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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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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곤충으로 사망시각 추정…변사사건 실마리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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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로 사체 먹는 곤충 데이터화
    “법의곤충학 전문인력 더 육성해야”


    매일경제

    박성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가 매일경제와 인터뷰 후 고려대 법의학 실험실 앞에서 사진 촬영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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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숨을 거둔 사람의 몸 안에는 새로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고, 곧 하나의 우주가 됩니다. 법의곤충학자는 파리나 딱정벌레 등 곤충을 통해 새로운 생태계가 생성되는 시간을 추정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곤충증거를 찾다 보면 결정적인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겉보기엔 험하고 끔찍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관심을 갖고 꼭 해야할 일입니다.”

    12일 박성환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법의학교실 교수(52)는 법의곤충학을 인문학적으로 ‘새로운 생태계의 생성·소멸 시간 등을 추정하는 활동’에 비유했다. 그는 “시신이 하나의 생태계이기 때문에 곤충이 성장하면서 나타난 변화를 분석하면 죽음 이후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 법의곤충학의 개척자인 박 교수는 국내에서 최초로 동물의 사체를 먹이로 삼는 시식성 파리 30여종의 분자생물학적 데이터를 마련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는 경찰과 ‘법곤충 감정기법 고도화 사업’을 진행하며 파리 10종과 딱정벌레 1종의 사육 데이터 등을 수집·분석하고 있다.

    박 교수는 23년간 법의학 분야에 종사하며 국내 법곤충 감정기법을 도입한 공로로 지난 4일 경찰청이 주관한 제77주년 과학수사의 날 기념식에서 ‘제21회 과학수사 대상’을 받았다. 그는 “그동안 경찰 관계자들과 함께 고민하며 노력해왔던 일들이 인정받는 순간이라 뜻깊었다”며 “항상 믿고 응원해준 아내와 부모님 그리고 장인·장모님께 감사하다”고 과학수사 대상 수상소감을 밝혔다.

    다음은 박 교수와의 일문일답.

    ―법곤충학과 법의곤충학 분야에 관해 설명해준다면

    ▷법곤충학(forensic entomology)은 곤충증거를 활용해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거나 곤충에 관련한 법적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라면 법의곤충학(medicolegal entomology)은 그 세부분야로 변사체와 관련한 곤충증거를 다루는 학문이다. 법의곤충학의 가장 큰 목적은 고인이 언제 사망했는지,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하는 것이다.

    ―처음 어떻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2005년 대학원을 다니며, 지도교수셨던 황적준 교수님의 영향을 받아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의사로서 곤충은 낯선 주제였지만, 워낙 특이한 일을 좋아했고 진화생물학이나 생물의 분류에 관심이 있어 쉽게 포기하지 않고 물고 늘어졌던 것 같다.

    ―법의곤충학으로 사건 현장을 어떻게 분석하나. 그 방법론을 무엇인지

    ▷ 현장감식에서 곤충 증거의 채취에 앞서, 시체의 상태, 현장의 상황, 기온 등에 대한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기록한다. 곤충증거물은 대표성을 띠도록 발달 단계가 더 많이 진행된 것들을 우선 채집한다. 파리의 유충은 번데기가 되기 전 시체를 떠나 적당한 장소를 탐색하고 다니는 성질이 있으므로 시신 주변이나 좀 더 떨어진 곳에 있는 번데기를 찾는다.

    이후 채집한 곤충 증거물은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 파리 구더기의 경우, 끓는 물에 살짝 데친 후 7-80% 에탄올 용액에 투입해서 보존한다. 보존 단계에서 살아있는 상태로 신속히 법의곤충학자에게 전달된다면 더 정확하게 감정할 수 있다.

    ―법의곤충학으로 곤충증거를 분석할 때, 가장 크게 고려하는 과학적 근거·원리는 무엇인지

    ▷사후경과시간을 추정할 땐 곤충의 성장단계를 중점적으로 측정하는 한편, 시신의 상태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곤충의 종류도 살핀다.

    먼저 시신에 알을 낳은 뒤, 이를 먹고 자라난 곤충의 성장 단계를 측정한다. 특히 파리는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면 동물이 살아있을 때 그 몸에 산란하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시신의 몸에서 자라고 있는 구더기나 번데기 등의 성장 단계를 추정하면, 언제 산란이 일어났는지도 알 수 있다.

    산란 시점은 그 사람이 거기 죽은 상태로 있었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에 ‘최소한 그때는 죽어있었다’, ‘그 시점보다는 이전에 죽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이 최소사후경과시간(minimum postmortem interval)이다. 또 사람의 마지막 행적을 추적해 최대사후경과시간(maximum postmortem interval)을 따진다. 최대사후경과시간은 ‘이 때까진 살아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 둘을 조합하면 실제 사망한 시간이 어느 한 시점 사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시신의 부패단계별로 이를 선호하는 곤충의 종류가 달라지는 점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의 경과에 따라 특정 환경을 선호하는 생물의 종류가 달라지는 현상을 생태학에선 ‘천이 현상’(succession)이라고 한다. 부패의 진행뿐만 아니라 계절적 요인에 의해서도 곤충의 선호도가 달라지므로 이런 것들을 종합해 그 사람이 대략 언제쯤 사망했는지를 추정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파리는 어떤 파리이고, 성장단계별로 얼마나 걸리는지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구리금파리’가 가장 많이 발견된다. 구리금파리는 24도에서 알이 부화하는 데 한 21시간이 걸린다. 금파리 유충이 1령에서 2령(1차 탈피)이 되는데 약 24시간이 걸리고, 2령에서 3령(2차 탈피)이 되는데 약 31시간이 걸린다. 이후 번데기가 되기까지 약 79시간이 걸리고,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기까지 약 179시간이 소요된다. 이런 시간을 지표로 놓고 사망시각을 추정한다.

    ―법의곤충학이 실제 사건 해결에 활용된 사례가 있었는지 구체적인 사례가 있었는지

    ▷고려대 법의학 교실에서 지난 2017년에 신상언 박사와 함께 진행했던 ‘유벙언 세모그룹 전 회장’의 시신에서 나온 곤충증거를 감정한 사례를 들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경찰청이 본격적으로 법의곤충학의 유용성에 대해 눈을 뜨게 됐다. 국내 법의곤충학계에서 분수령과 같은 사건이었다.

    당시 유 씨의 마지막 행적이 확인된 5월 25일과 시신이 발견된 6월 12일 사이에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공백이 있었다. 고력대 법의학교실의 신상언 박사가 시신에서 발견된 구더기를 분석해 본 결과, 파리가 알을 낳기 시작한 시점이 6월 2일로 확인됐다. 이후 5월 29일에 유 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CC(폐쇄회로)TV로 포착돼, 감정 결과와 실제 행적이 부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변사사건의 모든 것을 규명하진 않았지만 당시 제기된 의문점이나 음모론적 의혹 등을 일부 해소할 수 있었다. 변사자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은 시간대로 좁혀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었다.

    ―최근엔 인공지능(AI) 분야가 발전 중인데, 최근에 AI와 법의곤충학 분석 기술이 결합되는 사례도 있는지

    ▷법의곤충학도 AI를 활용한 많은 시도를 할 수 있다. 곤충 증거물을 채집하면 가장 먼저 그 곤충이 어떤 종(種)인지를 알아야 한다. 곤충의 종을 확인하는 일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라서 곤충분류학자가 부족한 한국의 형편에 맞게 AI 활용이 필요하다.

    연구실에선 구더기의 형태 계측을 통해 구더기의 종을 간단히 구분하는 기법을 개발 중이다. 계측으로 구분이 된 이미지를 AI에게 학습시킬 수 있는지, 전문업체와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테스트 해봤을 때 정답률은 아직까지 약 80% 수준이다. 이 기법이 완성되면 현장 수사관들이 구더기 등 현장에서 발견되는 종을 좀 더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내 법의곤충학이 발전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한국 법곤충학의 약점은 곤충학의 기반이 법의곤충학 선진국들에 비교할 때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곤충의 분류와 생태를 전공한 분들이 법의곤충학 감정과 연구에 뛰어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현재까지 많지 않은 상황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태계의 구축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에서 법의곤충학 감식인력을 확충해 채용을 늘린다면 곤충학, 법과학 전공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원을 할 것이라고 본다. 안정적으로 직장을 갖고 연구에 매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청 직속의 감정실 외에 지방경찰청 중 규모가 큰 곳들부터 법곤충 감정실을 설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재 경찰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지난 2022년 만들어진 경찰청 법곤충감정실의 경우 처음 2명으로 시작한 감정실 인원이 이제 3명으로 늘어났다.

    연구 분야로 따지면 현재까진 하천이나 호수 등에 빠진 시신에 어떤 수서생물이 모여드는지 연구가 부족하다. 후학들이 감정기법 고도화를 위해 더 연구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점진적으로 새로운 후학이 법의곤충학 연구를 주도할 수 있게 도와주고, 검시가 전문 분야인 법의학과의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제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법의곤충학자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은

    ▷법의곤충학을 전공하는 것은 아직까지 모험이다. 하지만 수사기관이 법의곤충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이미 경찰청 내의 법곤충 감정실까지 설치된 상황이므로 점차 법의곤충학의 생태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본다.

    법의학 지망자 중 진화생물학, 생물분류학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있다면 이 길이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채워줄 수 있는 연구주제’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파리 등 법의곤충학적 곤충의 분류를 전공하는 학자, 시신에 모여드는 여러 종류 곤충의 생태를 연구하는 학자, 수사기관이나 감정기관에서 변사체에 모여든 곤충증거물을 분석하는 학자, 중요한 곤충 종 유충의 성장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한 사육실험을 하는 학자 등 법의곤충학에도 다양한 분야가 있는 점을 말해주고 싶다. 진짜로 관심이 있다면 한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갖춰야 할 미덕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다른 분야 전문가나 현장의 목소리도 경청할 줄 알아야 한다. 경청과 포용, 그리고 정확한 의사소통이 이런 실용적 연구에서 중요하다. 전문가는 일단은 자신이 가진 전문성에서의 기준은 엄격할 필요가 있지만 항상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제가 행운으로 생각하는 것은 경찰의 연구사업을 진행하면서 수사 현장의 목소리를 자주, 생생히 듣고 연구에 반영할 기회가 있었다는 점이었다. 그 현장의 목소리가 연구 아이디어를 위한 브레인스토밍이고, 곧 과학수사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들을 짚어주는 핵심 족보였다고 생각한다. 소통해준 현장의 경찰들에게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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