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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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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에서 1200만 명 돌파... 한국인 감독의 가부키 영화 '국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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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동포 이상일 감독 '국보' 19일 개봉
    가부키 여성 역할 배우 '온나가타' 소재
    "진정 아름다우면 더러운 감정 정화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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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보'.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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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부키는 일본에서도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통해 그간 몰랐던 재미를 발견한 듯합니다. 무대도 아름답지만 인간이 어려움 속에서 이렇게 아름답게 나타나는구나 하면서 감동을 느끼지 않나 싶습니다.”

    재일동포 3세 이상일 감독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영화 투자배급사 NEW 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영화 ‘국보’가 일본에서 기록적인 흥행을 기록한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 모든 것을 바친 두 배우의 삶을 그린 ‘국보’(19일 개봉)는 175분이라는 긴 상영시간에도 자국 내에서 1,2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한 일본영화로는 역대 흥행 9위, 일본 실사 영화로는 2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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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보'를 연출한 이상일 감독.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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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는 현재도 영화관에서 상영 중이어서 1위인 ‘춤추는 대수사선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를 추월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감독은 “일본에선 애니메이션이 강하고 실사 영화도 TV드라마나 만화의 극장판이 많은데 ‘국보’의 흥행 이후 새로운 가능성이 생겼다고 받아들이는 영화인들이 많아졌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소설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긴 ‘국보’는 야쿠자 두목의 아들 기쿠오(요시자와 료)가 가족을 모두 잃은 뒤 유명 가부키 배우 하나이 한지로(와타나베 겐)에게 가부키 연기를 배우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야기의 동력은 기쿠오와 하나이의 아들 슌스케의 우정과 대립이다. 기쿠오는 예술을 위해서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 수 있는 인물. ‘순혈’ 가부키 배우인 슌스케를 향해 “너의 피를 마시고 싶다”며 질투를 드러내고, 성공을 위해 연인과 딸을 매몰차게 내치며 앞만 보고 달려 간다.

    이 감독은 2010년 요시다의 소설을 영화화한 ‘악인’을 내놓은 뒤 가부키에서 여성 역을 연기하는 남자 배우 온나가타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이 감독과 공통의 관심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요시다는 가부키 스태프로 일하며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국보’를 썼고, 두 사람의 협업은 2016년 ‘분노’를 거쳐 이 영화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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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보'.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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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부키는 여러모로 중국 경극을 연상시킨다. 화려한 분장과 의상을 통해 등장인물을 드러내고 독특한 발성과 과장된 동작으로 감정을 극대화한다. 여성 인물을 모두 남자 배우가 연기한다는 점도 닮았다. 이 감독도 가부키에 대해 “의상이나 화장으로 캐릭터를 상상할 수 있는 재미가 있고, 온나가타가 아름답게 표현된다는 특징이 있다”면서 “특히 혈통으로 계승되는 예술이라는 특수성이 있는 장르”라고 설명했다.

    가부키의 아름다움뿐만 아니라 가부키 배우의 삶도 그가 영화에 담고 싶었던 요소다. 이 감독은 “조그마한 빛을 받기 위해 많은 그림자가 생기는 것이 배우의 인생이라는 점에서 존경스럽고 매력적이면서도 무섭다”면서 “배우의 드라마와 그들이 느끼는 감정과 중압감, 배우가 무대 위에서 무엇을 보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애써 드러내지 않는다.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 이름을 쓰며 조선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쳤지만 대학에서부턴 평범한 일본인으로 살았다. 재일 한국인을 소재로 한 데뷔작 ‘아오 총’을 제외한 ’69 식스티나인’ ‘훌라 걸즈’ ‘유랑의 달’ 등 대부분의 영화에서도 그는 한국 관련 소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경계인으로서 내 정체성이 영화에 투영돼 있는 것 같다”면서도 “내 뿌리가 한국에 있고 내가 한국인이긴 하지만 일본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문화적 영향을 일본 문화에서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한국인 감독이 가부키 영화를 만들어서 어색하다는 반응은 없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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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보'. NEW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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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국보’는 예술을 향한 인간의 집념을 보여주지만 마냥 예술가를 미화하는 작품은 아니다. 이 감독은 “질투나 원한을 넘어 예술을 갈고닦기 위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떤 면에선 숭고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지만 굉장히 잔혹한 부분도 있다”고 강조했다.

    “저 역시 영화업계에서 일하면서 질투도 생기도 나쁜 마음을 품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것을 보면 큰 감동을 받고 내 마음속의 더러운 감정이 정화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래서 저도 계속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나가고 싶습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김보현 인턴 기자 kimbh3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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