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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31 (수)

    이슈 '미중 무역' 갈등과 협상

    대만→미국→中으로...엔비디아 AI칩에 관세·안보 이중족쇄 채운 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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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만산 칩, 미국 경유해 중국 수출
    안보 심사 명분, 관세 실리 챙겨
    화웨이 기술 추격 따돌릴 고육책


    한국일보

    엔비디아 홈페이지에 소개된 그래픽처리장치(GPU) 'H200'. 엔비디아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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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장고 끝에 대(對)중국 수출을 허용한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 H200이 대만→미국→중국이라는 비효율적인 경로를 거칠 전망이다. 대만에서 생산돼 중국으로 직행하는 대신 미국 본토를 경유해 '특별 안보 심사'를 받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대내외적 명분을 챙기는 동시에 막대한 관세 수익까지 노린 트럼프식 '실리적 역발상'으로 풀이된다.

    9일(현지시간)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안보 심사를 하기 위해 대만에서 만들어진 칩을 바로 중국으로 보내지 않고,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들여와 심사를 마친 뒤 다시 중국으로 보내는 'U턴 형태'의 수출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칩은 대만 TSMC에서 전량 위탁생산된다.

    이 같은 비효율적인 물류 동선을 고안한 배경을 놓고 트럼프 대통령의 정교한 계산이 깔려 있다고 WSJ는 전했다. 이런 방식을 취하면 먼저 ①'수출세 금지' 조항을 우회해서 관세를 징수할 수 있다. 미국 헌법은 자국 기업의 수출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칩을 미국으로 먼저 '수입'한 뒤 재수출하는 형식을 취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WSJ는 "칩이 대만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순간 '수입품'이 되기 때문에, 트럼프 행정부가 엔비디아 등 AI 칩 기업에 부과하려는 25%의 수수료를 합법적인 '관세' 명목으로 징수할 법적 공간이 열린다"고 분석했다.

    ②정치적 반발을 잠재울 '안보 명분'도 확보할 수 있다. 현재 미 의회에는 상무장관이 첨단 칩의 중국 수출 허가를 거부하도록 강제하는 '안전하고 실현 가능한 반도체 수출법(SAFE법)'이 발의된 상태다. 트럼프 행정부는 칩을 미국 본토에 들여와 직접 검수하는 절차를 보여줌으로써, 대중국 강경파들의 안보 불안을 불식시키려는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해석된다.

    안보는 '핑계', 목표는 '관세수익'?


    그러나 미국 정치권과 업계 일각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칩을 미국 땅에서 검사한다고 해서 중국군이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AI 칩 안보의 핵심은 물리적 검사가 아닌 '최종 사용처' 추적에 있기 때문이다. 또한 관세 부과에 따른 부담은 결국 무역 당사자들에게 돌아간다. 엔비디아는 물류비 증가와 관세 부담을 떠안게 됐고, H200 구매자인 텐센트·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들은 비용 상승을 감수하고 엔비디아 칩을 살지, 아니면 가성비가 높아진 자국 화웨이 제품으로 선회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의 이번 결정에는 중국 화웨이의 기술 추격세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통신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화웨이의 최신 AI 칩 '어센드' 기반 플랫폼이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기반 서버(NVL72)와 유사한 성능을 낼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가 내년에만 수백만 개의 칩을 생산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봉쇄보다는 구형이 된 H200을 팔아 실리를 챙기고 중국을 미국 기술 생태계에 묶어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H200을 중국에 수출하더라도 미국이 18개월 이상의 기술 격차를 유지할 수 있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실리콘밸리= 박지연 특파원 jyp@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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