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학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
"가족을 지키는 것, 대단한 게 아니야. 나는 이제 집에 혼자 있는 그 고독을 견딜 자신이 없어. 가족을 지키는 것은 결국 나를 지키는 것이야."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 1972년생 김낙수 부장이 내뱉은 이 말은 한국 중년세대의 자화상이다. 서울, 아파트, 대기업, 그리고 부장이라는 직함은 한때 한국 사회에서 '성공의 징표'였다. 그러나 이 네 단어는 더 이상 영광의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과거의 성공신화에 갇힌 세대의 슬픈 초상이다.
2010년대 초 '영포티'(Young Forty)라는 단어가 한국에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IMF 이후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잡은 1960~70년대생들은 패션·음악·IT·여행 등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나이는 40대지만 감성은 30대'라는 말이 유행했고 그들은 활력 있고 세련된 세대로 불렸다. '영포티'는 책임감 있는 가장이면서도 자신만의 취향을 지키는, 중년의 새로운 표준이었다.
하지만 불과 10여년 만에 영포티는 찬사에서 조롱으로 전락했다. 2030세대가 사용하는 영포티는 더 이상 젊은 감각의 중년이 아니다. 그들은 '젊은 척하는 기득권' '기회를 독점한 꼰대'의 은유다. 중년은 여전히 조직을 붙들고 있고, 정년은 연장됐으며, 청년들이 진입할 자리가 좁아졌다. 주거비와 물가, 일자리 불안이 젊은 세대의 분노를 키우면서 자신들의 막힌 미래를 '김부장'에게 투영한다. 서울 자가와 대기업 부장은 더 이상 부러움의 상징이 아니라 '더 이상 닮고 싶지 않은 미래'가 됐다.
이런 현상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미국 뉴욕시장 선거에서 30대 조란 맘다니 후보가 기성 정치권을 꺾고 당선됐다. 이른바 '넥스트포티'(Next Forty)의 세대 반란이다. 높은 주거비, 교통비, 의료비 속에서 청년들은 "부모세대의 중산층 모델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선언했다. 뉴욕의 영포티, 즉 안정된 직장과 부동산을 가진 중년층은 여전히 체제를 유지하기를 원하지만 넥스트포티 젊은 세대는 그 체제를 바꾸기 위해 표를 던졌다. 한국의 넥스트포티가 영포티를 향해 냉소를 보내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넥스트포티는 김부장의 모습에서 '영포티의 현재이자 그들의 미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어떤 영포티를 지향해야 할까. 먼저 중년이 청년의 자리를 막는 '벽'이 아니라 경로를 만들어주는 '교량'이 돼야 한다. 정년연장은 일자리를 지키는 제도가 아니라 경력을 재설계하는 제도로 전환돼야 한다. 그리고 청년의 불만은 단순히 일자리 부족이 아니라 공정한 기회의 결핍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중년의 경험이 혁신과 연결될 수 있도록 재교육과 세대 융합형 일자리 설계가 필요하다. 아울러 사회는 성공의 공식을 다시 써야 한다. '서울·자가·대기업·부장'이 아니라 '자율·학습·경험·협력'이 새로운 성공의 언어가 돼야 한다.
우울한 영포티의 시대가 끝나가는 지금, 우리가 함께 써야 할 것은 새로운 성공의 문장이다. 서울의 자가보다 삶의 방향이 있는 사람이 더 젊다. 그것이 영포티, 그리고 넥스트포티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이다.
이윤학 프리즘투자자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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