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19 (금)

    [겨를]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모네의 ‘수련’ 시리즈로 유명한 프랑스 파리의 오랑주리 미술관 지하 전시관은 역사 속에서 주변화되거나 지워진 사람들에 대한 전시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성 작가나 딜러, 뮤즈로만 소비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일이 많은데, 현재는 베르트 베이유라는 20세기 초반 파리에서 활동한 한 여성 화상의 서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전시의 부제가 ‘젊은이들에게 자리를’(Place aux jeunes)이다.

    베이유는 남성 중심의 미술시장이 대세던 1900년대에 파리 피갈지역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다. 중산층 유대인 가정에서 자란 그는 그다지 큰 규모의 자본가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이력을 결과적으로 들여다보면 굉장하다. 처음으로 피카소의 개인전을 열었고, 마티스와 피카소 둘의 작품을 동시에 전시한 유일한 화상이었으며, 당시엔 이해받지 못했던 야수파, 큐비즘 계열 작품을 전시해 아방가르드 미술이 확산될 수 있는 전시적 기반을 제공한 인물이기도 했다. 그는, 아직 시장에서 발굴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에게 기꺼이 공간을 내어주었다. ‘젊은이들에게 자리를’이라는 슬로건은 그의 실제 신념이었다.

    전시장 내에서 그가 발굴한 작가들의 작품을 쭉 지나다보면 어느덧 모딜리아니가 그린 누드화 앞에 다다르게 된다. 여느 누드와 달리, 여성의 음모가 그대로 드러난 이 작품을 두고 당시 상당한 파문이 일었다는 에피소드가 함께 적혀 있었다. 가난한 화백이던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발굴한 베이유는 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한 자신의 화랑에 이 작품을 걸었고, 외설 논란과 검열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때 그는 “도대체 이 누드들이 뭐가 문제란 말야?”라며 맞섰고, 경찰은 “털이 문제야!”라고 응수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충돌은 그의 1933년 회고록 <한 방 먹이기!>(Pan! dans l’œil!)에 남았다. 그는 살아 있는 여성의 몸을 꾸밈없이 그려낸 모딜리아니의 작품을 매개했고, 기꺼이 검열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베이유는 신진 작가들에게 첫 번째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반복했다. 어떻게 보면 리스크를 떠안는 것도 그의 몫이었던 것 같다. 그는 거장을 만든 위대한 여성의 서사로 남지는 못했다. 감당할 수 없게 커진 대형 작가들을 품을 구조는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창작자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던 중개자로서, 그래서 새로운 시조와 차별화된 작화를 도모할 수 있게 만든 조력자로서 남았다. 말 그대로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마련해 기회를 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서니, 막상 젊은이들의 자리는 자꾸만 지워지는 것 같다. 경제 침체도 맞물렸던 탓이겠지만, 유독 신규고용률이 제대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다. 그사이 이미 암묵지도 쌓이고 인사이트도 좋은 경력자나, 일찌감치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자들은 곳곳에서 각광받고 있다. 어느 누가 서로의 파이를 갉아먹는다는 뜻에서 볼 것만은 아니다. 다만 새로운 시각과 차별화된 생각이 창발할 수 있는 환경은 분명히 필요하다. 익숙하고 고전적인 방식만으로는 풀리지 않는 문제가 세상엔 잔뜩 깔려 있다. 기꺼이 리스크를 감수하고, 새롭게 신인을 품고, 새로운 생각을 공적 공간에 전시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주체들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베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경향신문

    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유재연 국가AI전략위원회 사회분과장

    ▶ 매일 라이브 경향티비, 재밌고 효과빠른 시사 소화제!
    ▶ 더보기|이 뉴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 점선면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