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통일부와 외교부 업무보고에서 이 대통령은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북한은 남쪽이 북침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며 "탱크가 넘어올까봐 방벽을 쌓고 도로와 다리를 끊고 있다"고 했다. 이에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현실적으로 대북 제재의 실효성은 상실됐다"며 "목에 칼을 들이대며 대화하자는 방식은 북한이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한 장면이었다.
그동안 정부는 대북 전단 살포 중단, 확성기 방송 중지 등 유화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날도 정 장관은 서울·베이징 고속철도 건설 프로젝트와 북한이 7월 개장한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에 대한 평화관광 추진을 언급했다. 모두 남북 대화의 물꼬를 트려는 조치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유화 메시지에도 북한의 태도는 전혀 변하지 않고 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북한은 두 차례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미 접촉도 거부한 채 전력 첨단화와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정 장관의 '대북 제재의 실효성 상실' 주장을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미국과 유엔은 북한의 핵 개발에 대응해 추가 제재를 모색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적인 규제 완화는 한미 공조에 부담을 줄 수 있다. 이 대통령이 북·미 대화의 중재자를 자임하려면 오히려 한미 공조와 국제적 신뢰 확보가 우선돼야 한다. 물론 평화가 가장 확실한 안보 정책이다. 하지만 남북 평화도 튼튼한 대북 억지력과 동맹국과의 신뢰 구축이 병행될 때 지속가능하다. 북한의 걱정에 공감하는 만큼 핵 위협을 우려하는 국민의 불안을 직시하는 것도 정부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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