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이 지난 지금, 우리의 현주소는 어떨까. 한국수소연합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수소 생산량은 250만톤으로, 세계 수소 생산량(1억톤)의 2.5% 수준에 그친다. 법·제도를 선제적으로 정비하며 일찍 출발한 것에 비하면 다소 기대에 못미치는 속도다.
중국은 정부가 내건 2060 탄소중립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소 산업 육성에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 수소 충전소 수는 500곳으로 한국(300곳)을 넘어섰고, 수소 생산 역량은 연간 3300만톤에 이른다. 수소 생산·개발·저장 등 전 주기에 걸친 산업 생태계를 조기에 구축한 결과다.
자동차 산업의 미래로 꼽히는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비슷한 양상이다. 우리나라는 2016년 자율주행 임시 운행 허가 제도를 도입했고, 지난해에는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운전자 없는 레벨4 수준의 자율주행 자동차법을 마련했다. 기술력과 제도적 기반 모두 뒤처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자율주행 선도 기업 하면 미국 웨이모(Waymo)와 테슬라(Tesla), 중국 바이두(Baidu) 등이 먼저 떠오른다. 웨이모는 미국에서 무인 택시 상용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중국 베이징 도로에서도 무인 셔틀버스, 무인 택시, 무인 배달차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 자율주행차 운행 대수는 1000대에 못 미쳐 아직 상용화 단계로 나아가기에는 부족한 실정이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빠른 출발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상용화와 사업화라는 '목표 지점'에 신속하게 도달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로봇·이차전지·디스플레이·인공지능(AI) 등 정부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지정한 첨단전략산업은 국가간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산업 전쟁터'다.
첨단산업 사업화를 위한 3W 기업지원 전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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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기업들이 이런 분야에서 기술 경쟁력을 넘어 사업화 성과를 조기에 실현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 방향을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이에 우리 첨단산업 육성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 키워드는 폭넓고 빈틈없는(Wide) 지원이다. 기술을 제품으로, 시장으로, 산업으로 키우는 과정에서 기업은 여러 장애물과 마주한다. 인재 확보, 투자 유치, 특허 관리, 판로 개척, 해외 진출 등 기업의 필요는 다양하다. 정부는 이러한 수요를 세심하게 파악하고, 단순한 출연금 지원을 넘어 융자·투자 등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
특히 기술 개발 이후에는 인증, 실증 및 성능 평가, 양산 준비 등 실제 상용화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이 과정의 빈틈은 최소화하고 연계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은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2019년부터 소재부품장비 공급 기업이 수요 기업의 실제 생산설비에서 양산 성능 평가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 왔다. 최근 5년간 634개 기업이 사업화 시기를 앞당겼으며, 이를 통해 발생한 사업화 매출은 7153억원에 이른다.
두 번째 키워드는 선제적이고 전반적인(Whole) 규제 혁신이다. 불필요한 규제는 사업화를 늦추는 최대 걸림돌이다. 개별 규제를 하나씩 해소하는 것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관련 규제를 묶음 단위로 정비해 효과를 극대화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혁신 제품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위해 규제를 유예하거나 면제해주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가 이미 운영중이다. 여기에 더해 KIAT는 지난해부터 '기획형 규제샌드박스'를 도입했다. 필요성과 파급력이 큰 첨단산업 분야에서 규제 특례 과제를 사전에 발굴하고 실증을 수행할 기업을 선정해 지원한다.
현재 조선, AI, 로봇 등의 분야에서 5개 과제가 기획형 샌드박스로 추진 중이다. 기업이 일일이 신청하지 않아도 산업 전반에 걸친 복합 규제를 미리 파악하고 선제적으로 완화함으로써, 사업화 속도를 끌어올리는 기반이 된다.
마지막 키워드는 함께(With)다. 이는 다양한 유관 기관들과 협업 체계를 구축해 기업이 일관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업의 성장 과정 전반에서 관련 기관 간 유기적 연계와 협업이 활발히 이뤄질 때, 지원 효과는 배가된다.
KIAT는 38개 공공연구기관들이 참여하는 소재부품장비 융합혁신단을 주도적으로 운영한다. 기업은 기술적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여러 기관을 찾아다니지 않고, 단일 창구인 융합혁신지원단에서 원스톱 지원받을 수 있다. 또한 월드클래스 기업들에 금융, 수출, 특허, 채용 등 다양한 컨설팅을 제공하기 위해 KIAT를 비롯한 23개 기관들이 기업의 경영 도우미인 '셰르파'로 활동한다.
규제혁신 분야에서는 지난해부터 14개 기관들이 '산업융합 규제특례지원단'을 구성했다. 기업의 규제 샌드박스 신청부터 특례 승인, 실증 수행, 법령 정비까지 규제 개선 전주기를 지원한다.
첨단산업의 경제 활력 제고와 신산업의 신속한 사업화를 위해 정부가 핵심 과제로 추진하는 것이 바로 '규제 합리화'다.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기존 질서와 충돌하는 상황은 최소화하고,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규제를 정리해 경제 발전의 속도를 높이자는 취지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제2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전통적인 규제 담당 기관들도 해당 분야의 성장과 진흥에 책임을 다해야 민간 부문의 무한한 '창의성'과 반 발짝 앞선 '속도'를 뒷받침할 수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창의성과 속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이 중요해졌다.
신산업의 성공을 향한 레이스에서는 단순히 빠른 출발에만 의의를 둬선 안된다. 승자독식 구조에서는 빠른 완주도 중요하다. 앞서 강조한 전방위적, 선제적, 연계 지원이라는 3W 전략을 바탕으로 한다면 첨단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뒷심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경제가 미래 첨단산업 주도권 경쟁에서 '퍼스트 무버(First Mover)'를 넘어 '패스트 피니셔(Fast Finisher)'로 완주할 날을 꿈꿔본다.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
민병주 한국산업기술진흥원(KIAT) 원장 bjmin@kiat.or.kr
〈필자〉전문 과학기술인으로 시작해 국회의원, 기관장으로 선임된 인사다.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치·정책 분야까지 확장했다. 1959년생으로,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일본 규슈대에서 핵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일본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다 1991년 한국원자력연구소 최초의 여성 유치 과학자로 입소했다. 이후 20년간 국내 원자력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회장과 한국원자력학회장도 역임했다. 2022년 9월부터 KIAT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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