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 두 정상은 24일(현지시간) 통화를 갖고 대만 문제 등 현안을 농의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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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전화 통화에서 “중국에 있어 대만 문제의 중요성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사가 보도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놓고 전방위 외교전을 펼치는 중국이 미국과 소통하고 일본과 대화는 막는 ‘통미봉일(通美封日)’ 책략을 펼친다는 해석이 나온다. 미국 언론은 정치적으로 중국이 필요한 트럼프 대통령의 상황을 시 주석이 대만 외교에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신화사에 따르면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대만이 중국에 회귀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전후 국제 질서의 중요한 구성 부분”이라며 “중·미는 일찍이 어깨를 맞대고 파시스트와 군국주의와 맞섰고, 지금은 마땅히 2차대전 승리의 성과를 함께 수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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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中정상으론 24년만 美대통령에 먼저 전화
올해 네 차례 이뤄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전화 통화를 보도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1면. 지난 9월을 제외하고 대만 문제가 논의됐다. 앞서 두 차례는 미국이 통화를 요청했고, 이후 두 차례는 중국이 전화를 걸어 통화가 성사됐다. 인민망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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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주석의 발언엔 앞선 두 차례(1월 17일, 6월 5일) 트럼프 대통령에 경고한 것과 달리 설득과 회유의 메시지가 담긴 것으로 보인다. 앞서 시 주석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국가 주권, 영토 완정과 관련됐으니 미국은 반드시 신중히 처리해야 한다(1월 17일)” “‘대만독립’ 분열분자가 중·미를 충돌의 위기로 몰아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6월 5일)”며 대만 문제에서 강경한 입장을 전했다.
반면 이날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중화민국과 미국이 연합군으로 파시스트와 군국주의에 맞섰다고 상기했다. 양국(중화민국·미국)이 함께 싸웠던 군국주의 대상은 현재 대만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일본이다.
미국 언론은 이번 통화가 트럼프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상황에서 이례적으로 중국의 요청으로 이뤄진 점에 주목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번 통화는 시 주석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중국 정상이 미국에 먼저 대화를 요청한 건 2001년 장쩌민 주석이 ‘9·11 테러’에 대한 조문을 보내며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통화한 이후 처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30일 부산 김해공군기지 의전실 나래마루에서 미중 정상회담을 마친 뒤 회담장을 나서며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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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은 “트럼프 대통령은 대화의 방향을 우크라이나 문제로 돌렸지만, 시 주석은 대만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며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만 정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전략적 기회를 포착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도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의 관점에 더 가깝게 만들고 일본을 통제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이번 통화가 대만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내기 위해 추진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적 성과를 위해 중국의 도움이 절실하다. 이를 간파한 시 주석이 이례적으로 먼저 회담을 제안해 회담의 주제를 의도적으로 대만 문제로 끌고 갔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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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대두·펜타닐”…트럼프 ‘약점’ 노출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트루스소셜을 통해 대만 문제는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중국과의 관계는 매우 강력하다”며 내년 4월 자신의 중국 방문에 이어 시 주석이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할 계획임을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펜타닐, 대두를 비롯한 농작물에 대해 논의했다”며 “특히 위대한 (미국의) 농부들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점을 성과로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매우 좋은 전화통화를 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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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추수감사절(27일)을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 결과를 제시할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상태다. 이를 위해선 러시아의 ‘돈줄’ 역할을 하는 중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대중 관세의 최초 명분인 펜타닐 유입 차단 역시 중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의 대두 수입 중단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핵심 지지층인 농민들의 지지율 이탈에 직면한 상태다.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를 지낸 웬디 커틀러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부회장은 “중국은 대만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논의를 강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예상대로 경제 및 무역에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했다. 무역 관련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와 시 주석이 원하는 대만 관련 ‘트럼프의 입장’이 거래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왕쿤 대만 국제전략학회 이사장도 “트럼프는 다카이치 총리의 대만 발언에 지지 여부를 밝히지 않으며 중·일 문제는 외교 문제니 당신들이 해결하라, 미국은 개입하지 않겠다고 말한 셈”이라며 “중·일 사이에 전쟁이 발발한다면 미·일 동맹에 따라 미국은 당연히 개입할 것”이라고 싱가포르 연합조보에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25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 통화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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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의 전면전 와중에 미·중 정상의 통화 소식을 접한 일본은 당황한 분위기다. 다카이치 총리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한 뒤 “긴밀한 연계를 확인했다”고 했지만, 대만 관련 사안에 대해선 “외교상의 대화이므로 상세한 언급을 자제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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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차이나 타코’?…“AI칩 수출 트럼프가 결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2일 전용 헬기 마린원에서 내려 백악관으로 가는 길에 취재진에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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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통화가 이뤄진 이날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인공지능(AI) 반도체 H200의 중국 판매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트닉 장관은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H200의 중국 판매를 결정했느냐’는 질문에 “그러한 종류의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의 책상 위에 놓여있다”며 “그는 시 주석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고, 판매를 허용할지 말지를 그가 결정할 것”이라고 답했다.
중국과 AI 패권을 놓고 경쟁하는 미국은 현재 대중 반도체 수출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사양이 낮은 H20 칩의 수출을 재개했으나 실제 거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러트닉 장관의 수출 재개 가능성을 시사한 H200는 최첨단 ‘블랙웰’보다 성능이 떨어지지만 H20과 비교하면 몇단계 위로 평가된다.
일각에선 시 주석과의 통화와 맞물려 나온 AI 반도체 수출 재개 기류를 중국을 향한 ‘차이나 타코’로 해석하는 의견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간 중국과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 희토류와 대두 등을 무기로 압박을 받을 때마다 물러서며 ‘항상 겁을 먹고 물러난다’는 의미의 ‘타코(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논란을 빚어왔다.
베이징·워싱턴=신경진·강태화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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