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도 줄줄이 기각됐다. 구속기한 시간 계산이란 기발한 방법으로 윤석열을 풀어준 판사 등 사법 시스템에 대한 불신도 팽배하다. 하지만 더디고 덜컹거려도 쿠데타 세력 청산은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대세다. 111일이나 걸렸지만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을 파면했고 법원은 그를 다시 감옥에 가뒀다. 특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윤석열 무리의 내란 획책 전모는 속속 드러났다. 지금 같아서는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스스로 무덤으로 걸어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내란 청산 작업은 여권에 의해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나치 전범 처리하듯 해야 한다”며 특검의 활동이 끝나면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청산 작업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태스크포스를 꾸려 공직사회 내부의 내란 동조 세력을 색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을 추진하며 사법부를 압박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의 내란 청산 작업은 최소한 내년 6월 지방선거까지는 계속될 분위기다. 여권도 나름의 제도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청 폐지, 계엄 선포 요건과 절차 강화를 위한 법안들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법관 정원 확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도 진행형이다. 그런데 검찰개혁, 사법개혁을 외치는 여권에서 사라진 단어가 있다. 개헌과 정치개혁이다.

    내란 청산은 윤석열 무리를 권력에서 끌어내리고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만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인적 청산을 넘어 구조적 원인을 찾고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나치 전범 처리하듯 인적 청산을 한다고 제2의 윤석열을 막을 수는 없지 않나.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고, 여야의 극단적 대치를 완화할 수 있는 제도개혁이 핵심이다. 내란 청산과 정치개혁은 선후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개혁은 내란 청산의 명분을 강화하고 시민의 동참을 유발해 기득권의 저항을 약화할 수 있는 무기다.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여권도 스스로를 거울에 비추고 대상화해야 한다. 그럴 때 일부 보수 세력의 내란 척결 피로증 주장도 무력화할 수 있다.

    이 대통령과 여당은 이제 개헌과 정치개혁을 주도해야 한다. 과거 극복과 미래 설계는 함께할 때 온전해진다. 개헌은 이재명 정부 국정기획위원회가 제시한 국정과제 1호다. 대통령 4년 연임제 및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감사원 국회 이관, 대통령 제의요구권 제한 등 구체적 계획도 제시했다. 윤석열 개인이 제정신인지 아닌지를 따질 게 아니라 그런 사람이 무소불위 권한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빨리 국회 개헌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들과 함께 공론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선거제도 개편이다. 계엄 사태의 근저에는 거대 양당의 극단적 대결정치와 정치적 양극화가 자리 잡고 있다. 비례성과 대표성을 높일 수 있는 선거제도로 다당제를 정착시키는 게 대안이다. 단순 다수제로 1인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에 대한 재검토, 군소정당 진출을 확대하고 비례성을 높일 수 있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비례 위성정당 방지 장치 마련 등이 필요하다. 전체 의석수나 비례의석 확대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당장 원내교섭단체 기준 완화로 국회 운영에서 양당 독점부터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 신년사에는 ‘정의로운 통합’ 의지만이 아니라 정치개혁의 청사진이 담기기를 기대한다.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게 된 건 후회스러운 일이지만, 소를 잃고도 허술한 외양간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더 바보 같은 짓이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우리의 민주주의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분명히 보여줬다. 불완전한 제도를 끊임없이 정비하고 헌법을 지키도록 구성원을 교육하는 것은 민주공화국 유지를 위한 기본이다. 민주주의를 지킨 시민들의 ‘빛의 혁명’에 만족하며 정치개혁을 외면하는 건 집권 세력으로서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경향신문

    박영환 정치국제에디터


    박영환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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