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정부 깃발 |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요즘 독일 언론에서 자국 경제에 자주 쓰는 표현이 '자유낙하'(freier Fall)다. 2년 연속 0%를 조금 밑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보면 '뒷걸음질' 정도가 맞는다. 굳이 자유낙하라고 하는 건 3년 연속 역성장 위기에도 별다른 대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타박일 것이다.
저임금 노동력 공급처 정도로 여기던 옆 나라 폴란드의 경제생산량은 2019년 이후 15% 늘어났지만, 독일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작년에는 독일에서 폴란드로 이주한 인구가 반대 방향 이주를 사상 처음으로 앞질렀다. 유럽 신흥 경제국으로 떠오르는 폴란드 사람들에게 더 이상 일자리의 매력도 없다는 얘기다. '유럽 경제의 엔진'은 옛말이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대란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거나 미국과 중국의 갈등에 수시로 노출되는 공급망이 문제라는 등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온다. 최근 반도체업체 넥스페리아 경영권을 두고 네덜란드와 중국이 다툼을 벌이자 독일 경제 중추인 자동차업계가 유탄을 맞았다. 연말까지 반도체 공급난이 계속되면 올해 경제성장률이 0.48%포인트 깎일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됐다. 그러면 독일은 사상 첫 3년 연속 역성장이라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취임하기도 전에 기본법(헌법)을 바꿔가며 대대적 돈풀기에 나섰다. 연착으로 악명 높은 철도 등 인프라를 뜯어고치고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국방비도 사실상 무한대로 쓰기로 했다. 돈을 풀어 경기도 살리고 재정 여력이 없는 주변 유럽 국가들에 생색도 낼 수 있는 손쉬운 해법이다.
러시아는 나치 흑역사를 끄집어내며 국내 문제에서 국민 시선을 돌리려고 전쟁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연일 아픈 데를 찌르고 있다. 독일 총리 자문기구인 경제전문가위원회는 인프라 예산이 통근비용 세금공제 같은 투자와 무관한 분야에 쓰이고 있다며 내년에도 경제성장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될 거라고 꼬집었다. 정치인들이 지난 2월 총선 때 내세운 선심성 공약을 이행하려고 대규모로 나랏빚을 낸다는 지적은 헌법 개정 당시부터 제기됐다.
메르츠 총리는 '전진하는 독일'을 구호로 내걸고 집권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기는커녕 경제가 뒷걸음질만 하자 지지율은 취임 이후 계속 바닥을 헤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역대 가장 인기 없는 총리로 기록된 올라프 숄츠를 뛰어넘을 태세다.
오죽하면 여론조사기관 시베이가 이달 초 시민들에게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그리운지 설문했다. 의외로 응답자의 25%만 그렇다고 답했다. 메르켈은 2010년대 초중반 독일 경제 황금기를 이끌며 칭송받았다. 그러나 퇴임 두 달 만에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뒤로는 러시아산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제구조를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독일이 전쟁으로 초토화한 나라를 재건하고 분단 조국 통일을 이뤘다고 해서 한국의 본보기로 삼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중국과 미국 양쪽에 치이면서 디지털 전환에서도 한참 뒤처진 독일은 어느새 타산지석의 대상이 됐다. 독일은 막대한 통일비용 지출과 경제 구조조정 실패로 '유럽의 병자'라는 별명을 얻은 20여년 전으로 돌아갈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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