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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8 (목)

    젠슨 황의 선물, 26만 장 GPU의 의미 [아침을 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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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조 원 넘어선 엄청난 투자
    전력·용수공급 인프라도 필요
    제조업 AX 리더십 확보 기회


    한국일보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10월 31일 경북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CEO 서밋에서 특별세션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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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0월 경주에서 있었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2025의 대표성과 중 하나는 엔비디아가 26만 장 규모 GPU를 한국에 공급기로 한 것이다. 이전까지 정부기관과 국내 민간 업체가 통틀어 보유한 인공지능(AI) 모델 개발용 엔비디아 GPU는 1만 장 내외였는데, 무려 25배 물량이 한국에 쏟아져 들어오게 된 셈이다. 물론 이 물량을 정부가 다 사용하지는 않는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텔레콤, 네이버 같은 민간 업체들로 5분의 1 정도씩 분배되며 나머지는 정부가 관장한다.

    언뜻 생각하면 장당 최소 5,000만 원이 넘는 GPU를 26만 장이나 공급받는 건 15조 원 넘는 엄청난 투자를 요구하는 도박일 수 있다. 그렇지만 각국이 앞다퉈 AI 혁신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GPU 선점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는 한국이 특혜에 가까운 공급선을 확보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에서도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아마존, 테슬라(XAI) 등 주요 빅테크 업체가 엔비디아 GPU를 입도선매하는 상황에서 고성능 AI데이터센터(AIDC)를 10개 정도 구축할 물량을 확보한 것은 한국의 AI 혁신의 발판이 여러 개 생긴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관건은 확보한 GPU만으로는 혁신을 보장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혁신을 만들기 위해서는 GPU 구매에 버금가는 수준의 인프라 투자도 필요하다. 우선 수천 장 단위의 GPU로 구성될 AIDC는 그에 필요한 안정적 전원과 산업용수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 26만 장 규모의 GPU는 총 430메가와트(MW)에 달하는 전력을 소비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주변 기기 전력 소요까지 감안하면 약 550~600MW에 달하는 전력 소비가 예상된다. 고리 원전 1기 발전 용량의 절반 정도다. 산업용수도 확보되어야 한다. 하루에 2.5만㎥의 물이 필요하다. 대략 10만 명 규모의 중소도시가 하루에 필요로 하는 양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프라 투자도 AI발 혁신을 위한 필요조건의 일부일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설치된 AIDC가 새로운 불을 지펴야 한다는 것이다.

    AI를 국가 기술주권, 나아가 글로벌 산업기술 혁신의 매개체로 설정하고 올인한 이상, 한국 정부와 산업계의 과제는 고성능 GPU를 이용하여 강력한 AI모델 그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 낼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을 위해서만 GPU를 투입하는 것은 이미 그보다 5~10배 이상의 GPU를 가진 미국 주요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하지 않다.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할 지점은 한국 고유의 산업 포트폴리오의 'AI 전환(AX)'이다. GPU 상당수는 수평적 모델 규모 확장에서 수직적 확장, 즉 각 도메인 산업 맞춤형 추론 모델 구축에 투입되어야 한다. AX 맞춤형 모델은 다시 각 산업에 적용되어 실세계의 부가가치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조선, 제철, 에너지, 석유화학, 로봇, 바이오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GPU 26만 장이 실질적 부가가치로 구현되려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그리고 SK텔레콤 같은 기업들이 GPU 배분에 참여하는 것에서 윤곽이 드러난다. 삼성전자는 반도체나 AI를 넘어, 소비자가전, 통신, 사물인터넷(IoT) 등에서, 현대자동차는 자율주행차를 넘어 자율제조와 로봇 등에서, SK텔레콤은 통신을 넘어 클러스터 최적화나 제조 현장에서의 보안 솔루션, 차세대 인터넷 솔루션 등으로 구체적인 신시장 창출 전략을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개별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로만 국한하지 말고 그 주변 산업 생태계로 이어지는 혁신 고리라는 더 큰 그림도 그려야 한다.

    AI의 산업 전환은 점차 가속되고 있다. 한국은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와 강력한 반도체 산업, 그리고 AI 기술력을 모두 갖춘 극히 드문 국가로서, AI가 산업에서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나라이다. 이는 한국에 있어 앞으로 산업 혁신을 선도할 기회가 됨과 동시에, 그 기회를 못 살리면 경쟁국들에 리더십을 내어주는 위기가 됨을 의미한다. 26만 장의 GPU는 대한민국이 이 치열해진 판을 주도할 것임을 선언하는 신호탄이다. 이제 진짜 미래 경쟁이 시작되었다.

    한국일보

    권석준 성균관대 화학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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