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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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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멍 뚫린 부업 사기 수사망…피해자는 회복 포기[부업의 함정]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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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고하기 위해 수원남부경찰서로 향했지만 힘 빠지는 답변만 들었다. 경찰이 "(사건 해결이) 잘 안 될 수 있다"고 한 것. 가해자가 대포 통장을 이용했기 때문에 추적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두 달 후 경찰은 조씨의 사기 사건을 '관리 미제 사건'으로 등록했다. 관리 미제 사건이란, 피의자를 특정할 수 없어 사실상 수사를 중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조씨는 "대포통장에 연루된 사람도 스스로를 피해자라고 하더라"며 "사기를 당한 것도 화가 나는데 피해 복구와 단죄가 어렵다는 점이 더 힘들게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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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해 구멍 뚫린 수사망은 부업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미진한 경찰 수사로 피해자들은 갑갑함을 호소하다 못해 일찌감치 피해 복구가 어렵다고 판단, 복구 노력을 포기했다. 주변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않거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회피해버리는 경우도 있다.

    29일 경찰청에 따르면 사이버 범죄 가운데 부업 사기가 포함된 '기타 사이버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지난해 9만5752건으로 집계됐다. 2020년 3만9906건이던 기타 사이버 사기 범죄 수는 2021년 4만7087건, 2022년 6만5570건, 2023년 7만5659건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수사기관이 지난해부터 기타 사이버 사기 범죄에서 로맨스 스캠, 사이버 투자 사기 항목을 빼내어 별도로 분류하는 데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부업 사기가 확산하면서 오히려 발생 건수는 폭증했다.

    범죄는 더 많이 발생하고 있지만 경찰의 수사는 미진하다. 지난해 기준 기타 사이버 사기 범죄의 검거 건수는 4만1115건으로 검거율이 43%에도 못 미쳤다. 검거율은 2020년 63.2%, 2021년 59.9%, 2022년 57.7%, 2023년 47.4% 등 계속해서 떨어지는 추세다. 경찰 관계자는 "부업 사기가 온라인 또는 비대면으로 주로 일어나는 데다 대포 통장까지 동원되니 추적에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라며 "범죄의 유형도 계속 다양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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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국 부업 사기 피해자들은 경찰의 수사 중단이란 결과를 마주하고 있다. 올해 1~8월 관리 미제 사건 건수는 463만2904건으로 전년(448만6512건)을 이미 넘어섰다. 관리 미제 사건 건수는 2021년 382만6647건, 2022년 403만8485건, 2023년 426만2453건 등 매년 증가 추세다.
    피해 복구하려다 또 사기당해…"비난받을까 봐 어디 말도 못 해"
    국가로부터 방치된 부업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복구를 위해 다른 방식을 찾다가 또 다른 사기에 휘말리기도 했다. 오모씨(45·남)는 지난 10월 추석 명절 중에 495만원의 부업 사기 피해를 당했다. 그는 빠르게 피해를 복구해야겠다는 생각에 각종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텔레그램방에서 연락을 취하다가 오히려 1700만원가량의 추가 사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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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495만원의 부업 사기 피해를 입은 오모씨(50·남)는 피해 회복을 시도하다가 오히려 1700만원가량의 추가 사기를 당했다. 오씨는 부업 사기 가해자의 대포통장의 돈과 가상화폐를 바꿔치기하는 방식으로 피해 회복해준다는 말에 속았다. 오씨 제공


    '사기 상담 24시'라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는 부업 사기 가해자의 대포 통장의 돈과 바꿔치기할 가상화폐가 필요하다고 해 500만원을 입금했지만 그 이후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 오씨는 "경찰의 수사보다 더 빠르게 사건을 해결해준다는 말에 혹해서 추가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며 "한 달 벌어 겨우 먹고 사는데 부업 사기를 당하면서 눈앞이 멀었다"고 전했다.

    피해 복구를 위한 시도 자체를 하지 않고 포기해버리는 피해자들도 많다. 어차피 노력해봤자 피해 복구가 요원하다는 것. 수원에 사는 박모씨(45·여)는 약 1억원 부업 사기 피해를 입었지만 은행의 지급 정지 자체를 신청하지 않았다. 언론 기사 또는 사기 피해자들이 모인 커뮤니티 등에서 부업 사기 피해는 지급 정지 대상에서 제외된다는 내용을 자주 접해서다. 박씨는 "경찰에 사건 접수할 때 지급정지가 가능하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다. 물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이 입을 막은 것"이라며 "부업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 복구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글을 너무 많이 봤다. 어떤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회적 비난을 우려해 부업 사기를 당한 사실을 주변에 알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 김모씨(32·여)는 지난 9월 1530만원가량 부업 사기 피해를 입었다는 것을 부모님이나 주변 지인에게 알리지 않았다. 김씨는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면 함께 피해 복구에 나설 수 있겠지만 '바보 같다'는 비난을 받을까 무서워서 (이야기를) 못했다"며 "무엇보다 탐욕에 눈에 멀어서 사리 판단 안 된다는 말을 듣기 싫었다. 혼자 힘든 감정을 삭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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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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