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 편집국장 대리 |
주말 동안 방송인과 관련된 불미스러운 뉴스가 많았다. 이런 일 뒤에는 으레 방송 하차 여부가 회자된다. 최종 결정은 본인 혹은 방송국의 몫이다. 그런데 이걸 법으로 만든다면? ‘○○○의 방송 출연 금지에 관한 법률’ 같은 특정인만 겨냥한 법률, 어딘지 어색하다.
보통 법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규범을 규정한다. 세상사 전부를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일부만 담는 순간 나머지 사람과의 차별이 발생한다. ‘법 앞에 평등’이라는 원칙이 설 자리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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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사법개혁 법안’ 위헌 소지 내포
통과되면 헌재행 유력, 결과에 촉각
합헌 시 특정인 겨냥 법 봇물 우려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제16차 전체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특별법이 여당 주도로 통과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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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일찍이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설파한 것처럼 법은 도덕의 최소한만 포함한다. 대신 그걸 어기면 처벌되도록 하는 강제력을 갖는다. 특정한 사람과 사건이 그 법 조항에 해당하는지 판단하고, 집행하는 것은 사법과 행정을 통해 이뤄진다. 반면에 사법과 행정을 건너뛰고 바로 집행하게 하거나, 특정 사람(사건)만 콕 짚어 적용하는 법을 ‘처분적 법률’이라고 한다. 가급적 이를 피하는 것이 입법자들의 금도다.
그런데 우리 법체계에는 의외로 처분적 법률이 많다. 당장 3대 특검이 그렇다. 법 명칭마저 ‘윤석열 전 대통령 등에 의한~’ ‘김건희와~’ ‘순직 해병 수사방해~’ 등 특정인 이름으로 시작한다. 수많은 산업과 지역에 대한 특혜를 주겠다는 ‘지원법’들도 버젓이 운용된다.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우리 헌법은 처분적 법률 제정을 금하는 명문 규정이 없으므로 특정 규범이 개인 대상 또는 개별 사건 법률에 해당한다고 하여 그것만으로 바로 위헌은 아니다”는 것이다. 2008년 BBK 특검법 위헌심판 사건에서 내놓은 답이다. 다만 그런 차별이 합리적인 이유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특검법 자체는 합헌이라 판단하면서도 참고인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 소환이 가능토록 한 ‘동행명령제’ 조항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처분적 법률이라고 해서 무조건 위헌은 아니지만 ‘영장주의’와 같은 기본 원칙을 침해하는 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내년에도 헌재의 시간이 이어질 듯하다. 지금 민주당이 쏟아내는 ‘사법개혁’ 입법의 대부분이 위헌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국회 법사위에서 내란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 “처분적 법률이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듯 처분적 재판부도 허용되지 않는 것이 선진 사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법이 통과되면 곧장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그럴 경우 재판은 중단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기한 만료로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민주당은 뒤늦게 내란과 외환 사건에 한해 재판을 중단하지 못하도록 하는 헌재법 개정안을 내놨다. 위헌 법률의 모순을 더 심한 위헌으로 덮는 꼴이다. 법원행정처 폐지는 대법원장 인사권을 침해하는 삼권분립 저해 요소를 담고 있고, 법왜곡죄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많다. 모두 헌재행이 유력하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5일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여당이 추진 중인 내란전담재판부 설치와 법 왜곡죄 법안 신설 등에 대해 논의했다. 김종호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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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국회·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한 재판관으로 구성되는 헌재는 늘 정치 성향을 평가받는다. 지금은 6대3 정도로 진보·중도 성향이 우세하다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헌재는 진영 논리보다는 헌법적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곳이고, 또 그래야만 한다. 지난 4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도 선고일 아침까지 “재판관 성향을 보니 5대3이 확실하다”는 추측이 돌았지만, 뚜껑을 열어 보니 전원일치 파면이었다. “연륜 있는 법관들은 정치적 성향보다는 법과 원칙에 충실하려는 성향이 더 강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다만 헌재가 유독 집착하는 재판소원 허용을 여당이 미끼로 사용해 유혹하면 각종 ‘사법 개혁’ 법안들의 위헌 판단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 합헌이란 판정이 내려지면 처분적 법률의 입법을 삼가는 둑이 허물어질 수도 있다. 쓰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러다 ‘최 기자의 글쓰기 금지법’이 나오지나 않을지 말이다.
최현철 편집국장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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