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폰의 가치'가 변하고 있다. 가격이 계속 오르는 데도 사려는 사람이 늘면서 시장이 활성화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를 주도하는 건 삼성전자다. '귀하신 몸' 대접을 받았던 애플 아이폰의 가치가 떨어지고 있어서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중고폰 시장에서 삼성전자는 얼마만큼의 영역을 확보할 수 있을까. 더스쿠프가 '감가상각률'을 통해 이 질문을 풀어봤다.
중고폰 시장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각광받고 있다.[사진 |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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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스마트폰 가격이 점점 비싸지고 있다. 애플·삼성전자 등 제조사들이 고가 제품을 앞세워 '프리미엄 경쟁'을 펼치면서 '중고폰' 가격도 덩달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10월 30일 보고서에 따르면, 전세계 중고 스마트폰의 평균판매단가(ASP)는 2024년 상반기 413달러(약 59만900원)에서 올해 상반기 417달러(59만6600원)로 소폭 상승했다.
중고 스마트폰의 ASP를 상승세로 끌어올린 덴 삼성전자의 역할이 컸다. 원플러스·비보 등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 제조사의 ASP는 떨어진 반면, 삼성전자의 ASP는 전년 동기 5% 올라간 345달러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 상승률이다. [※참고: 애플의 ASP도 상승세를 기록했지만, 구체적으로 얼마나 올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중고폰 가격이 비싸졌는데도 시장은 여전히 활기를 띠고 있다는 거다. 특히 국내 시장이 그렇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중고폰 거래 건수는 900만건으로 3년 전인 2021년(682만건)보다 32.0% 증가했다. 같은 기간 국내 스마트폰 출하량이 1689만개에서 1253만개로 25.8% 감소한 것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수치다. 신제품 못지않게 중고폰을 찾는 소비자가 늘었다는 얘기다.
이런 국내 중고폰 시장에선 가장 인기가 많은 제품은 아이폰이다. 경쟁사 제품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감가상각률을 유지해 왔기 때문인데, 업계에선 아이폰의 견고한 프리미엄 이미지와 높은 수요가 맞물린 결과로 분석하고 있다.[※참고: 감가상각률은 제품의 가치가 시간이 지나면서 떨어지는 비율이다. 숫자가 높을수록 제품의 가치가 빠르게 떨어진다는 의미다.]
■ 달라진 중고폰 시장 흐름=다만, 최근 흐름은 다르다. 중고 아이폰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중고폰 거래 플랫폼 셀셀(SellCell)이 지난 8월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출시한 아이폰16의 감가상각률(이하 출시 5개월 후 기준)은 35.4%였다. 3년 전 모델인 아이폰13의 감가상각률(24.7%)보다 10.7%포인트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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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경쟁제품인 삼성전자의 갤럭시S는 가치가 올랐다. 올해 1월 출시한 갤럭시S25의 감가상각률은 46.6%로, 3년 전 모델 '갤럭시S22(51.9%)'보다 5.3%포인트 낮아졌다. 이에 따라 양사의 중고폰 감가상각률 격차는 27.2%포인트에서 11.2%포인트로 크게 좁혀졌다. 중고폰 시장에서 '아이폰 프리미엄'이 흔들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변화의 배경엔 양사의 '인공지능(AI) 기술력 차이'가 깔려 있다. 애플은 AI 업데이트를 차일피일 미뤄 소비자의 불신을 사고 있다. 지난해 아이폰16을 출시하면서 "AI 기능을 대거 업데이트하겠다"고 공언했지만, 1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3월엔 "업데이트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혀 전세계 소비자의 공분을 일으키기도 했다.
반대로 삼성전자는 AI를 앞세운 전략으로 브랜드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렸다. 지난해 갤럭시S24를 인터넷 없이 AI가 작동하는 '온디바이스 AI폰'으로 세계 최초 출시하면서 주목을 받은 게 시작점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삼성전자는 지속적인 AI 기능 업데이트, 이전 세대 모델까지 AI 기능 확장 등을 통해 더 많은 소비자가 AI를 경험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현했다. 지난 7월 미국 뉴욕에서 열린 '갤럭시 언팩' 행사에선 올해 말까지 4억대의 갤럭시 기기에 자사의 AI 서비스인 '갤럭시 AI'를 적용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글로벌 AI 전문매체 AI매거진은 지난 7월 20일 기사에서 "삼성전자는 플래그십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가격대 기기에 AI를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는 프리미엄 시장뿐만 아니라 중저가 시장의 점유율까지 늘리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 삼전의 중고폰 공략=삼성전자는 중고폰 시장을 공략하는 데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 1월엔 자사 중고 스마트폰을 자체 매입하는 '갤럭시 간편 보상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소비자는 온라인 접수 후 갤럭시 스마트폰을 보내면 현금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생활 스크래치가 있거나 카메라나 디스플레이에 파손이 있어도 작동에 이상이 없다면 괜찮다. 이렇게 회수한 중고폰은 재활용하거나 점검 후 재판매한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사진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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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개월 뒤인 3월 31일엔 '갤럭시 인증중고폰' 서비스를 시작했다. 구매 후 7일 이내 반품된 제품 중 기능과 성능에 이상이 없는 것을 재판매하는 게 이 서비스의 골자다. 모든 통신사와 호환되도록 자급제 단말기만 취급하고, 새 제품과 동일하게 공식 보증기간(2년)도 적용한다.[※참고: 이런 중고폰 판매 서비스는 애플이 '원조'다. 반품·교환된 상품을 정비해 재판매하는 '인증 리퍼비쉬(refurbished)' 정책을 2016년부터 실시해 왔다. 일명 '리퍼폰'이라 불리는 중고 아이폰은 새 제품보다 가격이 15% 저렴하다.]
관건은 중고폰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삼성전자가 애플을 넘어설 수 있느냐다.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직접 판매 중인 중고폰의 가격이 아직은 비싼 축에 속한다. 일례로, 삼성전자 홈페이지에서 판매 중인 '갤럭시Z폴드6(256GB) 인증중고폰'의 가격은 167만2000원. 온라인 쇼핑몰에서 갤럭시Z폴드6(256GB) 신제품이 팔리는 가격보다 45만~50만원 더 비싸다.
발목을 잡는 요인은 하나 더 있다. 언급했듯 전체적인 수요가 늘어났더라도 삼성전자 중고폰의 ASP가 지금처럼 계속 오른다면 중고폰 소비자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중고폰 시장에서 나타난 삼성전자의 높아진 가치를 상쇄할 우려도 있다. 과연 삼성전자는 중고폰 시장의 판도마저 바꿔놓을 수 있을까.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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