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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7 (수)

    성평등부 최대 과제 된 ‘男 역차별’…“필요한 정책” vs “역차별 안돼” [심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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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평성기획과가 결국엔 남성 역차별에 집중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국민의힘 한지아 의원은 지난달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는 전체회의에서 원민경 성평등가족부 장관을 향해 이같이 물었다. 성평등부에 남성 역차별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가 생긴 뒤부터 15일 현재까지 계속되는 논란이기도 하다.

    10월1일 여성가족부가 성평등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성형평성기획과가 신설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해온 남성 역차별을 담당하는 주무 부서로 여성계와 국회에서는 우려를 쏟아냈다. 구조적 성차별 해소를 후순위로 두는 것 아니냐는 게 대표적인 지적이다. 원 장관은 취임 뒤 기자간담회와 국정감사, 국회 전체회의에서 ‘역차별’이란 단어 대신 ‘성별 불이익’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며 “성평등부의 기본적인 정책 과제가 구조적 성차별 해소라는 점에는 흔들림이 없다”고 했다.

    이런 해명에도 의문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고 있다. 청년 세대의 성별 인식격차 해소 방안을 모색하자는 ‘소다팝’ 행사가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오히려 젠더갈등을 심화하는 것은 아닌지 등 우려가 따라붙는다. 전문가들은 젊은 남성들의 ‘성형평성’ 문제의식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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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평등’ 인식은 높아졌지만…

    젠더갈등이 심각하다고 느끼는 비율은 2030세대에서 유독 높다. 한국리서치의 ‘2025 젠더인식조사’ 결과 20대는 10명 중 8명, 30대는 10명 중 7명꼴로 젠더갈등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답했다.

    젠더갈등 현황을 분석하거나 이유를 파악한 정부 차원의 조사는 부재하다. 성평등부가 5년마다 실시하는 ‘양성평등 실태조사’에는 ‘연령대별 성평등 수준 체감’ 항목이 있으나 이 지표로는 ‘성별 인식격차’ 정도를 알 수 없다. 성별 인식격차는 ‘남성은 남성이 더, 여성은 여성이 더 차별받고 있다’고 느끼는 현상을 뜻한다.

    양성평등 실태조사 결과대로면 상황은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기준 ‘남녀는 평등하다’에 동의한 비율은 남성 41.7%, 여성 27.8%로 직전 조사(2016년) 대비 각각 13.2%포인트, 14.2%포인트 올랐다. 그러나 이 조사에서도 ‘남성 또는 여성에 더 불평등하다’는 응답이 20~30대에서 성별로 크게 차이 났다. 더 문제는 응답자가 어떤 취지에서 ‘평등하다’는 데 동의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더 이상 여성은 차별받지 않고, 남성이 더 차별받는다’는 취지에서 한 응답도 ‘평등하다’는 수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부가 내년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에는 없지만, 국회 성평등가족위원회 소위에서 청년 세대 성별 인식조사에 2억원이 증액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청년 세대 성별 인식조사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2030 시민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성별 인식격차 이야기를 듣는 ‘소다팝’ 행사도 비슷한 취지에서 10월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 행사는 17일 마지막 회차로 종료한다. 5차례에 걸쳐 나온 논의들은 내년 ‘청년 성별 균형 문화 확산’ 사업에 참고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장우정 충북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충북대 사회학과 박사수료)은 행사 목적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년 남성들이 ‘여성과 비교해 우리는 기득권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있다면, 그걸 국가가 나서서 해소하려는 노력도 필요할 것”이라며 “행사에서 정책과 괴리된 청년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들이 많았고, 그런 이야기들이 추후 정책이 반영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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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 모아서 듣는 행사론 해결 안 돼”

    여성학자인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청년 남성이 느끼는 현실인식이 중요한 정책 대상이 돼야 하는 건 맞다고 진단했다. 그런데 그 방법이 현재와 같은 ‘역차별’ 프레임으로 가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권 소장은 “젊은 남성들이 주장하는 역차별은 여성 할당제 등을 중심에 놓고 거론하는데 여성 할당제는 실질적 성평등을 위한 적극적 조치”라며 “즉, 그 조치들을 역차별라고 한다면, 실질적 성평등 정책을 다 부인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어 “이재명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을 없애기 위한 실질적 조치를 안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고 직격했다. 윤석열정부는 ‘구조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조로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했고, 정권 교체 뒤 부처가 확대 개편됐으나 다른 층위에서 비판 지점이 생겨났다는 의미다.

    지난달 15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열린 ‘성평등가족부 역차별 부서 폐지 촉구’ 시위에서도 성형평성기획과를 신설한 데 관한 비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자유발언에 나선 한 여성 참가자들은 구조적 성차별을 바로잡는 데도 부족한 행정력을 정부가 낭비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소다팝 행사의 실효성 문제도 제기된다. 지난달 3차 행사에서 시민 참석자 30대 여성 장모씨는 이날 성평등부가 ‘병역’을 토론 주제로 제시한 데 관해 불만을 표했다. 남성들의 ‘역차별’, ‘억울함’ 프레임을 승인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의미에서다. 장씨는 “차별 경험을 아무리 나눈다고 해도 해결이 안 될 것 같다”고도 했다.

    성평등부가 청년 남성 문제를 들여다보겠다는 목적이면, 행사에서 남성과 여성을 한자리에 두어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권 소장은 “‘역차별 해소’가 목표인 행사에 여성을 붙여 놓으면 남성들을 위한 들러리가 될 것”이라며 “젊은 남녀들을 모아놓고 그들 말을 듣는다고 문제가 해결되겠냐”고 말했다. 이어 “페미니즘 확산에 반발하는 ‘에펨코리아’(펨코) 중심의 (우경화한) 정치적 집단이 문제임을 확실히 하고, 그들 남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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