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06 (토)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노동자 1000명 해친 '황'… 18개 원소에 얽힌 차별과 연대의 화학식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책과 세상]
    김명희 '주기율표 아이러니'


    한국일보

    한 추모객이 2017년 7월 경기 남양주 모란공원에서 열린 원진레이온 29주기 산재사망노동자 합동추모제에서 헌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올해 4월, 메탄올 중독 피해자 중 한 명인 이진희씨가 숨졌다. 향년 38세. 그는 20대 때 휴대전화 부품을 생산하는 하청업체에서 파견 노동자로 일하던 중 산재를 입었다. 부품 절삭, 가공 공정을 담당하며 메탄올로 제품을 세척했는데, 이 과정에서 공장의 안전 관리 미흡으로 메탄올에 중독된 것이다. 시력을 잃었고 뇌병변으로 9년간 투병했다. 노동건강연대가 2016년 작성한 조사 보고서에 고인은 이런 말을 남겼다. "욕을 해도 돼요? 하, 웃음밖에 안 나온다 진짜. 왜, 우리나라는 왜 이럴까 진짜, 할 말이 없다 진짜."

    신간 '주기율표 아이러니'는 유대계 이탈리아인 화학자 프리모 레비의 저서 '주기율표'의 오마주 격인 책이다. 사회의학자로, 공공병원에서 보건의료정책을 연구하고 있는 저자가 레비의 '주기율표' 구성을 본떠 18개 원소에 얽힌 이야기를 원진레이온 방사 공장부터 아우슈비츠까지 넘나들며 꿰어나간다.

    이를 테면 원소 '황' 챕터에선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1,000명이 죽거나 다친 원진레이온 사태를, '수은'에선 1988년 당시 15세였던 문송면 학생의 수은 중독 산재 사건을 환기한다. 국내 사건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1996년 미국의 유연휘발유 금지 조치가 심각한 '납' 오염을 막으면서 세계적으로 연간 100만 명의 조기 사망, 특히 12만5,000명의 어린이 사망을 예방했다는 사실을, 친환경 차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리튬'을 얻기 위해 매장된 장소의 수질과 환경을 황폐화시키는 아이러니를 이야기한다. '수소'의 기원과 특성은 황산 테러를 거쳐 젠더 폭력에까지 닿는다.

    원소 이야기는 넓고 깊고 멀리 뻗어나간다. 아이오딘, 아르곤, 은, 셀레늄, 알루미늄, 질소 등을 통해 과학과 역사, 직업병과 감염병, 기술의 진보와 불평등을 다루는 솜씨가 탁월하다. 부제는 18개 원소로 써 내려간 차별과 연대의 화학식.

    한국일보

    주기율표 아이러니·김명희 지음·낮은산 발행·288쪽·1만9,000원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