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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내전 피해 국경 넘어도 지옥…수단 난민들 덮친 다중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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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0만여 명 집 잃고 실향민 돼 고국 떠나
    유엔 "세계 최대 규모의 인도주의적 위기"

    편집자주

    매일 보도되는 국제 뉴스를 읽다 보면 사건의 배경이나 해당 국가의 역사 등을 알지 못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종종 생깁니다. 5월 9일부터 격주 금요일에 만날 수 있는 '세계는 왜'는 그런 궁금증을 쉬운 언어로 명쾌하게 풀어주는 소화제 같은 연재물입니다.


    한국일보

    수단과의 접경 지역인 남수단 렌크 지역에서 17일 세 명의 여자아이가 수하물 더미 주위에 있다. 렌크 환승센터는 2023년 이후 1만2,000명 이상의 수단 난민과 추방자들을 보호하고 있다. 렌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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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단의 수도 하르툼주(州) 옴두르만에 살던 레일라(가명)는 2023년 수단 내전이 발발했을 당시 집이 공격받던 날을 생생히 기억합니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에선 더 이상 어린 자녀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결국 레일라는 지난해 남편과 함께 여섯 아이를 데리고 피란을 떠났습니다. 불법 브로커(중개인)들한테 350달러(약 50만 원)를 주고 향한 곳은 이웃 국가 리비아였습니다. 청소나 접객업 같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국경을 넘자마자 브로커들은 가족을 인질로 붙잡고 구타하며 더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레일라는 "어린 아들은 너무 많이 맞아 치료를 받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회상했습니다.

    감금된 지 3일 만에 풀려난 레일라 가족은 리비아 서부 지역에 작은 월세방을 구해 새 삶을 시작했지만 고난은 계속됐습니다. 일거리를 찾아 길을 나섰던 남편은 어느 날 갑자기 돌아오지 않았고, 열아홉 살 된 딸은 일하던 곳에서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습니다. 레일라는 "아이들과 나는 그저 리비아에 갇혀 있는 상태"라고 토로합니다. 다른 나라로 떠나기 위해 브로커들에게 줄 돈도, 폐허가 된 수단으로 돌아갈 방법도 없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늘 참상을 낳지만, 그중에서도 수단 민간인들은 더욱 심각한 전쟁 범죄와 인도적 위기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특히 여성과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폭력, 강제 실종 및 기타 학대 행위는 그 어떤 폭력보다 극심합니다. 피란을 떠나기 위해선 브로커들을 접촉할 수밖에 없고, 브로커들이 운영하는 비공식 난민 시설에선 성폭력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합니다. 당연히 피해자들이 의료 서비스와 사법 절차의 도움을 받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설상가상 미국 국제개발처(USAID)의 원조 기금 프로그램이 대폭 삭감되면서 그나마 지원받았던 성(性) 보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위기상황에도 내전 중인 정부군(SAF)과 신속지원군(RSF) 모두 수단 전역의 구호품 전달을 막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계식량계획(WFP) 등 국제기구들은 기아에 직면한 사람들의 90%가량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상 민간인 희생을 무기로 활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인권단체들은 수단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인도주의 재난 지역'이라고 규정합니다. 지난 9월 유엔 인권이사회 수단 사실조사단은 "분쟁 양측 모두 국제 인권 및 인도주의법을 위반했다"면서 대량 학살, 강제 이주, 약탈, 병원, 도로, 난민 캠프, 교육기관 등 핵심 인프라(기반시설) 파괴 실태를 지적했습니다. 현재까지 강제 이주당한 수단의 민간인들은 1,180만 명에 달합니다. 이 중 740만 명은 국내 실향민이고, 420만 명은 생존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인접 국가로 떠났습니다.

    나주예 기자 juy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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