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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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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내 영화의 파격성, 다 그로부터"...34세 화재로 떠난 천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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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

    영화 '마스카라'는 성소수자라는 말조차 없었던 1995년 트랜스젠더를 소재로 트랜스젠더 배우를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당신이 잘 몰랐던 박찬욱 감독<5>


    2020년 11월 8일 오후 이무영 감독과 조영욱 음악감독, 오동진 영화평론가 등은 서울 동작구 사당동 극장 아트나인을 찾았다. 제10회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에서 특별 상영되는 영화 ‘마스카라’(1995)를 보기 위해서였다. ‘마스카라’는 한국 성소수자를 주인공으로 한 한국 최초 장편영화다. 성전환 배우 하지나가 성전환자를 연기해 개봉 당시 더욱 화제를 모았다.

    ‘마스카라’는 오래도록 극장 상영이 불가능했다. 필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비디오테이프를 바탕으로 디지털로 복원해 이날 첫 공개를 했다. 이 감독과 조 감독 등은 34세에 요절한 친구 이훈(1962~1996) 감독의 유작을 극장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는 사실에 설렜다. 하지만 영화 상영이 시작되자 기대는 실망으로 변질됐다. 화질이 생각보다 떨어졌고 음향도 좋지 않았다. 비디오테이프를 기반으로 한 복원의 한계였다. 이 감독과 조 감독 등은 극장 밖을 나오며 가슴에 밀려오는 허전함을 어찌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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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마스카라'는 트랜스젠더 배우 하지나(오른쪽)가 출연해 개봉 당시 화제를 불러모았다.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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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이훈 감독의 어머니가 오동진 평론가에게 전화를 했다. 남편이 생전 운영했던 경기 파주시 제지공장을 정리하다 금고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는 내용이었다. 오 평론가가 달려가보니 ‘마스카라’ 원본 필름 1벌과 시나리오, 포스터 등이 고스란히 금고에 보관돼 있었다.

    오 평론가는 이 감독과 조 감독 등에게 급하게 연락했다. 연락한 사람들 중에는 박찬욱 감독도 포함돼 있었다. 다들 놀라면서 기뻐했다. 세상을 떠난 친구가 살아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을까. 오 평론가 주도로 ‘마스카라’ 원본 필름과 자료를 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 이훈 감독 딸 이재인씨 이름으로 저작권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돕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영화 ‘헤어질 결심’(2022) 작업과 해외 일정으로 바빴으나 마음은 오 평론가 등과 늘 함께 했다. “내 영화에 어떤 엉뚱함, 모종의 괴팍함, 썰렁함이나 파렴치함, 파격성과 특이성과 엽기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건 다 이훈에게서 온 것”(경향신문 2006년 9월 29일자)이라고 평가했던 친구 일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했다.

    동갑내기 영화광들 모인 ‘문화 싸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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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촬영장에서의 이훈 감독 모습. 한국영상자료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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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이 이훈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첫 영화 ‘달은… 해가 꾸는 꿈’(1992)을 연출하기 전이었다. 이종학(1989년 영화 ‘미스 코뿔소 미스타 코란도‘ 각본으로 데뷔) 작가를 통해서였다. 그는 박 감독의 서강대 친구다. 이 작가는 영화월간지 스크린 기자로 활동했고 재즈평론가로도 일했다. 이 작가는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프랑스문화원에서 박찬욱 감독과 이훈 감독을 처음 인사시켰다. 조영욱 감독도 함께 했던 자리였다. 앞서 이 작가는 서울음반에서 일했던 조 감독을 박 감독에게 소개시켜주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과 조영욱 감독, 이훈 감독, 이 작가는 이후 프랑스문화원에서 종종 만나게 됐다. 당시 프랑스문화원은 시네필들의 안식처였다. 할리우드 영화나 한국 영화가 점령했던 여느 극장과 달리 프랑스 고전 영화와 최신 영화들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남은 박 감독의 친구가 홍익대 인근에서 운영하던 카페 ‘라이프’로 이어졌다. 각자의 지인들이 하나둘 ‘라이프’ 모임에 끼어들었다. 이무영 감독과 윤태영 감독, 오동진(당시 문화일보 기자) 평론가, 이재순 프로듀서(‘복수는 나의 것’과 ‘클래식’ 등 제작)가 함께 모이고는 했다.

    대화 주제는 당연하게도 영화와 음악이었다. 박 감독은 “(‘달은… 해가 꾸는 꿈’ 이후 ‘삼인조’를 연출하기 전까지) 많은 변화가 있었다”며 “우선 새로운 친구들을 좀 사귀었는데, 그 중 이훈이란 자가 날 많이 바꿔놨던 것 같다”고 저서 ‘박찬욱의 몽타주’(2005년 마음산책 발행)에서 돌아봤다.

    이훈 감독은 16㎜ 장편영화 ‘달콤한 포로’(1993)를 연출한 데 이어 ‘마스카라’를 선보이며 본격적으로 감독 데뷔식을 치렀다. 그는 두 영화에서 촬영과 각본까지 도맡았다. 박찬욱 감독은 ‘마스카라’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좋.댓,구’(2023) 포함 박 감독의 유이한 영화 출연이었다.

    이훈 감독은 모임에서 대화를 주도할 때가 많았다. 미국 오하이오대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한국에서 접하기 어려웠던 미국 B무비에 해박했다. 상업영화나 영화제 수상 예술영화 정도만 접할 수 있었던 국내파 영화광들에게 이훈 감독의 말이 신기하게 느껴질 만했다. B무비 비디오테이프를 다량 보유하기도 했던 이훈 감독은 영화의 저수지 같은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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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① 당신이 잘 몰랐던 박찬욱 감독
      1. • 초보 감독 박찬욱에게 주연 배우가 던진 질문 "영화 줄거리가 뭐죠?"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1502520001939)
      2. • “내가 추천한 영화 재미없다고 발길 뚝” 비디오점 운영 실패에 유학 고민 ‘박찬욱의 시련’
        (www.hankookilbo.com/News/Read/A2025092512130001927)
      3. • ‘JSA’ 대신 ‘아나키스트’ 메가폰 잡았다면… 박찬욱 운명 가른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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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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