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연명의료보고서’… “원하지 않는 치료 받는 노인 더 늘었다”
연명의료 중단 절차가 늘었지만, 여전히 많은 환자들은 본인의 의사와 무관한 치료를 받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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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꾸준히 늘고 있음에도 실제 사망자 가운데 연명의료를 받은 고령층 비율은 되레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스스로의 의사가 임종기 의료 결정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가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11일 발표한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2013~2023년 65세 이상 사망자 259만명을 분석한 결과 연명의료를 받은 비율은 2013~2017년 55%에서 2023년 67%로 상승했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중단 건수는 늘었지만 상당수 환자가 여러 차례 시술을 거친 뒤에야 중단에 이르는 현실이 드러난 것이다. 같은 기간 연명의료 시행 기간도 평균 19일에서 21일로 늘었다.
반면 사전 의사표현과 실제 의료 결정 간 괴리는 더욱 커졌다. 2023년 노인실태조사에서 65세 이상 응답자의 84.1%는 “회복 가능성이 없다면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고 답했지만 실제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유보·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보고서는 “환자의 선호가 제도와 현장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많은 이들이 원치 않는 시술을 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연명의료 과정에서의 고통도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산출한 ‘연명의료 고통지수’에 따르면 고령 환자가 경험하는 평균 신체적 고통은 단일 질환이나 시술에서 나타나는 최대 통증의 3.5배에 달했다. 상위 20% 환자의 고통지수는 12.7배까지 치솟았다.
연명의료 환자 수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6.4% 증가했다. 보고서는 이 같은 증가세에 고령화뿐 아니라 제도 운영상의 한계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사전 논의 부재, 의료기관윤리위원회 부족, 임종기 판정 기준의 모호성, 완화의료 인프라 부족 등 모든 절차 단계에서 제약이 식별됐다는 것이다.
특히 연명의료 중단 절차를 개시하기 위해 필수적인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하면 설치율이 현저히 낮았다. 종합병원 설치율은 65%, 요양병원 11%, 병원 3%에 그쳤다. 대안으로 마련된 공용윤리위원회는 전국 13곳에 불과해 약 200개 의료기관 업무를 동시에 처리하고 있다.
연명의료 결정 지연은 가족과 사회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 동안 지출한 본인부담 의료비는 2013년 547만원에서 2023년 1088만원으로 10년 만에 두 배 늘었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약 40% 수준이다. 건강보험 지출에서 연명의료 환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3.6%에서 2022년 15%로 상승했다.
보고서는 “연명의료 결정을 둘러싼 제도 미비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며 △대국민 홍보 강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개인화 △제도 사각지대 해소 △생애말기 돌봄 연속성 강화 등을 보완책으로 제시했다. 이인로 한국은행 연구원은 “연명의료결정법의 취지는 특정 선택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가치와 선호가 그대로 현장에 반영되도록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양다훈 기자 yangb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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