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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7 (일)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책의 향기]뇌 이식-인공태양… SF영화가 현실이 되면 행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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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일 작가 8명 과학소설 단편집… ‘삼체’ 써낸 中 작가 류츠신도 참여

    과학기술 발전된 근미래 모습 그려… 변함없는 가치에 대한 시사점 제시

    ◇멋진 실리콘 세계/단요 외 7인 지음/432쪽·1만8500원·문학동네

    동아일보

    신간 ‘멋진 실리콘 세계’는 과학소설(SF) 단편집이지만, 초능력이나 외계인 등 머나먼 상상도를 그리지 않는다. 중국 작가 류츠신이 쓴 ‘중국 태양’에는 인공 태양 기술이 상용화됐음에도 디스토피아인 근미래가 담겼다. 사진은 류츠신의 작품을 원작으로 만든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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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일보

    끝없는 가뭄에 시달리며 냄새나는 물로 근근이 살아가는 중국 서북부. 바람이 불면 황토 먼지가 뺨을 할퀴고 시야를 뿌옇게 가리는 작은 동네. 이곳에서 자란 주인공 ‘수이와’는 어머니가 쥐여준 찐빵 3개와 20위안(현재 환율로 약 4000원)을 들고 탄광지로 향한다.

    죽을 고비를 넘겨 가며 손에 쥔 돈. 수이와는 탄광을 떠나 밤에도 불빛이 있는 성도(省都)에서 남의 구두를 닦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푼돈을 모아 베이징으로 간다. 야경은 휘황했고, 수이와는 그런 초고층빌딩 외벽을 닦으며 다달이 1800위안을 번다. 그러나 그의 아슬아슬한 사다리 타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시금 올려다본 행선지는 ‘인공 태양이 작열하는 우주’다.

    책에 수록된 단편 8편 중 넷플릭스 시리즈 ‘삼체’로 잘 알려진 중국 작가 류츠신의 ‘중국 태양’의 줄거리다. “머잖은 미래에 실현될 만한 과학기술이 등장한 사회”를 다룬다는 합의 아래 한중일 작가 8명이 의기투합해 단편 과학소설(SF)집을 펴냈다. 류츠신, 일본SF대상과 성운상을 수상한 후지이 다이요에 더해 단요 등 한국 작가 6명이 참여했다. 책을 기획한 장강명 작가는 “책에 실린 소설들은 예언이 아니다. 독자의 선택을 묻는 시나리오”라며 “‘이것이 환영할 만한 미래인가’라는 고민을 나누고 싶다”고 밝혔다.

    몇몇 수록작에선 기시감도 느껴지지만 ‘어디서 읽어본 이야기’여서는 아니다. 멀찍이 떨어져 바라봤을 뿐, 이야기가 우리 일상과 크게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인공 자궁이 상용화된 가운데 난자 잔여분이 비밀리에 연구용으로 수출되는 사회(‘그들이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지구 멸망 직전의 마지막 살길인 인공지능(AI) 통제 크루즈선 이야기(‘당신의 운명은 시스템 오류입니다’) 등 현실과 맞닿아 있는 작품들이 담겼다.

    전윤호 작가가 쓴 표제작은 기발한 아이디어가 눈길을 끈다. AI 동반자 서비스에 중독된 젊은층이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꾸려 나가는 과정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정보기술(IT) 업계에서 30여 년 종사한 전 작가의 이력 덕분인지, 구체적인 기술 용어와 정부 규제에 대한 이해도가 이야기에 사실감을 더했다.

    우다영 작가의 ‘헤아림으로 말미암아’는 국내 SF 문학이 진일보했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인간 평균 기대 수명이 100세를 훌쩍 넘긴 미래, 늙은 몸의 뇌를 어린 신체에 심는 기술이 보편화한 세계관이 탄탄하게 구축됐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결정, 마음, 진실은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고, 그 이유를 만드는 것이 뇌의 일” 같은 대목에서는 양자물리학과 뇌과학 등에 대한 저자의 고민이 느껴진다.

    주인공이 어린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동안 잃어버린 기억 한 조각을 추적하는 대목이 특히 흡인력이 있다. 과거를 파헤치면서 구조적 모순을 들추거나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주진 않는다. 그 대신 이해와 사랑, 진실 등 변화한 미래에서도 영속할 가치가 무엇일지 고민해 보게끔 만든다. 걷잡을 수 없는 기술 발전에 따른 디스토피아적 풍경만이 미래의 전부가 아님을 일깨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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