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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5 (월)

    [기고]외교부, ‘제2워킹그룹’ 망령을 당장 걷어치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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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만, 작금의 한반도 외교에서 되풀이되는 것은 비극도 희극도 아닌 구조적 실패다. 최근 외교부와 주한 미국대사관을 중심으로 추진 중인 ‘한·미 대북정책 정례 협의체’는 실패의 전형을 다시 불러내고 있다. 공조와 조율을 말하지만 실체는 2018년 남북관계를 사실상 미국의 사전 승인제에 가두었던 한·미 워킹그룹의 망령에 가깝다. 이재명 정부가 천명한 ‘국민주권 대북정책’은 대북정책의 출발점을 워싱턴이 아닌 서울에 두겠다는 주권 회복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아 외교부가 통일부를 우회해 미국과 별도의 정례 협의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은 이를 정면 위배하는 행위다. 외교부는 미국 국무부의 ‘용산 출장소’가 아니다.

    첫째, 협의체는 정부조직법을 무력화하는 명백한 월권이다. 법률은 통일부를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의 주무 부처로 규정하고 있다. 외교부의 역할은 북핵 문제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외교적 지원에 한정된다. 그럼에도 외교부가 대북정책 전반을 미국과 사전 조율하겠다는 것은 통일부 위에 또 하나의 미국발 통제선을 설치하겠다는 것으로, 협업이 아니라 권한 침식이다.

    둘째, 우리는 이미 뼈아픈 실패를 경험했다. 2018년 평화의 봄기운 속에서도 한·미 워킹그룹은 남북관계의 속도와 범위를 통제했고 타미플루 지원 같은 인도적 협력조차 제재 프레임에 가두었다. 그 결과 남북 대화의 동력은 급속히 소진됐다. “이번은 다르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구조가 같으면 결과도 같기 때문이다.

    셋째, 협의체는 한국 외교가 지향해야 할 방향과도 어긋난다. 신냉전과 다극화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중견국 한국에 요구되는 것은 전략적 판단과 자율성이다. 대북정책의 핵심 조율을 사전 조율의 틀에 가두는 것은 정책 선택지를 축소하고 외교적 상상력을 봉쇄하는 선택이다.

    넷째, 이는 ‘국민주권’이라는 국정 철학에 대한 자기부정이다. 국민이 요구한 것은 동맹의 파기가 아니라 동맹 속에서의 자율성 회복이었다. 한국이 먼저 방향을 정하고 미국과 협력하는 것이 공조이지, 미국의 가이드라인을 먼저 확인하는 구조는 종속에 가깝다.

    한·미 협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 대화 재개나 군사적 충돌 관리마저 ‘조율 대상’이 되는 순간, 남북관계 복원의 출발선마저 봉쇄당할 위험이 크다. 외교부가 앞장서 사실상 미국의 사전 승인 구조를 제도화하는 것은 한반도 평화의 운전대를 스스로 내려놓는 자해 행위다.

    통일부 장관은 대북정책 주무 부처의 수장으로서 이 흐름에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한다. 협의체가 강행된다면, ‘국민주권 대북정책’은 결국 선언에 그쳤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될 것이다. 외교부 또한 명심해야 한다. 외교는 동맹을 관리하는 기술 이전에, 주권을 지키는 정치다. 실패가 예견된 ‘제2의 워킹그룹’ 꼼수, 지금 당장 걷어치워라.

    경향신문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동엽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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