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률 시인 여행 산문 ‘좋아서 그래’
“파리, 우울하면서 사랑하기 쉬운 곳”
최산호 작가의 도시 삽화 함께 담아
시리즈 첫권… 다음은 나태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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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상하게 자기네 집 가서 밥 먹자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병률 시인(58·사진)의 여행 스타일은 EBS TV 프로그램 ‘세계테마기행’과 비슷하다. 현지에 스며들어 부대끼는 여행을 한다는 점이 닮았다. 2012년 베트남 호찌민을 여행했을 때도 시장에서 우연히 만난 현지 주민의 초대를 받았다. 아래로 낚싯대를 드리우면 물고기가 잡힌다는 물가의 작은 움막이었다. 이 시인은 “너무너무 모기가 많은 집이었다. 하도 뜯겨서 술을 많이 마실 수밖에 없었다”며 씩 웃었다.
이런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최근 산문집 ‘좋아서 그래’(달)를 낸 이 시인을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는 이미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 등 여러 여행 에세이를 출간한 여행 애호가. 하지만 낯선 사람을 무방비로 따라가는 건 위험하진 않을까.
“위험하죠. 그래도 가요. 가면 재밌는 일들이 생기죠. 인류가 나한테 열어젖히는 자신의 온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 안으로 첨벙 들어가 보는 거예요.”
1995년 일간지 신춘문예로 등단하기 전, 이 시인은 프랑스 파리에서 2년을 지냈다. 이후 시집 한 권 내지 못해 막막하던 시절에도 파리를 다시 찾곤 했다. 신간엔 그가 방황의 순간마다 돌아가 안긴 도시, 파리의 풍경과 기운이 담겼다. 가수 아이유의 ‘바이, 썸머’ 앨범 커버 등을 제작한 최산호 일러스트레이터가 삽화를 그렸다. 시인이 묘사한 파리의 풍경과 삽화를 함께 보는 재미가 있다. 파리의 어떤 기운이 시를 쓰게 했는지 묻자, “파리는 우울하다”는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파리는 겨울이 길어요. 겨울이 우기이기도 하고. 3월 말부터 해가 조금 나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발작을 일으킬 정도로’ 좋아해요. 창의적인 것은 슬프고 상처가 깊을 때 폭발력 있게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거든요. 그런 환경이 창작을 가능하게 했던 것 같아요.”
이 시인은 “파리는 사랑하기 쉬운 곳”이라고도 했다. 한번은 파리 생마르탱 운하에 걸터앉아 메모를 하고 있는데, 노부부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집에서 쓰던 그릇과 포크를 쟁반에 담아 소풍 나온 모습이었다. “무슨 글을 쓰냐”길래 “시 쓴다”고 답했더니, “집에 빈방이 있으니 거기서 쓰라”며 그를 데려갔다.
“처음 갔을 땐 일주일 정도 있었고, 이후에도 두 번 정도 더 갔어요. 진짜 같이 먹고 자고 했죠. 사랑이 많은 사람들인 거예요.”
이번 신간은 달 출판사 대표이기도 한 이 시인이 ‘여행그림책’ 시리즈의 문을 여는 책이다. 나태주, 천선란, 정세랑, 고선경 작가 등이 다음 필자로 예고돼 있다. 나태주 시인(80)은 오랫동안 구호단체를 통해 후원해 온 탄자니아의 16세 소녀를 만나기 위해 지난해 8월 현지를 찾았다. 그 여정을 시로 쓰고 손수 그림까지 그렸다고 한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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