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대학의 비대면 평가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답안을 작성한 것이 부정행위로 적발됐는데, 고등학교의 수행평가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생성형 AI의 활용이 확산함에 따라 당연히 예상됐던 일인데, 언론에서는 가이드라인 부재를 질타하고 대학마다 부랴부랴 관련 규정을 만든다고 난리다. 그런데,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는 “남의 저작물 또는 독창적 아이디어를 출처 표시 없이 자기 것인 양”하는 표절에 해당하고, 대학마다 표절을 금하는 연구윤리 규정이 있으며, 교육부 훈령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도 있기 때문이다.
표절과 저작권 침해는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인간의 창작물을 가져다 쓴 것이 아니라면 저작권 침해는 면할 수 있을지 모르나, 표절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표절 정의의 ‘남’은 ‘나’가 아닌 모든 것으로서, 타인뿐 아니라 AI를 비롯한 ‘비인간’(non humanbeings)을 포함한다. 따라서 인간이 아닌 생성형 AI가 산출한 것을 학생이 자신의 것인 양 평가의 답으로 낸다면 이는 정확히 표절에 해당한다.
또 저작권 침해는 ‘동의’ 여부가 중요하지만, 표절은 ‘피해’ 여부를 중시한다. 민형사 책임이 따르는 저작권 침해는 저작권자의 사전·사후 동의로 책임을 면할 수 있지만, 원칙적으로 윤리 영역인 표절은 표절당한 사람의 동의·용서로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표절 피해자에는 표절당한 사람 외에도 교수·교사, 동료, 학교 등 교육계와 학계 전체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I를 써서 답안을 제출한 학생과 그렇게 하지 않은 학생이 같은 클래스에서 상대평가를 받게 될 때, 전자의 학생은 시간을 덜 쓰고도 우수한 평가(학점)를 받는 데 반해 후자의 학생은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평가자인 교수·교사를 속인 행위로, 그 피해는 동료 학생과 학교 전반에 미친다. 같은 조건으로 시험을 치를 때 전문가에게 문의해 답안을 내는 것이 반칙인 것처럼 평가자 몰래 AI를 사용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일은 학교를 벗어나면 형사처벌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몇년 전 프로바둑 입단대회에서 상의 안쪽에 소형 카메라를 부착하고 한쪽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은 채 대국 중인 바둑판을 몰래 촬영해 전송하면 바깥에서 AI 바둑 프로그램을 이용해 다음 수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공모한 이들에 대해 업무방해로 징역형이 선고된 적이 있다.
그렇다고 교육기관에서 무조건 AI의 사용을 금지하라는 것은 아니다. AI 활용법을 가르치는 과목에서는 당연히 써야 하지만, 그 밖의 과목에서 AI를 써도 좋다는 지침이 없으면 쓰지 말아야 하는 것이 기본값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AI 시대, 대학은 ‘정보 전달 기관’이 아니라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관’이라는 뉴욕대학 클레이 셔키 교수의 지적은 귀담을 만하다. 검증할 수 없는 정보는 지식이 아니다. 내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할 줄 알고, 논증을 통해 단단한 지식을 만드는 과정을 배우는 곳이 대학이다. 이번 해프닝이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대학의 본질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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