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우리 몸은 역사의 현장 진실의 증거"
국가 측 "소멸시효 이미 완성됐다는 입장"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5·18민주화운동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가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중 5·18 성폭력 피해자 성수남 할머니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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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기일은 (내년) 1월 16일 혹은 23일이 될 거 같은데…"
"빨리 해주십시오. 45년 동안 기다렸습니다. 너무 지쳤습니다."
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의 한 법정 방청석에 앉아 있던 고령 여성이 재판부 얘기를 듣다 눈물을 흘리며 읊조렸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 여성이 통곡하자, 다른 피해자들도 붉은 꽃이 수놓인 스카프로 눈물을 닦았다.
1980년 5·18 당시 계엄군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45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의 1차 변론기일이 진행됐다. 피해자 측은 이번 재판을 두고 "회복의 길을 만들고자 한 결단"이라며 "계엄군 행위에 대한민국의 책임이 있음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다만 피고 측인 국가는 소멸시효가 완성됐다고 반박했다.
"회복으로 나아가는 조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부장 최욱진)가 심리한 이날 재판에 총 13명의 피해자들이 출석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휠체어를 탄 채로 법정에 들어섰다. 가족을 비롯한 사건 관계자들도 함께했다. 피해자들은 결연한 표정으로 끝까지 재판부 말을 경청했다. 때론 고개를 끄덕였고, 때론 입술을 깨물었다.
피해자 측 대리인은 법정에서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범죄행위 중 계엄군 등에 의해 발생한 강간과 강제추행 사건으로, 도심 진압 작전, 봉쇄 작전, 재진입 작전, 연행·구금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엄군의 폭행, 협박 등으로 자행됐고 비상계엄 동안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정했음에도 아무런 규율을 하지 않아서 피고에게 책임이 있다"며 "오랜 침묵 후 진실을 규명한 사건인 만큼 피해자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가는 소송의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점을 강조했다. 1980년 5월을 기산점으로 보기 때문에 국가배상법에 따라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는 취지다.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인근에서 5·18민주화운동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 관계자들과 5·18 성폭력 피해자 성수남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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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성폭력 피해자 자조모임 '열매'는 재판 전 기자회견을 통해 "1980년 5월 광주에서 자행된 성폭력은 국가가 자국 시민을 탄압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의 이름으로 벌어진 범죄였다"며 "명백한 국가의 불법 행위이며 기본권 침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요구는 단순하다. 국가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법 앞에서 분명히 하며 지난 45년 동안 숨죽이고 고통스럽게 살아온 정당한 피해 회복의 의무를 다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들 역시 "우리의 몸은 역사의 현장이며 진실의 증거"라며 "진실은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5·18 당시 1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이었던 피해 여성들은 그동안 자신들의 피해사실을 숨겨오다 38년 만인 2018년 김선옥씨의 '미투'를 계기로 사건 공론화에 나섰다. 이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관련 사건 중 신빙성이 부족한 3건을 제외하고 총 16건에 대해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고 2023년 12월 최종적으로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공식 인정했다.
이서현 기자 her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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