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
지난해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은 전례 없는 기습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리고 정확히 1년 뒤인 지난 3일 오후 10시33분, 이번에는 더불어민주당이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을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전격 통과시켰다.
두 사건은 1년 간격의 기묘한 대칭을 이루며, 한국 정치가 얼마나 빠르게 극단적 경로로 움직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름은 ‘전담재판부’지만 실질은 ‘특별재판부’에 가까운 이 법은 민주당이 사법기관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겠다는 선언과도 같다. 한국 정치와 사법의 작동 방식이 대전환기의 문턱에 서 있다.
두 해의 12월3일이 남긴 균열
지난해와 올해 12월3일은 서로 다른 사건이지만, 한국 정치에서 상징적으로 연결된다. 1년 전의 계엄이 대통령 권력의 폭주였다면, 1년 뒤의 특별재판부 설치는 국회 다수당의 사법구조 개입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충격이다. 두 사건 모두 권력기관이 헌정 질서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치적 목적을 위해 비상 조치를 꺼내들었다는 점에서 공통성을 가진다.
민주당은 내란 사태의 ‘단죄’를 강조하며 정치적 정당성을 주장하지만, 야당은 “판사를 다시 고르는 것 자체가 사법에 대한 불신의 제도화”라며 반발하고 있다. 사법부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당파적 신뢰의 문제가 되어버린 순간이다.
이 두 날짜의 대칭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민주당이 ‘계엄 1년’을 상징적 분기점으로 활용해 제도 개편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정치적 기획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문제는 그 과정이 제도적 안정성보다 정치적 효과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흐른다는 점이다.
전담재판부인가, 사실상 특별법원인가
법률의 명칭은 ‘전담재판부 설치’지만, 실제 내용은 ‘특별재판부’에 훨씬 가깝다. 판사 임명 방식이 일반 사건과 완전히 다르며, 국회·법무부·판사회의가 참여해 후보를 추천하는 구조는 누가 봐도 정치적 요소가 개입될 여지를 남긴다. 특정 사건을 특정 위원회가 추천한 특정 판사가 맡도록 한다는 점에서 본질은 특별법원과 유사하다.
헌법이 특별법원을 금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민주당은 “법원 안에 부서를 하나 더 만드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장은 “위헌 요소가 매우 명백하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으며, 재판의 독립성과 권력분립 원칙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의 1심을 맡고 있는 지귀연 재판부가 교체될 가능성은 법률의 취지와 별개로 법적 설계가 특정 재판부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변론 종결 이전이면 언제든 재판이 이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 불신이 민주당 움직인 이유
최근 법원이 한덕수 전 국무총리,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추경호 전 원내대표 등의 구속영장을 연달아 기각하자, 민주당 내부에서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한계점에 도달했다. 정청래 민주당 대표가 “사법부가 내란 세력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 발언은 민주당의 감정적 기류를 그대로 반영한다.
민주당 입장에서 보면 내란 사건 수사가 ‘비정상적으로 더디거나 미온적’이라는 판단이 강하다. 일부 판사와 검사들이 사건을 소극적으로 다룬다는 인식, 심지어 ‘내란 세력을 옹호한다’는 정치적 해석까지 더해지며 사법기관 전체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사법 시스템을 ‘특검-특판-특수처’ 체제라는 새로운 구조로 재편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개혁이 아니라, 사법 작동원리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사법적 정당성을 회복하겠다는 명분 아래, 사법제도를 정치적 신뢰의 기준에 맞게 다시 디자인하는 셈이다.
내란특별법이 바꿔놓을 재판 지형도
법안은 1심과 2심 모두 특별한 구조의 전담재판부에서 진행하도록 하고, 내란 사건 전담 영장판사까지 별도로 두도록 규정한다. 이는 사실상 윤 전 대통령과 당시 정부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설계된 ‘맞춤형 재판틀’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구속기간을 최대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조항은 정치적 해석을 낳기 충분하다. 민주당이 “국민이 우두머리가 풀려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언급한 것은, 이 조항이 특정 인물의 재판 전략을 직접적으로 겨냥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기존 재판부가 진행 중인 사건도 변론이 종결되지 않았다면 전담재판부로 이관된다. 기간 안에 종결되지 않으면 자동 이관되는 구조는 특정 재판부의 교체 가능성을 현실화하는 장치다.
정쟁은 올해, 선거는 내년이라는 계산
민주당이 이날 법사위에서 법안을 기습 처리한 것은 정치적 메시지 이상의 실용적 계산이 숨어 있다. 논란이 거셀수록 차라리 올해 안에 모든 부담을 끝내고, 내년부터 지방선거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이다. ‘맞을 매는 올해’라는 내부 기류가 분명히 존재한다.
또 윤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 만료일(2026년 1월18일)을 앞두고 연장이 가능한 법적 장치를 마련해두려는 목표도 분명히 작동했다. 정치 일정과 재판 일정을 동시에 고려한 셈이다.
민주당은 ‘사법 정의 회복’을 내세우지만, 이 같은 빠른 입법은 정쟁의 불씨를 단기간에 정리하고, 내년의 선거체제를 구축하려는 전략적 움직임으로 읽힌다.
특검·특판·공수처 삼중 구조의 등장
같은 날 통과된 법 왜곡죄는 판·검사가 사실관계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거나 법을 잘못 적용하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다. 이는 수사·재판을 하는 주체들을 사법적 통제의 대상으로 삼는 매우 강한 제도다.
공수처법 개정안은 기존 직무 관련 범죄에 한정됐던 공수처의 역할을 판사·검사에 대한 ‘모든 범죄’로 확대했다. 이는 공수처를 사실상 고위 법조직에 대한 상시 수사기관으로 재편하는 효과를 낳는다. 민주당은 공수처를 “사법개혁의 중심축”으로 삼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에 3대 특검까지 더하면, 한국의 사법 구조는 특검-특판-특수처가 삼중 구조로 돌아가는, 이른바 ‘특검·특판공화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는 제도적 균형을 해칠 위험과 함께 사법 정치화를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뒤따른다.
사법부와 야당의 위헌 경고음 고조
야당은 즉각 “삼권분립 파괴” “나치식 특별재판소” “사법 장악”이라는 강한 표현으로 반발했다. 재판부 구성에 국회가 개입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사법의 정치적 종속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법원행정처 역시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다. 헌법재판소 사무처장이 추천위원회에 참여하면 향후 위헌 심판에서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법조계에서 잇따르고 있다.
결국 이 법률은 헌재의 판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으며, 법원 내부의 갈등도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입법부·사법부·행정부 간의 구조적 긴장이 새로운 국면에 들어간 셈이다.
본회의 이후 다가올 사법 정치의 파장
민주당은 이 법안을 오는 9일 본회의에 상정해 처리할 계획이다. 자체 의석 구조를 볼 때 통과 가능성은 매우 높다. 다만 여론적 부담, 위헌 논란, 사법부의 반발 등을 고려해 최종 일정 조율을 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가장 큰 변화는 윤 전 대통령 재판이다. 기존 재판부가 계속 담당할지, 새로운 전담재판부로 넘길지는 재판부의 판단에 달려 있지만, 어느 방향이든 정치적 논란은 불가피하다.
궁극적으로는 사법체계가 중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남는다.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민주당의 명분이 제도적 불안정으로 이어진다면, 한국 민주주의는 또 다른 형태의 불균형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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