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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오늘의 미디어 시장

    대형 산불 때 정치인 찾아가던 기자들이 달라졌다… 과학기술미디어센터, 과학 보도를 바꿔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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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호주·대만 SMC 대표 인터뷰
    과학자·언론 소통 네트워크 구축해
    외신 번역 수준에서 '질문하는 기자'로
    코로나19 때 가짜뉴스 대응 역할도


    한국일보

    한국 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가 13일 개최한 '글로벌사이언스미디어포럼' 참석차 방한한 아시아 태평양 SMC 대표들이 지난 11일 서울 역삼동에서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고 있다. 왼쪽부터 데이샤 허불록 뉴질랜드 SMC 센터장, 수잔나 엘리엇 호주 SMC 센터장, 시네이드 첸 대만 SMC 대표. 한국과학기술미디어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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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과 20년 전만 해도 호주 기자들은 대형 산불이 발생하면 과학자를 취재하지 않고 정치인을 찾아가 따졌어요."

    13일 한국 과학기술미디어센터(SMC)가 개최한 '글로벌 사이언스 미디어 포럼' 참석차 방한한 수잔나 엘리엇 호주 SMC 센터장은, 2000년대 초 호주의 과학 보도 수준이 얼마나 낮았는지를 이렇게 회상했다. 대형 재난 보도에는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원인 분석과 재발 방지 대책이 반드시 필요한데, 당시 호주 언론에선 이런 보도를 찾아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대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네이드 첸 대표는 "2017년 대만 SMC 설립 전 과학 보도는 외신을 번역하는 수준에 그쳤고, 그마저도 오역이 많아 위험한 정보가 퍼져 나갔다”고 말했다.

    전 세계 6개국에서 운영하고 있는 SMC는, 중요한 과학기술 이슈에 대해 전문가들이 제공한 정보를 언론에 제공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황우석 사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여러 논란으로 홍역을 치렀던 한국에서도 지난 7월 SMC가 출범했다. 우리보다 선배 격인 호주, 뉴질랜드, 대만 SMC 대표들을 지난 10일 만났다.

    SMC는 제대로 된 과학 보도가 이뤄지지 않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먼저 과학자와 언론 간 소통 네트워크 구축에 나섰다. 수질오염·지진·감염병 등 이슈가 생길 때마다 그 원인과 대책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언론인들에게 빠르게 전달했다. SMC는 언론이 인공지능(AI)부터 치매까지 다양한 이슈에 대한 적절한 취재원을 찾을 때도 연결고리가 됐다.

    출범 20년이 된 호주 SMC는 현재 약 7,000명의 과학자와 2,000명의 언론인이 네트워크에 참가할 정도로 규모를 키웠다. 과학 보도의 질 역시 크게 개선됐다. SMC 덕분에 언론의 질문도 날카워로워졌다. 첸 대표는 “대만 언론인들은 더 이상 정부가 발표한 짧은 보도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근거가 무엇이냐’ ‘정보의 출처를 공개하라’고 묻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SMC가 존재 가치를 제대로 드러낸 것은 코로나19 때였다. 데이샤 허불록 뉴질랜드 SMC 센터장은 “뉴질랜드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90%를 넘었다"며 "바이러스 소식이 알려진 첫날부터 SMC는 과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언론에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고, 덕분에 많은 시민들이 가짜 뉴스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접종에 나섰던 것”이라고 말했다.

    SMC가 이처럼 언론에 기여하려면 독립성과 투명성이 중요하다. 각국의 SMC는 민간과 정부의 지원금을 받아 운영되는데, 특정 기관 지원 비중의 상한선을 둬 자본에 휘둘리지 않도록 했다. 지원금과 운용 내역도 투명하게 공개한다. 전문가를 선정할 때도 엄격하다. 연구실적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과학자가 특정 기업이나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지 않은지 이해상충 여부도 확인한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가짜뉴스가 증폭되는 요즘, SMC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허불록 센터장은 “잘못된 정보가 퍼지기 전에 막는 것이 최선”이라며 “SMC를 통해 과학자와 기자가 협업하고 올바른 정보를 빠르게 전달해야 가짜뉴스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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