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한미는 관세와 안보 협상에 몰두하느라 대북정책에 대해선 조율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8월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대화 제스처에 맞춰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게 어쩌면 전부일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미국 행정부는 ‘북한 비핵화’를 내세우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지칭했고, 최근 발표된 국가안보전략(NSS)에선 북한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 안에서도 통일부 장관이 부처 간 조율 없이 한미 연합훈련의 조정을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한미 간 대북정책 조율이 필요한 이유는 이처럼 한미 양쪽에서 중구난방식 얘기가 난무하면서 결과적으로 일체의 대화를 거부하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입지만 높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케빈 김 주한 미국대사대리가 최근 우리 정부 고위급 인사를 잇달아 만나 연합훈련 조정론 등 일각의 대북 유화론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한미 간 일관된 대북 메시지를 위한 협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장 내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김정은과의 만남을 재추진할 가능성이 높은 터라 시간적 여유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한미 조율을 위해선 이 대통령이 자임한 페이스메이커로서 우리의 역할을 재점검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허 스타일과 ‘미국 우선주의’ 협상 기조로 볼 때 북-미 직거래는 우리만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야 하는 결과를 낳을 위험성이 다분하다. 최근 미국 측이 연합훈련 조정론의 ‘과속’을 지적한 것도 정작 피스메이커가 꺼낼 협상 카드를 페이스메이커가 먼저 공개해 버리느냐는 불만일 수 있다. 한미가 로드맵부터 면밀히 맞춰봐야 한다. 특히 잘못된 샛길로 빠지지 않도록 안전판을 설치하는 것이야말로 페이스메이커의 중요 임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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