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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6 (토)

    교수와 제자들 창업했더니 260억 몰려… 세계 5곳만 가진 기술[허진석의 톡톡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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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로 세상에 없던 단백질 설계해 신약 만드는 갤럭스

    3차원 단백질 구조 예측 25년… 국제대회 10년 연속 글로벌 탑3

    수십만개중 1개 찾던 신약후보물질… 50개 설계해 15개나 적중

    “신약, 발견 아닌 설계의 시대… 개발 기간-비용 확 줄 것”

    동아일보

    박태용 갤럭스 부사장이 대장암 간암 위암 뇌종양 등에 관여하는 표적단백질(FZD7)에 정교하게 붙어 치료효과를 높이는 드노보 항체 모형(왼손에 든 큰 모형)을 들고 설계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타사가 개발하던 밴틱튜맙의 뼈가 부서지는 부작용을 없앤 드노보 항체 신약을 기대하고 있다.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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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백질 치료제 중 대표적인 것은 항체 치료제다. 항체는 바이러스나 암세포 표면의 특정 분자 부위에 정확하게 달라붙어야만 제 역할을 한다. 기존 방식에서는 이런 항체를 얻기 위해, 동물에 항원을 주입해 몸이 스스로 항체를 만들게 하거나, 미리 만들어 둔 수십만 개 이상의 항체 후보 집합(라이브러리)을 하나씩 시험해 보면서 그중에서 잘 붙는 항체를 골라내야 했다.

    그런데 이 패러다임을 뒤집는 기술이 등장했다. 인공지능(AI)이 처음부터 완전히 새로운 항체(단백질)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이렇게 신규 설계된 항체를 ‘드노보(de novo·처음부터라는 의미의 라틴어) 항체’라 한다. 세계적으로 드노보 항체가 처음 등장한 것은 2024년이고, 세계에서 이 기술을 가진 곳은 5곳뿐이다. 한국에선 갤럭스(대표이사 석차옥)가 유일하다. 2일 서울 관악구 본사에서 만난 박태용 부사장(32)은 “5개 회사가 서로 다른 접근법으로 질병 극복을 노리고 있다”며 “갤럭스는 폐암과 유방암, 췌장암, 자가면역질환, 비만, 뇌 질환 등의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 8종에 작용하는 항체를 설계하며 신약 후보 물질 탐색 효율을 극적으로 높이고 있다”고 했다.

    ● 3차원 단백질 구조 정밀 예측

    우리 몸의 단백질은 20가지 아미노산이 1차원 서열로 연결된 후, 마치 종이접기처럼 특정한 3차원 구조로 접힌다. 이 구조가 단백질의 기능을 결정한다. 문제는 아미노산 100개만 돼도 이론적으로 가능한 3차원 구조가 바둑 경기의 경우의 수보다 훨씬 많다는 점이다.

    갤럭스의 AI 플랫폼 갤럭스디자인(GaluxDesign)은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서열을 입력으로 받아 그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한다. 더 나아가 특정 표적에 잘 결합하거나 원하는 기능을 수행하도록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을 역으로 찾아낸다.

    면역항암제로 설명해 보자. 암세포는 PD-L1이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면역세포의 공격을 피한다. 박 부사장은 “암세포가 PD-L1을 내세워 ‘나 아군이야’라며 면역세포를 속이는 것이다. 그런데 항체가 PD-L1에 먼저 붙으면 암세포는 위장을 못 하게 되고, 면역세포의 공격을 받아 죽게 된다. 우리 기술을 활용해 PD-L1에 잘 붙는 항체를 정밀하게 설계할 수 있다”고 했다.

    갤럭스는 올해 3월 연간 7조 원어치 가까이 팔리는 세계적인 제약사 로슈의 면역항암제 ‘티센트릭’과 동등하거나 더 우수한 결합력과 안정성을 가진 새 항체를 단번에 설계했다. 박 부사장은 “AI로 설계한 구조와 실험실에서 만든 단백질(항체) 구조 간의 차이는 원자 지름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거의 동일한 구조였다”며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단백질을 매우 현실적으로 설계했다는 의미”라고 했다.

    특히 효율성이 눈에 띈다. 갤럭스가 올해 11월 공개한 데이터에 따르면, 질병의 원인이 되는 표적 단백질별로 AI가 50개만 설계했는데도, 이 중에서 15개(30%)가 실제로 표적에 잘 붙는 항체로 만들어졌다. 수십만 개의 후보를 하나씩 시험하는 기존 방식과는 비교를 불허하는 탐색 효율성이다. 박 부사장은 “지금까지 서로 다른 8개의 표적에 대해 모두 드노보 설계에 성공했고, 이 가운데 7개 표적에서는 매우 강하게 결합하는 약물 후보급 항체를 확보했다”고 했다.

    ● “연구 결과를 세상에서 쓰이게 하자”


    갤럭스의 창업은 25년간 단백질 구조 연구에 몰두한 연구자와 그 제자들이 의기투합해 이뤄졌다. 석차옥 대표이사(55)는 1989년 대입 학력고사 여자 수석으로 서울대 화학과에 입학한 후 시카고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며 단백질 구조 연구에 몰두했다. 2000년 UCSF에서는 단백질 접힘 이론의 대가인 켄 딜 교수 연구실에 합류하며 더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 2004년 서울대 화학부 교수로 부임한 이후에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갤럭시(GALAXY)라는 단백질 구조 모델링 플랫폼을 개발해 왔다. 석 대표는 우주의 은하계가 복잡하지만 물리 법칙에 따라 움직이듯, 분자 세계도 기본 원리를 안다면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연구자였다.

    그 믿음은 성과로 증명됐다. 국제 단백질 구조 예측 대회(CASP)에서 2010년부터 10년 이상 글로벌 탑3 안에 들었고, 단백질 상호작용 예측 대회(CAPRI)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18년 CASP에서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폴드(AlphaFold)가 기존 방법들을 압도하는 성능을 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는데, 그때 석 대표는 심사 위원단에 참여해 ‘알파폴드 쇼크’ 현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기도 했다.

    기초과학 연구자로서 자연의 분자 원리에 대해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에만 매진하던 석 교수는 2020년 전환점을 만난다. 박사과정 졸업을 앞둔 제자 박태용의 창업 제안이었다. 박 부사장은 “인류의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이루려면 기술 창업의 길이 지름길이라 생각했다”며 “연구실에 있던 원종훈 양진솔 연구원과 뜻을 모았고 교수님이 기꺼이 동참해 주셨다”고 했다.

    갤럭스의 핵심 기술은 단백질 구조의 물리적 원리를 AI에게 학습시킨다는 점이다. 박 부사장은 “거대언어모델(LLM)은 패턴만 학습시키지만 우리는 ‘이게 왜 답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으며 물리화학적 원리까지 학습시킨다”며 “원리를 학습한 AI는 데이터 양이 적어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문제도 원리에 기반해 답을 내놓는다”고 했다.

    ● 여명기인 AI 신약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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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차옥 갤럭스 대표이사(오른쪽)가 연구원과 함께 단백질 설계 AI의 성능을 높이는 방안에 대해 상의하고 있다. 갤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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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I 신약 개발 시장은 여명기에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AI 신약 개발 시장은 2023년 약 1조 3000억 원에서 2028년 약 4조 2000억 원으로 3배 이상 커질 전망이다. AI를 활용하면 전통적인 신약 개발 기간을 10∼15년에서 3∼4년으로, 비용을 수조 원에서 수천억 원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때문에 AI 신약 개발은 수백조 원에 달하는 전체 신약 시장을 근본적으로 재편한 잠재력을 가진 기술로 평가 받는다.

    갤럭스는 지금까지 260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글로벌 빅파마를 포함해 셀트리온, LG화학, 한올바이오파마 등 17개 파트너와 협업 중이다. 이달 1일에는 셀트리온과 다중 항체 기반 차세대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공동 개발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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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럭스의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있는 신약개발실험실에서 연구원들이 설계된 항체를 실제 항체로 만들고 있다. 갤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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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갤럭스는 2027년까지 빅파마와 대형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AI 설계 단백질 신약의 임상시험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후보물질 탐색 성공률을 높인 것은 대단한 성과지만 신약 개발까지 모두 효율화하려면 갈 길은 멀다. 단백질 설계를 잘한다고 해도 실제 몸속에서는 이상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전혀 엉뚱한 곳에 붙는 경우도 생기기 때문이다. 효율적으로 단백질 치료제를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다.

    박 부사장은 “드노보 설계를 통해 내가 원하는 특성을 가진 단백질을 미리 설계하고 조합할 수 있는 시대가 이제 막 열린 셈”이라며 “후보 물질 탐색뿐만 아니라 임상 성공률까지도 AI 신약 개발 기술로 높일 것”이라고 했다. 갤럭스는 항체 치료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다른 단백질 치료제인 효소 치료제와 사이토카인 등의 연구 개발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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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진석 기자 jameshu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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