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5 부동산 대책의 핵심 설계자인 김용범(오른쪽) 대통령실 정책실장이 11월 18일 국회 운영위에서 질의 내용에 반발하자, 우상호 정무수석이 말리고 있다. /사진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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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돌파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가운데, 각종 대출금리의 기준 역할을 하는 국채 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채 시장 기준물인 10년물 금리는 11월 17일 3.301%를 기록, 11월 들어서만 30bp(1bp= 0.01%포인트) 넘게 뛰었고, 유동성이 가장 풍부한 3년물 금리도 3% 부근까지 올랐다.
국채 금리 급등은 곧바로 시중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11월 14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혼합형 주택 담보대출 금리는 연 3.93~6.11%로, 8월 말(3.46~5.54%)보다 하단은 0.47%포인트, 상단은 0.57%포인트 올랐다. 대출금리가 연 6%대를 넘은 것은 2023년 12월 이후 2년 만이다. 한국은행(이하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50%에서 2.50%로 100bp 인하했음에도 시중금리가 금리 인하 이전 수준으로 역주행한 셈이다. 대출자의 이자 부담이 커지면,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들고 내수 회복은 발목이 잡힌다.
서울 아파트값 따라간 국채 금리 급등
국채 금리 급등은 2024년 10월 시작한 한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끝났다는 인식이 확산한 데서 출발한다. 특히 이창용 한은 총재가 11월 12일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금리 인하 폭이나 시기, 혹은 방향 전환은 새로운 데이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한 것이 도화선이었다. 인터뷰 공개 직후 국채 금리는 하루 만에 10bp가량 뛰었다. 10월 23일 기준금리를 연 2.50%로 동결한 금융통화위원회 후 “금리 인하 기조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던 이 총재가 외신 인터뷰에서 ‘방향 전환’ 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금리 인상 피벗(piv-ot·통화정책 방향 전환)’이 있을 수 있다는 의구심을 낳은 것이다.
채권시장이 이 총재 발언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건 더 깊은 구조적 배경이 있다. 금리 급등 근본 원인을 서울 아파트값 흐름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매매가격 동향을 분석하면,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서울 아파트값이 오르면 약 2~3주 시차를 두고 국채 금리가 뒤따라 상승하는 패턴이 강화되고 있다.
실제 주택 담보대출 한도를 6억원으로 제한한 6·27 대책, 공급 계획을 발표한 9·7 대책,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투기과열지구·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10·15 대책 전후로 국채 금리는 가파르게 상승했다.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 등을 중심으로 아파트 실거래가가 오를수록 정부의 부동산 규제 강도가 세지니 “서울 집값 안정이 정부의 최우선 과제가 됐기 때문에 통화정책 완화가 제한될 것”이라는 인식이 채권시장에서 빠르게 확산한 것이다. 한 채권시장 관계자는 “서울 아파트값 상승 폭이 가팔라지면서 정부가 내놓은 고강도 부동산 규제책으로 ‘금리 인하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판단이 강해지고 있다”며 “최근 국채 금리 상승은 통화 완화 기조가 약해질 것이라는 시장 판단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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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작용 많은 정책→원화 자산 리스크 부각
문제는 서울 집값 움직임이 통화·금융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그 결과 시중금리까지 흔드는 구조가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는 점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집값 양극화가 심한 상황에서, 서울 일부 지역 집값이 경제 전반의 통화·금융정책 방향을 좌우하자 경제 불균형이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커졌다. 그럼에도 현 정부 고위층은 “현 시기 금리 인하는 서울 집값을 자극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과정이 ‘경제정책이 정치 논리에 흔들린다’는 불신을 키우는 건 더욱 심각하다. 서울·수도권 주요 지역 부동산 매매를 어렵게 한 10·15 대책은 ‘진보 정부 부동산 불패(不敗)론’과 맞서려는 정치 논리에 기반한 측면이 강하다는 평가다. ‘진보 정부가 집권하면 부동산값은 우상향했다’는 세간 인식과 싸우려다 보니, 부작용을 감수하고 무리한 정책을 구사했다는 지적이다.
10·15 대책 이후 뚜렷해진 서울 지역 집값 양극화는 대표적인 부작용 사례다. 11월 10일 기준 서울 송파(0.47%)·성동(0.37%)·용산(0.31%)·서초(0.20%) 등 핵심 지역의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은 전주보다 높아진 반면, 구로(0.11%)·금천(0.02%)·노원(0.01%) 등 외곽 지역은 오름폭이 크게 둔화했다. 강남권은 규제 강화 직후에도 신고가가 이어진 반면, 외곽 지역은 거래가 끊기며 가격 형성 기능 자체가 마비되고 있다. 11월 둘째주 0.17%까지 내려온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도 셋째주 0.2%로 올라왔다. 이 같은 부동산 시장 상황은 정부 정책 신뢰를 떨어뜨리고, 시장이 정책 효과보다 정치적 판단을 먼저 의심하게 하는 악순환을 낳는다.
경제정책에 대한 시장 신뢰가 약화할수록 원화 자산 전반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도 높아질 수 있다. 9월 말 1300원 후반대였던 원· 달러 환율은 10·15 대책 이후 곧바로 1430원대로 급등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12월 금리 인하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시장 수용성이 낮은 고강도 규제가 더해진 결과, 원화 자산 안정성이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서울 공급 대책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래를 옥죄는 규제 일변도 정책을 쏟아내는 것은 부작용을 양산해 정책 신뢰를 떨어뜨리고 원화 자산 안정성을 훼손하는 측면이 있다”며 “최근 환율·금리 급등은 시장 우려를 반영한 것”이라고 했다.
Plus Point
진보는 금리 상승, 보수는 금리 하락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이후 20여 년간 채권시장 흐름을 보면 진보 정권에선 금리가 상승했고, 보수 정권 때는 하락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 4.5%에서 거래됐던 국채 3년물 금리는 집권 마지막 해인 2007년 5.24%까지 올랐다. 부동산값 급등으로 정부가 대출 규제 등을 강화해서다.
이후 보수 정권인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역사적인 저금리가 연출됐다. 이명박 정부 첫해 2008년 연평균 5.27%에 거래됐던 국채 3년물 금리는 박근혜 정부 마지막 해인 2016년 1.44%까지 떨어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충격과 그 후 잠재 성장률 하락 추세가 금리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모두 재정 건전성 우위 정책을 운용한 것도 시중금리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확장 재정을 내세우며 400조원대였던 한 해 정부 예산 규모를 600조원 이상으로 늘렸다. 국가 채무는 600조원 수준에서 1000조원대로 400조원 이상 증가했다. 그 결과 2017년 1.80%에서 거래됐던 국채 3년물 금리는 2022년 3.10%까지 치솟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으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인 0.50%까지 낮췄지만, 재정지출 급증에 따른 국채 물량 증가 부담을 이기지 못했다.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기조하에서 긴축적 통화정책과 재정 건전화를 내세웠다. 그 덕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연 3.50%까지 올렸지만, 국채 3년물 금리는 3.10~3.50% 범위에서 움직였다. 집권 3년간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진 경기 부진 영향도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원석 기자(lllp@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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