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원은 한은·KIC가 운용하는 외화자산 수익
부족할 경우 외화채권 발행키로
첫 해에는 200억달러 현금 마련해야
이후 대미투자기금 내 수익으로 일부 충당할수도
외환보유고 변화 없다지만 '재투자' 기회비용은 상실
외자운용 원칙 수정될까…"수익성 앞세우는 건 양날의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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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한미 관세협상에 따라 총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가 결정됐다. 이 중 2000억달러는 매년 200억달러 한도 내에서 미국에 직접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주목되는 것은 연 200억달러의 현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을지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보유한 외화자산을 운용해 얻는 이자나 배당수익으로 상당 부분 충당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국민의힘 등 야당에서는 운용수익률과 시장 변동성을 감안할 때 안정적 재원 조달이 쉽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외환보유고 쓰는 일 없다"…운용수익+달러채권 발행으로 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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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고려 중인 대미 현금투자 재원 조달 방식은 ▲외화자산 운용수익(외국환평형기금 포함) ▲달러화 표시 채권 발행 등 크게 두 가지다. 외환보유액과 외평기금 운용을 통해 벌어들인 이자와 배당수익을 우선 활용하고 부족분은 정부의 지급보증을 받아 달러화 표시 채권을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외환보유고(10월 말 기준 4288억2000만달러)를 쓰는 일은 없다고 정부는 강조한다.
재원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외화자산과 외평기금 운용수익은 현재 한은과 한국투자공사(KIC)가 나눠 관리하고 있다. 외화자산은 한은 외자운용원이 직접 관리하고 일부는 KIC에 위탁한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기획재정부가 발행하는 외평기금도 일부는 한은에 예치하고 일부는 KIC에 위탁해 자금을 굴린다. 이 중 기재부와 한은의 위탁을 받은 KIC의 운용수익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은이 지난해 외화자산을 운용해 벌어들인 수익은 12조8000억원이다. 이는 유가증권 이자와 예치금 이자, 유가증권 매매 손익을 합친 금액이다. 한은이 KIC 등 외부 기관에 위탁한 수익도 포함돼 있다. 지난해 예산 편성 기준 환율(1380원)로 환산할 경우 약 92억7000만달러 수준이다. 연간 투자 상한선으로 합의된 200억달러에 크게 못 미치는 수준으로,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매년 200억달러를 조달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여기에는 기재부가 한은과 KIC에 위탁한 외화자산 운용수익은 빠져있다. 특히 KIC는 한은 외자운용원과 달리 수익성에 방점을 찍고 외화자산을 운용하기 때문에 좀 더 수익률이 높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KIC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9월 말까지 11.7%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KIC가 운용 중인 외화자산 규모는 지난해 말 2065억달러에서 올해 9월 말 2276억달러로 211억달러 늘었다.
한은이 공개한 외화자산 운용수익 역시 금리 변동에 따른 시가가 반영되지 않은 회계적 수익, 즉 장부가로 기재된 것이어서 실제 수익 규모와 명확히 일치한다고는 보기 어렵다.
현금 조달 방식에도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당장은 매년 200억달러의 현금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투자가 안정기에 접어들어 수익이 발생할 경우, 해당 수익을 다시 대미 투자금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 역시 지난 국회 국정감사 자리에서 이 같은 방식의 가능성을 언급했다.
하지만 변수는 여전히 남아있다. 글로벌 시황에 따라 외화자산 운용수익에도 손실이 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KIC의 경우 20년간 4년에 한 번씩 외화자산 운용 규모가 줄거나, 연간 운용액 증가 폭이 신규 위탁액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미투자용 현금화로 '재투자' 기회비용은 사라져…한은 운용원칙 조정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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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외화자산 운용으로 벌어들인 이자와 배당수익은 다시 재투자되는 구조였다. 일반적인 펀드운용과 유사하게 수익을 현금화하지 않고 채권과 주식을 사서 계속 자산을 굴려 키워나가는 구조다. 하지만 이를 대미투자 재원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기존의 운용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대미투자를 위한 현금 조달에 외환보유고는 사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운용수익을 재투자해 외화자산을 불리는 데 활용했던 기회비용은 사라지는 셈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큰 틀에서는 한은이 수익을 내면 그 수익이 정부로 되돌아가는데, 그 수익을 빼간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세수도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간 안정성과 유동성에 초점을 둔 한은 외화자산 운용 원칙도 일부 조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한은은 KIC와 달리 외화자산을 운용함에 있어 현재의 가치를 보존하고, 언제든지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팔 수 있는 상태로 포트폴리오를 유지하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수익성은 이후 고려될 부분으로, 실제 이런 원칙을 계량화하고 조합해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은의 외화자산 운용수익이 대미투자의 재원으로 쓰이게 되면서 원칙에도 고민이 뒤따를 수 있다. 수익률이 높거나 배당을 많이 받는 상품에 투자할 경우 대미투자 재원을 마련하기가 좀 더 수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외화자산 대부분은 채권에 집중(약 79%)돼 있다. 한은 관계자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 것은 사실"이라며 "안정성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고, 캐시플로를 고려해야 하는 것도 맞다"고 말했다.
내부적으로는 안정성과 유동성이라는 원칙이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수익성을 쫓는 것은 양날의 검"이라며 "지출까지 생각하면 좀 더 수익을 내 대응할 수도 있겠지만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수익과 손실이라는 위아래가 다 열려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재현 한은 외자운용원장 역시 "수익성은 유동성과 안정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가운데 보조적으로 달성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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