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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하정우 '윗집 사람들', 말은 많은데 이야기가 없다[슬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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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현실적 장치로 갈등 확대…본질 못 건드려

    원인과 해결 사이 정서적 논리 부재

    이미지·공간으로 감정 못 미쳐…'말맛'만 남아

    아시아경제

    영화 '윗집 사람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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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정우 감독의 영화 '윗집 사람들'은 부부 갈등이라는 생활 밀착형 소재에서 출발하지만, 정작 그 내용은 일상과 멀다. 저녁 식사 한 끼가 관계를 뒤흔든다는 설정은 흥미롭지만, 이를 현실적 감정이나 공감 가능한 서사로 발전시키지 못한다.

    아랫집 부부 현수(김동욱)와 정아(공효진)는 첫 장면부터 각자의 방에서 잠을 자고 대화마저 메신저로 나눈다. 균열의 원인은 반려묘를 들이느냐 마느냐 같은 사소한 문제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윗집 부부 김 선생(하정우)과 수경(이하늬)이 등장해 그룹 섹스를 제안한다. 반발하는 현수를 오히려 이상한 사람 취급하며 자신들이 관계 회복을 도울 수 있다고 나선다.

    이들의 등장과 제안은 갈등을 증폭시키는 장치로만 기능한다. 현수와 정아 부부의 결핍과 관계 균열은 이미 초반부에 충분히 드러나 있다. 이를 새롭게 해석하거나 심화하기보다, 충격과 반발, 즉각적인 리액션만 남는 자극적인 상황극으로 소비된다. 더구나 정아가 김 선생이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체로 거실에 서 있었다는 등의 설정은 서사적 필연성도 미학적 정당성도 찾기 어렵다. 관계의 깊이를 파고들기보다 상황을 과장하는 데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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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윗집 사람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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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부 서사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준점으로는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가 자주 거론된다. 부부 갈등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지 않고, 한 사회의 정서와 계급적 불안으로까지 끌어올려 보편적 비극으로 확장한 작품이다. 극 중 조지와 마사는 존재하지 않는 '아들'을 공동의 환상으로 만들어내며 공허한 결혼 생활을 버틴다. 그 허구가 무너지는 순간, 두 사람은 서로를 지탱해왔던 거짓과 함께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린다. 올비가 그린 것은 단순한 불화가 아니었다. 환상에 기대어 삶을 유지하려는 미국 중산층의 불안과 허위의식이었다.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대학살의 신(2011)' 역시 아이들의 놀이터 싸움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두 부부의 대화를 따라간다. 처음에는 정중함을 유지하지만, 밀폐된 공간이 주는 압박 속에서 위선은 점차 무너진다. 폴란스키 감독은 인물 간 권력관계를 카메라 앵글과 조명으로 섬세하게 포착하며, 대화의 균열이 곧 관계의 본질로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비현실적 설정을 덧붙여 자극만 키우는 윗집 사람들과 분명한 대비를 이룬다.

    윗집 사람들은 갈등을 봉합하는 과정 또한 작위적이다. 정신과 의사로 설정된 수경이 과거 이야기와 고백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흘러가지만, 이 전개는 인물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억지로' 부여하는 역할에 그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경계했다. 서사 내부의 필연성이 아니라, 외부에서 등장한 장치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극의 완결성을 해친다고 봤다. 윗집 사람들은 제3자의 개입이 왜 화해로 연결되는지에 대한 정서적 논리도 충분히 제시하지 못한다. 관계극에서 화해는 원인을 직면하고, 서로의 상처를 인정하며, 새로운 이해에 도달할 때 설득력을 얻는다. 그러나 이 영화의 화해는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우연히 봉합된 듯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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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윗집 사람들'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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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대사 중심의 구조에서도 드러난다. 이런 밀폐 공간 드라마가 영화적 성취로 이어지려면, 언어를 이미지와 공간, 감정의 흐름으로 확장하는 연출력이 필요하다. 대학살의 신이 대표적인 모범 사례다. 한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폴란스키 감독은 인물들의 위치 변화, 소품의 활용, 카메라 앵글의 변화를 통해 권력관계의 이동을 시각화했다. 대사는 많지만, 이미지가 대사 이상의 것을 말한다.

    윗집 사람들은 그 확장을 끝내 포기한다. 대사로만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 이미지와 편집은 감정을 심화시키지 못하고, 공간 역시 인물의 내면을 담아내는 데 실패한다. 관객의 기억에 남는 것은 배우들이 순간적으로 만들어내는 '말맛'뿐이다. 공효진과 김동욱의 연기가 관계의 공허함을 정확히 포착하지만, 이를 떠받치는 서사적 설계가 빈약해 정서적 울림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는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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