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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9 (화)

    [청계광장]지상의 방 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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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니투데이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요즘 관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가요?" "시내에 있는 고시원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으니 이렇게 작은 관에서라도 마음 편히 지내자 마음먹었죠. 믿을지 모르시겠지만 사실 4년 전 제가 지금 가진 돈으로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답니다."(황수아 희곡, '가로묘지 주식회사' 부분)

    집값폭등으로 고시원 임대료마저 감당 못하게 된 무주택자들이 관에 세 들어 산다는 내용의 세태풍자극이다. 극심한 주거난 가운데 서민들은 관마저 구하기가 어렵다. 관(棺)은 삶에서 죽음으로 떠밀린 인간의 최후 거처다. 희곡은 관을 더이상 밀려날 곳 없는 이들의 마지막 방으로 묘사하는데 그 관이자 방은 현실에서 원룸, 옥탑, 반지하, 고시원, 달방과 마찬가지다. 거기서 발생한 고독사와 자살과 재난 및 재해에 의한 사망 등을 떠올리면 1인가구의 좁고 습하고 냄새나는 방은 확실히 관이다.

    몇 해 전 여름, 폭우에 침수된 서울 신림동 반지하방에서 발달장애를 가진 일가족이 목숨을 잃었다. 방이 관이 된 것이다. '가슴을 풀어헤친 여인,/ 젖꼭지를 물고 있는 갓난아기,/ 온몸이 흉터로 덮인 사내/ 동굴에서 세 구(具)의 시신이 발견되었다'(김성규 '독산동 반지하동굴 유적지' 중)던 2004년의 시는 지금도 현실에서 생생하다. 한국 사회의 외피는 화려해졌지만 찬란한 빛은 더 짙은 그늘을 키웠다. 양극화는 심화하고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쓰러졌다. 집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반지하동굴'에 산다. 관속으로 들어가 뚜껑을 닫는다.

    침실과 거실과 부엌과 현관의 구별이 없는 방, 좁은 공간에 억지로 문 하나 끼워넣어 화장실을 겨우 둔 방, 그마저도 없어 공동화장실을 써야 하는 방, 집이라고 하기엔 거기 사는 그 자신도 민망해서 '방'이라고 부르는 방, 여기 계속 살다간 죽을 것 같은 방, 이미 내가 죽은 방, 사람이 죽어도 사람이 모르는 방, 닦아내고 긁어내고 집게로 건져서 사람이었던 주검을 수습해야 하는 방, 관인지 방인지 모르겠는 방, 아니 관. 그곳이 바로 한국 사회의 방이다.

    '삼백에 삼십으로 신월동에 가보니/ 동네 옥상으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연탄창고 아닌가/ 비행기 바퀴가 잡힐 것만 같아요/ (…) 삼백에 삼십으로 녹번동에 가보니/ 동네 지하실로 온종일 끌려 다니네/ 이것은 방공호가 아닌가/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할 것 같아요'(씨없는수박 김대중 '300/30' 중)라는 노래에서 무주택자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30만원으로 방을 구하러 다닌다. 신월동에서는 옥탑투어를 하고 녹번동에서는 지하실 탐사를 한다.

    고작 '삼백에 삼십'으로는 옥상 연탄창고나 지하 방공호 같은 방밖에 빌릴 수 없다. '삼백'은 사회초년생이나 빈곤계층이 지닌 전 재산이고 '삼십'은 한 달에 지불할 수 있는 최대치의 거주비용이다.

    공간은 계급이 된다. 이제는 브랜드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임대아파트 사는 아이들을 '임거'(임대아파트 거지)라고 부르는 세상이다. 이 계급사회에서 원룸이나 옥탑, 고시원은 가장 비천한 세계다. 브랜드아파트, 단독주택, 고급빌라, 역세권 오피스텔이 카스트를 이룬다면 계급 바깥의 작은 방에 사는 장애인, 독거노인, 미혼모, 취업준비생 등 사회 취약계층은 불가촉천민이다.

    모두 다 소중한 생명이자 존엄 있는 인간이지만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입장권인 '지상의 방 한 칸'이 없어 소외된 자들이다.

    심리적 문제, 취업실패 등 여러 이유로 사회진출을 포기한 채 외출 없이 방 안에서만 생활하는 '은둔청년'이 서울에만 13만명이라고 한다. 전국적으로는 6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명절마다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러 집으로 가지만 이들에게는 돌아갈 집도 떠나갈 집도 없다. 문을 걸어잠그고 세상의 틈입을 차단한 그 방들이 부디 관이 되지 않도록 복지는 늘 사각지대를 향해야 한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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