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호 '묵시록-청(靑), 회(灰)', 2025, 혼합토, 알루미늄 패널.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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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장남 녀석이 이게 말이 되냐. 항아리나 만드는 옹기장이가 됐다니, 기가 막힌다."
어머니가 울면서 찾아왔다. 러닝셔츠 차림에 흙투성이로 자기를 빚는 장남을 보자 억장이 무너졌다. 1965년 홍익대 공예학부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경기도 이천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대 진학을 반대하던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가마를 사주고 떠났다. "이제 네가 알아서 해. 네가 가마 운영하고 싶으면 하고, 학교도 다니고 싶으면 다니고". 그때부터 그는 이천에서 홍대까지 버스로 통학하며 '전통'과 '현대'라는 두 바퀴를 굴려나갔다.
한국 현대 도예라는 큰 획을 그은 거장 신상호(78)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무한 변주'라는 제목으로 열린다. 전시장에 나온 90여 점을 통해 전통 도자에서 조각, 회화, 건축 등으로 경계를 무한 확장한 그의 방대한 예술 세계를 조망할 수 있다.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흙'이라는 소재가 빚어낼 수 있는 경이로운 스펙트럼 앞에서 놀라게 된다. 전통 분청사기의 우아한 맥을 이은 '분청 연작'부터, 장인의 경지를 넘어 조형미술 영역으로 도약한 도자 조각, 그리고 건축물 외벽을 수놓은 대규모 타일 작업에 이르기까지 신상호의 세계는 한마디로 '흙으로 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집대성이다.
신상호 작가. 국립현대미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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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상에 안 되는 건 없다"는 일념으로 흙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전통 장작 가마의 15%라는 빈약한 성공률을 가스 가마 도입으로 95%로 끌어올린 주인공이 바로 그다. 흙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대형 조각과 건축, 회화 작업을 '과학'의 힘을 빌려 해결했다. 남산 하얏트 호텔, 강남 센트럴시티 고속터미널 외벽,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 금호아시아나 사옥(현 콘코디언 빌딩), 서초 삼성타운 등의 외벽에 걸린 그의 작품은 그 결과물이다. 전통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혁신과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의 최근작이자 추상 회화 연작인 '생명수'와 '묵시록'은 도예를 서자 취급하던 한국 미술계에 흙으로도 순수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생명수' 연작은 나무를 멀리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묵시록'은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근거리 시점으로 그린 작품이다. 캔버스 천 대신 알루미늄으로 바꿔 그것을 불에 구워 만든 작품이다. 반복적인 패턴과 흘러내리는 흙의 물성이 단색화를 연상케 한다.
작품도 놀랍지만 그가 전시장에 펼쳐놓은 수집품에 입이 딱 벌어진다. 1990년대 아프리카 원시 미술의 강렬함에 이끌려 수집하기 시작한 아프리카 직물, 목공예, 가죽공예 등이 전시실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는 "남보다 빠른 눈으로 산다는 게 엄청난 희열감을 준다"며 "이건 '병'이기도 하지만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오래된 물건에서 작품의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그는 도예가 출신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그것도 1층 1·2관을 전부 쓴 최초의 작가다.
소감을 물었더니 "흙장난하며 산 60년이 드디어 한을 푼 것 같다"며 "흙이라는 매체가 과학과 만나면서 색을 해결하고 모든 것이 가능해졌다. 흙이라는 재료의 우수성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기쁘다"고 말했다. 홍익대 교수로서 많은 후학을 양성한 그다. 그는 "도예는 7000년 역사를 갖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만지작거린 게 흙"이라며 "지금은 도예가 침체기라고 하지만, 다시 부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3월 29일까지.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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