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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8 (월)

    [김학균의 이코노믹스] 넘치는 유동성에 부실 기업 연명…주식 시장 양극화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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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활력 떨어뜨리는 ‘좀비 자본주의’



    중앙일보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5년 한국 증시는 기록적인 강세장을 구가하고 있다. 아직 한 해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13일까지 코스피는 전년 말 대비 73.8%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다. ‘3저 호황’이 있었던 1987년(92.6%)과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직후의 급반등 국면이었던 1999년(82.8%)에 이어 연간 단위 상승률로는 사상 세 번째로 높은 상승세가 나타나고 있다.

    주가의 양극화라는 관점에서도 2025년 장세는 기록적이다. 코스피 지수가 73.8% 상승하는 동안 코스닥 지수는 35.4% 올랐다. 35%의 상승률도 대단한 상승세지만 코스피와는 격차는 38.4%포인트에 달할 정도로 컸고, 이런 수익률 격차는 사상 최대였다. 또한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의 장기 궤적도 차이가 크다. 코스피는 올해 하반기 이후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지만, 코스닥 지수의 지난 13일 종가(918)는 닷컴 버블 때의 사상 최고치(2925)는 차치하더라도, 2021년 8월에 기록했던 전고점(1062)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코스피 74% 상승한 강세장에도

    상장사 37% 주가는 오히려 하락

    중앙은행의 유동성 확대 정책에

    경기 둔화 따른 구조조정 약해져

    부실 기업이 야기한 유동성 병목

    자산 인플레 자극 등 부작용 초래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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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스피 시장 내에서도 수익률 편차가 컸다. 삼성전자와 HD현대중공업 등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대기업이 주류를 이룬 코스피 대형주지수는 80.7%나 급등했다. 대기업이지만 중견 그룹사가 주로 포진해 있는 코스피 중형주 지수의 상승률은 45.6%로 좋은 흐름이었지만, 대형주와는 성과 차이가 컸다. 한국 경제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코스피 소형주 지수의 상승률은 20.2%에 그쳤다. 대형주와 중·소형주 지수의 수익률 격차도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

    한편 상장사 중에서 2025년 절대 주가가 하락한 종목 수는 912개에 달하는데, 이는 전체 상장 종목 수의 37%에 해당한다. 코스피가 70% 넘게 급등하는 강세장에서도 주가가 오히려 하락한 종목이 전체 종목의 3분의 1을 넘어서고 있다. 과거에도 한국 증시 부동의 원탑이었던 삼성전자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다수 종목이 소외되는 ‘양극화 장세’가 출현한 경우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올해 주식시장에서 나타난 정도의 ‘부익부 빈익빈’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S&P500 시총서 M7 점유율 34.7%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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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가 양극화는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글로벌 증시에서 최근 수년간 가장 뜨거웠던 시장은 인공지능(AI) 혁명을 주도하는 빅테크 기업이 다수 포진한 나스닥이었다. 나스닥 지수는 2025년에 18.3% 상승했지만, 상승 종목 수(1407개)보다 하락 종목 수(1535개)가 더 많았다. 나스닥 지수가 28.6% 급등했던 2024년에도 상승 종목 수(1484개)와 하락 종목 수(1458개)를 비교하면 그 비율은 거의 반반이었다. 미국 빅테크를 대표하는 ‘매그니퍼센트7(M7)’ 종목군의 약진은 양극화 장세의 양지를 대표한다. 최근 AI 버블 논란으로 주가가 조정을 받았지만 미국 증시의 대표 지수인 S&P500에서 이들 7개 종목이 차지하는 시가총액 점유율은 34.7%에 달하고 있다.

    극심한 양극화 장세는 ‘과잉 유동성’과 이에 따라 파생된 ‘좀비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미국인에게 큰 트라우마를 남겼다. 당시 한국도 큰 타격을 받았지만, 우리에게 2008년의 혼란은 ‘사상 최악의 위기’는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훨씬 더 큰 상처를 남겼다. 반면 미국인에게 2008년 세계금융위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 후퇴를 불러온 원흉이었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벤 버냉키 의장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에 대해 ‘모자라는 것보다는 넘치는 게 더 낫다’라는 주장을 여러 차례 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화폐(돈)는 거래의 매개 기능을 하기 때문에 실물 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서는 적당한 규모의 화폐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과잉 유동성’은 실물 경제 운용에 필요한 규모를 초과해서 경제에 풀린 돈의 양으로 정의할 수 있다. ‘과잉 유동성’의 규모를 명확한 수치로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실물 경제 활동의 총량 개념인 ‘국내총생산(GDP)’과 중앙은행이 경제에 최초로 공급한 유동성 규모의 대용지표(proxy)로 활용될 수 있는 ‘중앙은행 자산’의 비교를 통해 가늠해 볼 수 있다.

    금융위기 전보다 3배 이상 풀린 유동성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전 ‘미국 GDP 대비 Fed 자산’ 비율은 오랫동안 5~6%대에서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렇지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의 유동성 확대 정책이 지속하면서 2025년 10월 말 현재 이 비율은 21.6%까지 높아졌다. 실물경제 대비 화폐 영역에서 풀린 돈의 규모가 금융 위기 이전보다 3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풀린 돈의 규모도 컸지만, 돈을 푸는 방식도 파격적이었다. 중앙은행은 특정 자산을 민간 금융기관으로로부터 매입해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는데, 통상 중앙은행은 만기가 짧은 국채와 정부 기관의 보증이 있는 모기지 채권을 매수해 왔다. 부도 위험이 없는 절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인 데다, 만기가 짧아 이자율 변동 위험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은 장기국채를 매입(양적 완화)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 팬데믹 국면에서는 정부 이외의 민간이 발행한 본질적으로 위험한 자산을 매수(질적 완화)하기도 했다. 2008년과 같은 위기가 재연돼선 안 된다는 트라우마가 발동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중앙은행은 ‘위기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했지만, 그 결과 순환적인 경기 둔화 국면에서 나타나곤 했던 자연 발생적 ‘구조조정’까지 억제됐다.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의미 있는 구조조정이 이뤄질 리 만무하다. 구조조정은 경제 위기의 부산물이다. 선제적 구조조정은 매우 힘든 일이다. 당사자에게 ‘퇴출’은 더 이상 재기의 기회를 가질 수 없는 ‘사형 선고’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억제된 불황의 미덕, 사라진 구조조정

    반면 구조조정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경쟁자의 축소에 따른 수혜를 누릴 수 있다. 그렇기에 구조조정이 선제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고, 경제 위기가 나타나는 과정에서 비효율적인 플레이어가 퇴출당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 발생적 구조조정이 이뤄진다. 구조조정이 이뤄지면 경제적 자원이 이를 잘 활용할 수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돌아가면서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높아지게 된다. 냉혹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불황이 주는 미덕이다.

    필자는 1996년에 증권회사에 취업했다. 입사 이듬해에 외환위기가 터졌고, 이로부터 2년이 지난 뒤 당시 2대 재벌이었던 대우그룹이 파산했다. 이후 3~4년의 시차를 두고 카드 버블 붕괴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의 전염 효과에 따른 충격을 경험했다. 각각의 위기는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 위험이 수반되며 금융과 실물경제가 동시에 흔들리는 시스템 리스크로 비화했다. 97년 외환위기부터 세계금융위기까지의 시기는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이벤트가 주기적으로 발생했던 위기의 시대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한국 경제가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역동성을 보여준 시기이기도 했다.

    반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최근까지의 기간은 한국 경제에 큰 위기가 돌출되지 않았던 비교적 평온한 시기였다. 글로벌 경제 전체적으로 봐도 그렇다. 중앙은행이 충분한, 혹은 과도한 유동성을 경제에 공급했고, 경우에 따라서는 특정 경제 주체에 대한 직접 지원에 나서면서 위기를 원천 봉쇄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정근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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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각한 위기는 없었지만 경제의 활력은 계속 약화하고 있다. 비효율적인 경제 주체가 계속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상장 제조업체 중에서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커버하지 못하는 기업(좀비 기업)의 수는 2024년 결산 기준 1056개에 달하고 있다. 전체 제조업 상장사의 42.2%에 달하는 비중이다. 이 비율은 2010년 18.1%를 저점으로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제조업 상장사 42.2%는 ‘좀비 기업’

    취약한 플레이어가 계속 쌓이다 보니 구조조정은 더 힘들어지게 된다. 주식 시장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고,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글로벌 경제 전반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이 자산시장에서의 풍선효과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때에 부실을 걸러내지 못한 데 따른 후폭풍이 두려워 중앙은행은 지속적인 완화 기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또한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부실한 플레이어들은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투입된 유동성이 원활히 증식되기보다는, 부실기업의 생존을 위해 소진되기 때문이다. 부실기업의 존재는 유동성의 병목 현상을 부른다. 과거에 경험해 보지 못한 막대한 유동성이 경제에 공급됐음에도 심각한 물가 상승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다. 인플레이션의 억제는 또다시 유동성 공급을 늘리는 동인으로 작동한다. 그 결과 실물 경제에서의 인플레이션 억제와 자산 시장의 인플레이션이 공존하는 기괴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자산 시장의 인플레이션이라고 했지만, 모든 자산 가격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다. 주식 시장의 상승세가 더 이어지더라도 대다수 종목이 함께 과실을 누리는 흐름은 아닐 것이다. 광범위하게 확산한 부실기업군의 존재가 저금리를 매개로 정상기업 주가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 게 우리 시대의 ‘게임의 규칙’이 아닌가 싶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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