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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9 (금)

    [사유와 성찰]누가 길 잃은 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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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여 년 전, 남도의 작은 암자에 머물 때였다. 지인 몇분과 조촐한 차담을 나누던 중 처음 뵙는 한 분이 케이크 두 상자를 내밀었다. 나는 감사 인사 대신 불평을 쏟아냈다. 혼자 사는 암자에 하나면 충분할 텐데, 두 개나 가져와 소박함의 질서를 흐린다는 핀잔이었다. 쌓이는 음식에 예민해 있던 마음이 거칠게 튀어나온 것이다. 나는 그 일을 곧 잊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그날의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수행자라는 외피에 갇혀 사람의 정성을 헤아리지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고, 그분에게 깊이 죄스러웠다. 말로 꺼내지 못했을 무안함과 상처가 뒤늦게 또렷이 전해졌다.

    지인을 통해 연락처를 알아내 미안함과 부끄러움을 담은 편지를 보냈다. 그분은 당시의 서운함이 오래 남아 절이나 스님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십 년이 지나 받은 사과에 응어리가 풀렸고, 오히려 고맙다고 했다.

    이 일을 계기로 갈등과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마음은 쉽게 다친다. 하물며 신체적 폭력, 집단 괴롭힘, 심리적 갑질, 성폭력 같은 범죄는 피해자의 삶을 뿌리째 흔든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등과 폭력 앞에서 무엇을 먼저 물어야 할까.

    첫째는 피해 당사자에 대한 깊은 공감이다. “모든 생명은 죽임을 두려워한다. 모든 생명은 채찍을 두려워한다. 그러니 이 일을 나에게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때리지 말라”는 <법구경>의 가르침은 공감이 회복의 출발점임을 분명히 한다. 물론 합당한 징벌은 꼭 필요하다. 붓다 당시 승단의 계율과 징벌은 매우 구체적이었고, 그 중심에는 이참과 사참, 곧 성찰과 책임 수용이 있었다. 부끄러움이 결여된 징벌은 누구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성찰보다 회피에 더 익숙하다.

    둘째는 피해자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만으로 피해자의 삶은 회복되지 않는다. 치유의 조건은 부끄러움을 아는 ‘진심’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의 고통을 경청하고 받아들이며 참회할 때 회복의 문이 열린다.

    셋째는 피해자의 회복 이후, 가해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다. 예수는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하며, 길 잃은 한 마리의 양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길을 잃은 존재였다. 가해자가 회개의 길로 돌아설 수 있도록 사회가 함께 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오늘날 우리가 징벌을 넘어 ‘회복적 정의’를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해자’ 혹은 ‘나쁜 사람’이라는 이름은 과거의 행위를 현재와 미래에까지 고정시켜 회생의 가능성을 가로막는다. 업보는 행위와 그 결과를 말할 뿐, 사람의 본질을 영원히 규정하지 않는다. 붓다는 “나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행위가 고결하면 그를 고귀한 자라 한다”고 말했다. 이 말은 사람에게 다시 시작할 자리를 남겨둔다.

    “나쁜 사람이 나쁜 일을 한다”는 말은 엄밀히 성립하지 않는다. 나쁜 일을 했기에 나쁜 사람이라 불릴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과거에 형사처벌을 받은 이에게 현재까지도 ‘악인’이라는 꼬리표를 관성처럼 붙인다. 이러한 인식의 오류는 ‘알권리’나 ‘정의 실현’이라는 명분으로 한때의 잘못을 평생의 낙인으로 만들기도 한다. 고착된 이름은 사람이 과거를 딛고 새로이 살아갈 가능성을 차단한다. 진심 어린 참회와 함께 참된 삶을 살고자 하는 이들에게 용서와 포용은 회복의 토대다. 대승불교의 계율 또한 참회한 이를 끝내 미워하고 배척하는 것 역시 허물이라 말한다.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용서는 타인을 위한 행위이기 이전에 미움과 원망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자비다.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갈등은 피할 수 없다. 갈등 해결을 징벌에만 맡긴다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사실 확인, 대화와 경청, 진심이 담긴 사과와 용서, 그리고 회복을 향한 협력이 필요하다.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이 길 말고 모두가 함께 덜 아프게 살아갈 다른 길이 과연 있을까.

    경향신문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법인 스님 화순 불암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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