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투자 거품론에 대한 살벌한 경고가 나왔다. 다름 아닌 구글(알파벳)의 최고경영자(CEO)인 순다르 피차이의 입에서다. 18일(현지시간) 피차이는 BBC와 인터뷰에서 “투자에는 합리적인 요소도 있지만 일부 비이성적 요소가 공존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BBC는 그의 발언을 두고 ‘닷컴’ 호황기였던 1996년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비이성적인 과열’을 경고했던 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풀이했다.
같은 날 대니얼 핀토 JP모건체이스 부회장도 요하네스버그에서 열린 블룸버그 행사에서 “AI 산업은 밸류에이션(가치 평가) 조정을 겪을 것”이라며 “이번 조정은 (미국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물론 관련 업종 전반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구글의 모회사인 알파벳 최고경영자(CEO)인 순다르 피차이가 지난해 4월 3일(현지시간)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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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 마이클 버리가 과도한 밸류에이션(고평가) 우려로 자신의 헤지펀드를 폐쇄하기로 한 데 이어, AI 거품론에 무게를 더하는 거물들의 발언이 쏟아지고 있다. 버리는 2008년 미국 금융시장 붕괴를 예고했던 인물로, 그를 모델로 영화 ‘빅쇼트’가 만들어졌다.
AI 거품에 대한 지적이 줄을 잇고 있는 배경에는 천문학적 투자 규모에 비해, 생산성과 실적 개선 속도가 이를 뒷받침할지 불확실하다는 우려가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ㆍ마이크로소프트ㆍ구글ㆍ아마존ㆍ메타 등 5대 테크 기업들이 AI 데이터센터 인프라에만 올해 약 3710억 달러(약 544조원)를 투자할 것으로 예상된다.
핀토 부회장은 “(AI 기업에 대한) 이 같은 가치 평가를 정당화하려면 상당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속도로 실현되지는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19일 존 월드런 골드만삭스 사장(COO) 역시 “현시점에서 시장이 더 조정받을 가능성이 있다”며 “기술적 지표를 보면 (상승보다는) 방어, 추가 하락 가능성에 더 치우쳐 있다”고 분석했다. ‘채권왕’ 빌 그로스의 은퇴 후 월가 ‘신채권왕’으로 불리는 제프리 건들락 더블라인캐피털 대표(CEO)도 지난 17일 “내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지금 미국 시장은 가장 건강하지 않은 상태”라고 지적했다.
시장 내부에서도 경고음은 커지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의 이달 조사에서 펀드매니저의 45%가 AI 거품을 시장의 최대 ‘테일 위험’(발생 확률은 낮지만 충격이 큰 위험)으로 꼽았다. 지난 9월 조사(11%)보다 크게 증가한 수치다. 마켓벡터인덱시스 조이 양 총괄은 “이렇게 짧은 기간에 4조나 5조 달러 규모의 기업이 된다는 것은 어느 시점에서는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트레이더 마이클 카폴리노(가운데)가 18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일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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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연내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진 점도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앞서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12월 금리 인하는 기정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물가 상승을 우려한 일부 Fed 위원들은 매파적(통화 긴축 선호)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뱅크오브아메리카(BofA)와 노무라는 이달 전망을 수정해, 연내 ‘동결’로 입장을 바꿨다.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에 따르면 금리 인하(48.9%)와 동결 전망(51.1%)이 팽팽하다.
이런 AI 과열 해석과 기준금리 동결 신호가 시장 전반으로 번지면서, 18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 지수는 1.07%, S&P500은 0.83%, 나스닥은 1.21% 하락했다. 다우와 S&P500은 4거래일 연속 내림세다.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미국 국채도 약세다. 현재 10년물 금리(종가 기준)는 지난달 20일 3.983%에서 18일 4.113%로 상승했다(채권 가격 하락).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작아지면서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과 위험자산 변동성 확대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값도 주춤하고 있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최근 4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3%가량 몸값을 낮췄고, 18일 반등했지만 소폭에 그쳤다. 삭소은행의 올레 한센 상품전략 책임자는 “최근 금 가격 흐름을 보면, 변동성이 커지는 와중에도 레버리지 투자자들이 내던진 물량을 장기 투자자와 중앙은행이 받아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관심은 한국시간 20일 각각 발표되는 엔비디아 3분기(8~10월) 실적과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에 쏠린다. 옵션 리서치ㆍ테크놀로지 서비스(ORATS)에 따르면 엔비디아 실적에 따라 주가가 양방향으로 약 7% 움직일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9월 고용보고서는 정부의 셧다운(일시 업무 정지)으로 한 달 넘게 발표가 미뤄졌는데, Fed의 금리 결정에 핵심 지표가 될 걸로 예상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주식과 채권시장이 크게 요동친 이후 가장 큰 폭의 조정이 나타난 가운데, 이번 두 발표는 상승세의 건강한 숨 고르기인지, 아니면 경기 하락의 전조인지 판단하는 핵심 지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유미 기자 park.yum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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