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KCD 등재를 앞둔 '게임이용장애' 게임이 중독이 된 이유' 기사에서 이어집니다(바로가기)
게임이용장애 논란의 핵심은? “도박과 게임은 본질적으로 같다” vs “게임은 도박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반대하는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제기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의학적인 검증과 관련된 문제다. 쉽게 말해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지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 새로운 기술이나 문화콘텐츠를 병리화 했던 역사적 선례들에 비추어 볼 때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을 찬성하는 전문가들이 근거로 제시한 다양한 연구 논문과 자료들은 그 의미가 없다고 볼 수 있을까? WHO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의 근거로 삼았고 앞선 사례에서 언급한 조엘 빌리의 메타 연구와 크리스티안 몬타그 교수 등의 대표 논문의 경우 찬성과 반대의 입장을 떠나 대부분의 학자들은 연구 방법론이나 양적인 측면에서 학술적 기여도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학술적인 가치에 대한 평가와는 달리 해당 자료는 게임을 질병 분류에 넣기 위한 근거로는 불충분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가장 큰 이유는 중독분야에서 사용되는 최적표준(Gold Standard, 황금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적표준이란 학술적, 의학적 논쟁에서 일정 기준을 통과하면 진실(혹은 표준)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중독질환을 진단하고 분류하는데 크게 두 가지의 기준을 가진다. 먼저 물질 중독의 기준에서 바라보는 명확한 화학적 매커니즘이다. 마약중독, 알코올중독과 같은 물질 중독은 직접 뇌의 수용체에 작용하는 명확한 생물학적 메커니즘이 존재한다. 하지만 게임은 그 자체로 물질이 아니며 행위이고 게임을 하면서 생겨나는 고유하고 특정한 생물학적 표지(Biomarker)가 발견되지 않았다. 단순히 다른 중독과 유사한 형태의 도파민 분비 형태를 가진 데이터만으로는 게임이라는 행위자체를 중독으로 보는 것은 현재 단계에선 설득력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 다른 기준은 양적, 질적인 종단적(Longitudinal) 연구 성과다. 앞서 말한 조엘 빌리의 메타연구와 크리스티안 몬타그 교수의 연구 자료는 상징적이고 그 의미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게임을 했기 때문에 뇌가 변했다’를 입증하기 위해선 게임을 즐기기 이전부터 장기간에 걸쳐 뇌의 변화를 추적하는 절대적인 종단적 연구 사례가 필요한데 이와 관련된 연구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기 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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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성과 반대 의견을 내는 모든 전문가들에게 예시가 되는 것이 바로 행위 중독이면서 동시에 물질 중독의 유사성이 입증돼 일찌감치 질병으로 인정받은 도박중독(Gambling Disorder)이다. 도박 행위가 뇌의 도파민 보상 시스템을 활성화 시키는 방식이 알코올과 같은 물질 중독과 거의 동일하다는 연구 결과가 지속적으로 축적되었고 또 충동 조절과 의사 결정을 담당하는 전두엽 피질의 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것이 뇌 영상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여기에 이미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쌓아온 사회적, 경제적 폐해가 심각하여 공중보건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와 합의가 생겨나면서 1980년대 이미 충동 조절 장애의 일종으로 분류되었던 도박 중독은 ICD-10, DSM-4 등재에 이어 ICD-11에 와서는 게임이용장애와 함께 WHO가 새롭게 분류한 물질사용 또는 중독행위로 인한 장애(Disorders due to substance use or addictive behaviours)의 대표 사례로 자리잡게 됐다.
찬성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바로 이 도박중독의 사례를 예로 들어 게임 역시 유사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도박중독이 뇌의 도파민 보상회로를 자극해 중독으로 인정받았고, 게임 역시 이러한 보상 회로를 활성화 시키는 행위 중독의 사례와 유사한 기전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상당수의 천성론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게임의 핵심 중독 요소는 낮은 접근성(F2P)과 캐릭터나 아이템을 뽑는 형태의 즉각적인 보상을 얻을 수 있는BM 구조가 문제를 가져온다고 분석하고 있다.
반면 반대 측 학자들은 도박과 게임의 본질적인 차이를 간과하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라고 맞선다. 도박중독 은 그 결과로 재정적 파탄이나 범죄 연류, 자신 및 타인을 대상으로 한 법적 문제와 같이 사회적인 피해가 즉각적이고 피해측정도 가능하지만 게임이용장애는 시간 관리 실패나 사회적 관계 위축 등 자신에 대한 기능적 손상이 대부분이며 도박과는 폐해의 강도와 성격이 다르다는 것.
특히 게임 중독의 기준을 도박에 맞춰 질병화를 하는 것은 도박 중독이 가져오는 경제적 강제성의 문제를 외면하고 인간이 가진 모든 행동에 대한 과도한 병리화가 가능해진다는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찬성측 학자들이 내놓은 생물학적 기전의 유사성을 입증하는 논문 역시 게임 그 자체만으로는 앞서 언급한 최적표준을 충족시키지 못하기에 조건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처럼 도박 중독은 게임이용장애의 질병분류를 옹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선례로서 작용하고 있지만 동시에 게임 중독의 특이성의 부족함을 입증하는 비교 대상으로 논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해 동양대 김정태 교수는 “약 20여년 가까이 수백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돼 조사를 진행했지만 게임을 중독으로 입증할 수 있는 뚜렷한 결과는 없는 상황이다. 이는 게임을 중독으로 보는 가설 자체가 잘못된 핵심 증거라고 볼 수 있다”며 “2019년 이후 약 6년의 시간동안 사회적 냉각기를 가졌지만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규정하지 않은 현 상황에서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가 커진 사례가 없다. 이는 굳이 게임을 질병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는 강력한 증거이기도 하며 오히려 논의중인 질병코드 입법화를 폐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관협의체 논의는 ‘일촉즉발(一觸卽發)’ 상황... 해외 상황은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국내 도입을 논의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보건복지부, 통계청 등 정부부처, 게임 산업계, 의료계, 학계, 시민사회단체 전문가들이 참여한 민관협의체 역시 전문가들이 보여준 이견만큼이나 첨예한 대립을 보여주며 발족 6년째 이렇다 할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정신의학계는 WHO가 정한 ICD에 맞춰 국내 역시 질병코드를 그대로 도입해야 된다는 입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와 게임산업계, 학계는 정의의 불확실성, 의학적 근거 부족, 산업계 피해, 문화/예술 산업의 퇴행 등을 이유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
올해 2월 KCD 개정을 위한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보였던 제13차 민간협의체 회의도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별 다른 소득 없이 종료됐다. 관계자에 따르면 회의 간 ‘전문가도 아닌 사람들이 WHO의 결정을 왜 반대하느냐’는 뉘앙스의 격한 말이 쏟아지기도 했으며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뒤엉키며 합의점을 도출하기 위한 민간협의체 회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현재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와 관련해 가장 강력한 시행정책을 펼치는 국가는 중국이다. 게임에 대한 강력한 규제정책을 내놓은 중국은 WHO의 결정과는 무관하게 2009년부터 게임중독을 정신질환의 일환으로 규정해 국가 보건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다만 중국에서도 관련한 표준화된 진단체계 마련 및 전문인력 양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일부 대도시만을 대상으로 진료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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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WHO와 미국정신의학협회(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APA)의 진단기준(2013년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 DSM-5)을 모두 참고해 게임이용장애 치료에 나서고 있다.
미국의 경우 정신질환을 분류할 때 ICD가 아닌 DSM을 진단의 척도로 삼고 있고 DSM-5 및 최근 개정판인 DSM-5-TR에서도 여전히 인터넷 게임장애를 카페인 사용 장애(Caffeine Use Disorder)와 함께 정식 진단 항목이 아닌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Condition for further study)’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해당 질환에 존재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정식 진단 범주에 포함될 만큼의 충분하고도 일관된 연구 결과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APA의 유보적인 입장을 반영하는 것으로 업계와 민간의 자율성을 우선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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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체계적으로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치료를 시도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은 게임이용장애를 정신 건강 질환으로 분류한 이후 국가 보건 시스템(NHS) 차원에서 전문 치료센터인 ‘전국 게임 장애 센터(The National Centre for Gaming Disorders, NCGD)’를 2019년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영국 NHS는 게임 중독을 행동 중독(Behavioural Addictions)의 일환으로 보고 관련 서비스 확대를 위한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센터 개소 이후 2023년 3월까지 745명이 치료를 위해 의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치료 정원인 연간 50명 대비 많은 인원의 치료 대기자가 몰리며 전문 인력 확보에 힘을 쏟고 있다.
영국 왕립 정신과 의사협회 행동 중독 대변인인 헨리에타 보든-존스 박사는 NHS England 최고경영자 사이먼 스티븐스를 지지한다며 “NHS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되어서는 안 된다”며 “도박 및 인터넷 기업(게임 포함)들이 중독된 사람들의 NHS 정신 건강 치료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부담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공식 입장을 내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처럼 상당수의 선진국들이 게임이용장애를 중독장애의 일환으로 분류하여 진료는 하고 있지만 질병코드를 적용해 국가보건체계에서 다루고 있지는 않은 상황이다. 영국의 경우 치료는 실제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그 표본 역시 점점 많아지고 있지만 현재 ICD-10이 기본(ICD-11도입 시점 미결정)이고 SNOMED CT(의료 전자의무기록에 쓰는 표준 의료어휘, Systematized Nomenclature of Medicine – Clinical Terms)내에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기록만 남기고 있다. 즉, WHO에서 정한 ICD-11의 게임이용장애코드(6C51)를 공식 진단서나 통계코드로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
호주, 캐나다, 프랑스, 핀란드 등 처음부터 질병 분류를 반대하거나 보류한 국가와 달리 스위스 및 노르웨이, 독일 등 일부 국가는 ICD-11을 도입해 게임이용장애를 공식 질병 코드로 분류하고 있고 각 나라별 게임이용장애 유병률 인구 통계(노르웨이 16~74세 0.6%, 독일 12~25세 5.7% / 모두 추정치) 및 진단 기준에 의거해 치료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이 역시도 치료 통계를 어느정도 공개하고 있는 영국과 달리 관련 통계를 찾기가 불가능한데 이는 환자가 너무 적어 표본을 모으거나 통계를 공개할 정도의 규모가 되지 않거나 장기추적 데이터가 거의 없다는 것으로 실제 치료를 받는 환자수가 극도로 적거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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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게임이용장애 도입 여부를 놓고 다양한 국가에서 그 도입의 적절성을 두고 다양한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코앞으로 다가온 KCD의 개정을 앞두고 아직 우리나라는 논의 초기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내에서 환자수가 적고 장기적 임상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았으며 입증가능한 확실한 데이터가 뚜렷하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료적 현실, 그리고 사회적 낙인과 과도한 규제에서 오는 산업적 피해 등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우려의 목소리로 인해 이제는 단순한 의료적 필요성만으로는 합의를 이끌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민관협의체 논의는 2월 논의를 끝으로 약 8개월째 관련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과 이재명 정부의 출범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지연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해관계자간 의견 차이가 극심하고 사회적인 민감성이 매우 높으며 관련 정책 및 제도미비 등을 이유로 정부부처에서도 쉽게 제안을 하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당시 게임산업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며 “지방 정부나 중앙 정부나 (게임을)약물 중독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 다음에 지원이 가능하지 않겠냐”는 자신의 생각을 밝힌 바 있는데 이는 게임이용장애를 약물중독과 동일선상에서 보는 과도한 질병화, 규제화는 피해야 되며 질병으로서의 등재가 아니라 치료, 예방, 연구 지원 등 정책적 지원은 가능하다는 실무적 접근을 강조한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만큼 향후 진행될 민간협의체 논의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게임 장애 '찬반 논쟁' 마침표... 진흥-규제 일원화로 법체계 정비해야
통계법 제22조에서는 우리나라는 국제표준분류를 기준으로 국내표준분류를 작성하되 국내 여건과 상황을 감안해 실정에 맞는 분류체계를 작성하고 운영하도록 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나라는 그동안 WHO의 ICD를 기반으로 KCD를 자체적으로 개정하고 운영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ICD에 등재된 질병코드를 KCD에 반영하지 않은 선례는 없다. 즉, 관례적으로 WHO의 개정안을 수용해 왔으며 일부 찬성측 전문가들이 WHO와의 마찰을 이유로 이번 KCD 역시 기존처럼 완전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WHO의 질병코드 등재가 반드시 국내에서도 통용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합의, 과학적 근거, 국내 여건 등을 반영해 도입을 결정해야 되는 만큼 현행법으로 국제기구의 분류기준을 선택적으로 도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를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 민간협의체의 합의 결정과 국가통계위원회의 심의가 필요한데 가장 중요한 민간협의체 합의와 관련해 사회적, 학문적 합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9월 국회입법조사처(이하 입법처)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해 이분법적 찬반논쟁에서 벗어나 입법의 일원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체계적인 게임중독 관리와 산업진흥을 고려할 때 단순 몰입 이용자까지 위험군으로 간주되는 ‘거짓 양성’ 문제를 줄이기 위해 진단 도구를 계속해서 보완해야 되며 이와 동시에 게임업계 역시 게임이용장애를 유발할만한 요소를 먼저 찾아내고 건강한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하며 이를 위해 게임이용장애의 과학적근거 마련과 중립적 연구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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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처는 ‘통계법’, ‘국민건강증진법’,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 등에서 게임이용을 질병 및 중독의 유형으로 규정하여 규제 및 금전적 부담(중독 예방 치유 부담금 등) 부과의 근거로 활용하고자 하고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문화진흥 기본법’ ‘이스포츠 진흥에 관한 법률’은 게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창의적 산업 보호 및 육성을 강조하는 만큼 이들 법률간 입법 취지와 적용방향이 서로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흥과 규제를 일원화 하기 위한 법체계 정비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행성 게임물 및 중독 이슈는 별도 특별법(사행행위특별법 등)에 이관하고 이 과정에서 ‘중독 유발’기준의 측정방법 및 적용대상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법규정의 모호함을 해소하는 한편 신속한 개별법 개정이 아닌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연성법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이후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점진적 과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입법처는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코드로 도입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찬반의 논쟁에서 벗어나 디지털 기술이 유발하는 건강문제를 숙고하여 진흥과 규제를 일원화하는 방향의 입법이 본격적으로 논의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연구자들 “중립적이고 객관적 검증 필요한 시점” 게임업계 “필요하다면 연구에 적극 협력할 것”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해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한 목소리로 도입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WHO의 도입 초기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의학적, 과학적 근거에 대한 부족함이 그 이유다. 2031년으로 예정되어 있는 KCD-10 도입과 관련해서도 “시한을 정해두고 도입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과학적 연구, 사회적 논의와 합의에 대한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 도입여부를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며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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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업계는 일부 찬성측 전문가들이 F2P와 BM요소(뽑기 등)가 중독 기전을 만들어낸다는 주장에 대해 “게임의 재미를 F2P와 BM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게임의 재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중독을 일으키는 요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 방식으로는 게임 및 게임산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게임업계 역시 일부 행위중독자들처럼 게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일부 과몰입 사례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에 이는 치료를 위해 사회가 질병으로 낙인을 찍지 않아도 해결되는 문제점임을 분명히 했다. 실제로 게임업계와 게임문화재단, 중앙대학교병원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및 심리학자, 임상심리전문가 및 정신보건사회복지사 등이 함게하는 ‘게임과몰입 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게임 이용 형태, 미디어 및 여가 활용 형태, 개인 생활 특성 및 친구 관계, 부모 양육 태도 및 가정 환경 등을 조사하는 게임이용자 패널 조사 프로그램 및 청소년 및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 약물, 예체능(미술, 음악, 체육), 인지행동치료(개인, 그룹, 가족, 대인관계)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게임사 역시 의료 전문가, 심리학자, 교육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게임이용장애 관련 세미나나 토론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이러한 게임업계의 노력과는 별개로 많은 최근 연구자들은 게임 서비스를 진행하는 회사들이 선제적으로 ‘로우 데이터(Raw Data)’를 제공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연구 상당수가 자기 보고식 설문조사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으로 ‘게임을 많이 즐기면 중독이다’라는 기존 연구의 방향성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게임의 실제 플레이나 플레이 메커니즘이 실제로 중독 기전을 일으키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조사가 가능하다는 것.
게임업계 역시 이러한 로우 데이터 제공과 관련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이다.
게임포커스가 국내 주요 게임사에 관련 내용을 문의한 결과, 이용자의 개인정보보호 문제 및 연구 내용의 적절성만 확보된다면 대다수의 게임사들이 데이터 제공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다만 반대의 입장이나 응답을 거부한 개발사들은 로우 데이터 자체가 이용자 개인 데이터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상당수의 데이터가 게임사의 핵심 자산에 속할 수 있고 데이터에 대한 오용 해석을 막기 위해서라도 데이터 제공을 위한 연구 목적 및 범위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내왔다.
과학적 근거를 쌓기 위한 추가적인 종단적 연구사례로 주목받는 연구는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게임이용자 패널 연구(관련기사)’다. 해당 연구는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아동·청소년 924명과 성인 701명을 대상으로 한 5년간의 종단연구를 통해 높은 유지율(약 90%)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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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보고서에서는 WHO의 게임이용장애 진단 기준(12개월 이상 통제 불능·기능 손상 등)을 충족하는 사례는 단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게임 이용 시간만으로 문제 행동을 예측하기 어렵고, 오히려 심리적·사회적 요인이 게임 행태에 더 큰 영향을 미치며 결과적으로 게임을 이용하는 시간 역시 조사군 모두에게서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인 감소 추세를 보였다.
게임과몰입위험군, 선용군, 일반이용자군별 게임이용시간 역시 전반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감소했다. 4차년도까지 과몰입위험군에 포함된 후 5차년도에 선용군에 포함된 11명의 아동·청소년은 4차년도 3.04시간에서 5차년도 1.73시간으로 1.3시간 감소하였다. 또한, 4차년도까지 과몰입위험군에서 일반이용자군으로 변한 10명 역시 4차년도 2.60시간에서 5차년도 1.24시간으로 1.36시간 감소했다.
이 연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게임이용장애 질병코드 등재와 관련된 논의가 단순한 의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합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게임이용장애는 ‘치료’ 중심의 대응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지원, 교육, 문화 정책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환경적 대응’을 중심으로 한 정책적인 설계가 요구된다는 의미다.
평행선 달리는 질병코드 도입 문제, 균형 속에 해법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KCD 개정과 관련해 게임이용장애의 질병코드 도입과 관련한 민관협의체의 논의가 평행선을 달리는 이유를 한 마디로 정리한다면 ‘치료’와 ‘산업’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를 벗어나고 있지 못하고 때문이다.
지나친 병리화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있지만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ICD나 DSM의 성격을 항상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
기존의 의학계 범주로 설명되지 않는 환자의 고통을 진단 체계 안에 포함시켜 공식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고 치료하게 만드는 순기능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ADHD, PTSD 등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정신건강의 새로운 진단기준 역시 이러한 기준들을 통해 제시돼 왔고 이를 통해 인류 공중보건에 기여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게임이용장애와 관련해서는 앞서 말했듯 명백하게 납득할 수 있는 의학적인 기준이나 연구 결과 역시 존재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기존의 약물, 행동 중독의 기전들과는 명백하게 다르다는 것이 계속해서 후속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만큼, WHO가 제시한 기준을 맹목적으로 따르기 보다는 분류를 참고하되 국내 실정에 맞는 선별적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봐야 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보건과 산업의 중간 영역을 만들기 위한 제도적, 법률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된다. 즉 예방과 후속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치료 지원의 사회적 모델이 필요하다. 또한 게임과몰입으로 고통 받는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이를 정부, 의학, 산업계가 함께 조기 개입해 상담, 치료, 지원 등의 공공적 치료의 접근성을 보장하고 나아가 중독’이라는 표현을 대신할 중립적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치료를 받는 개인은 물론 산업 전반이 낙인이나 위축 없이 자율적이고 건강한 치료 문화를 조성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역시 입법처가 제시한 특별법(사행행위특별법) 등으로 도입 논의를 일방적으로 추진하기 보다는 실증 연구를 바탕으로 한 행동건강 관리체계(Behavioral health) 중심의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게임업계 역시 책임 있는 이용자 관리와 더불어, 게임이용장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F2P 및 BM체계에 대한 자체적인 분석과 함께 연구를 위한 투명한 데이터 협력을 통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해야 될 필요가 있다.
이미 많이 늦었지만 그렇다고 지금도 늦지는 않았다. 앞으로 남은시간 사회적 합의를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치료와 산업의 공존을 제도적으로 연결하는 새로운 사회적 모델을 발굴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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