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에서 활약한 미군의 여러 장군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명장으로 꼽히는 조지 S 패튼 장군. SNS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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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유럽 전선의 미 육군 제3군을 지휘하던 패튼은 ‘아르덴에서 미군 등 연합군이 독일군 포위망에 갇혀 궁지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구출 작전 지휘를 자청했다. 그는 명령이 떨어진 직후 3군에서 1개 군단급 병력을 차출해 불과 48시간 만에 아르덴의 격전지에 도달했다. 승리를 자신한 독일군은 예상보다 너무 빨리 들이닥친 패튼의 증원군 앞에 혼비백산했다. 이듬해인 1945년 1월 25일 독일군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퇴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41일간 이어진 벌지 전투는 미군의 승리로 끝났으나 1만9000명 넘는 장병이 희생되는 등 미군의 인명 피해도 엄청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벌지 전투 승전 81주년 기념일을 맞아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트럼프는 벌지 전투를 “2차대전 기간 동안 미군이 벌인 가장 규모가 크고 또 살인적인 전투”로 규정한 뒤 “나치 정권을 완전히 항복하게 만든 연합군의 획기적 승리로 끝났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우리 미군의 희생이 없었다면 전쟁은 승리하지 못했을 것이며, 오늘날 우리의 세상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벌지 전투에 참여한 연합군 병력 60만명 가운데 무려 50만명이 미군이고 전사자 거의 대부분도 미국인이었으니 트럼프의 발언은 결코 과장이 아니라고 하겠다.
2차대전 도중의 벌지 전투(1944년 12월∼1945년 1월) 당시 기동하는 탱크의 모습. 미군은 장장 41일 동안 앞이 안 보이는 눈보라와 영하의 추운 날씨 속에서 사투를 벌인 끝에 독일군을 물리쳤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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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지 전투 당시 중장이던 패튼은 승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45년 4월 계급장에 별 한 개를 추가하고 대장으로 진급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히틀러가 자살하고 나치 독일은 미국 등 연합국에 무조건 항복했다. 전쟁 기간 참혹한 전투 현장에서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긴 패튼이 패전국 독일 점령 임무를 수행하는 도중인 1945년 12월 21일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는 21일은 패튼의 80주기 기일에 해당한다. 미국이 배출한 여러 명장(名將)들 가운데 단연 패튼을 가장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진 트럼프가 그날 어떤 추모의 메시지를 내놓을 것인지 궁금하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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