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8일 CNBC 인터뷰에서 엔비디아·AMD의 잇따른 오픈AI 투자에 대해 "오픈AI는 역대 가장 수익성이 좋은 스타트업”이라면서 “AI 인프라는 전기·인터넷같이 이 세상에 영구적으로 필요하다"며 시장에 확산된' AI 거품론'을 일축했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엔비디아 지포스 게이머 페스티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는 젠슨 황의 모습. 2025.10.30/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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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최근 글로벌 금융 시장의 화두는 단연 인공지능(AI)이다. 엔비디아를 필두로 한 AI 관련주들이 질주하는 가운데 시장 한편에서는 2000년대 초 닷컴 버블의 악몽을 떠올리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과연 AI 열풍은 실체가 있는 혁명일까, 아니면 붕괴를 앞둔 거대한 거품일까.
반복되는 'AI 거품론'에 요동치는 증시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알려진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인공지능(AI) 시장의 거품이 향후 2년 안에 가라앉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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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초 영화 '빅쇼트'의 실제 인물로 유명한 마이클 버리가 AI 거품론에 불을 붙였다. 버리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붕괴를 정확히 예측했던 인물이다. 버리가 운용하는 사이언 자산운용이 지난 3일(현지시간) 엔비디아와 팔란티어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풋옵션을 보유하고 있다는 공시를 내보내자 AI 관련주는 일제히 급락했다. 팔란티어는 장중 최대 16%까지 폭락했고 엔비디아는 4% 가까이 떨어졌으며, 나스닥 지수는 2.04%, S&P 500 지수는 1.17% 하락했다.
지난 17일에는 오라클의 데이터센터가 투자에 차질을 빚고 있다는 소식이 증시를 뒤흔들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오라클의 핵심 투자 파트너인 블루아울 캐피털이 미시간주에서 추진 중이던 100억 달러(약 14조7000억원) 규모 AI 데이터센터 건설 사업 투자를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투자자들 사이에 AI 거품론이 재확산되며 오라클은 5% 이상 급락했고, 엔비디아는 3.81%, 브로드컴은 4% 하락했으며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3.78% 떨어졌다.
AI 인프라 투자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나스닥 지수는 1.81%, S&P 500 지수는 1.16% 하락했다. 이처럼 AI 거품론이 불거질 때마다 증시는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며 투자자들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광케이블처럼 되면 어쩌나...'닷컴 버블' 데자뷔
AI 버블론을 주장하는 측은 지금의 AI 주식 시장 과열이 30년 전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고 경고한다.
엔비디아와 오픈AI의 거래 구조가 대표적이다. 지난 9월 엔비디아는 오픈AI에 최대 1000억 달러를 투자해 10GW 규모의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지원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투자금의 상당 부분이 엔비디아의 AI 칩을 구매하는 데 쓰인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 닷컴 버블 시절의 '벤더 파이낸싱'과 닮았다는 지적이다. 벤더 파이낸싱은 제품을 파는 공급업체가 고객사에 자금을 빌려주고, 고객사는 그 돈으로 공급업체의 제품을 사는 방식을 말한다. 닷컴 버블 시기 통신 장비회사가 통신사에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빌려주고 그 돈으로 자사 장비를 구매하게 함으로써 장부상 매출을 부풀렸다.
아마존 웹서비스의 AI 데이터센터 내부 모습.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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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기가와트(GW) 단위의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 메타의 '하이페리온',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미래 수요를 선점하려는 전략이지만, 닷컴 시절의 광케이블 설치 경쟁을 연상시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당시 인터넷 트래픽 폭발을 예상해 막대한 광케이블을 깔았지만, 데이터 압축 기술의 발달로 기존 케이블의 효율이 급증하면서 설치된 케이블의 95%가 유휴 시설(Dark Fiber)이 됐다. AI 역시 모델 경량화나 효율적 알고리즘이 등장할 경우, 지금 짓고 있는 천문학적 비용의 데이터센터들이 '하얀 코끼리(돈만 들고 쓸모없는 것)'가 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다.
오픈AI는 엔비디아와 기업 가치가 사진은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4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카카오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2.04/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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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기업간 순환거래의 핵심인 오픈AI의 자금력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블룸버그는 지난 18일 정보기술(IT) 전문매체 디 인포메이션을 인용해, 오픈AI가 투자자들과 7500억달러 규모의 기업가치를 전제로 수백억달러의 신규 자금 조달을 논의중이라고 보도했다. 오픈AI의 올해 매출은 약 150억 달러 수준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오픈AI는 여전히 막대한 적자를 기록 중이다. 이에 젠슨 황 CEO가 언급한 10GW 인프라 구축비용(약 5000억 달러 이상)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오픈AI뿐만 아니라 엔비디아와 마이크로소프트 등 다수의 AI 주요 기업들이 서로의 지분을 사거나 서비스를 구매하며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점이다. 이때문에 겉보기에는 AI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수요가 아닌 기업 간 자금 순환에 의존하고 있어 거품 붕괴의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AI 버블 절대 안 와" 업계 전반 낙관론
AI 주식 시장을 바라보는 투자자와 관찰자들은 불안하지만, 정작 업계 내부는 낙관론에 가득 차 있다. 지난 15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AI 산업이 투자 과열 국면에 들어섰다는 지적에 대해 "(AI 버블은) 절대 오지 않는다"며 AI 거품론을 일축했다.
펀드매니저들도 그 어느 때보다 주식 시장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지난 16일(현지시간) 공개한 월간 글로벌 펀드매니저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 포트폴리오에서 현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달 3.7%에서 이달 3.3%로 하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버블 터지면 승자 가려질 것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4일 보도를 통해 투자자들이 불투명한 수익 전망에 지치는 시점이 오면, AI 생태계가 벽에 부딪히며 닷컴 버블 시기와 비슷한 결말을 맞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AI라는 혁신 기술의 인프라를 신속하게 구축하기 위한 과정에서 결국 막대한 현금 흐름을 창출해낸다면, 지금의 상호 투자는 모든 기업에 큰 성공을 안겨주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지난 10월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인공 지능에 대해 매우 흥분하면 모든 실험에 자금이 지원된다"며 "투자자들은 이 흥분 속에서 좋은 아이디어와 나쁜 아이디어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고 말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으니 여러 가능성을 대비해야 하고, 이에 따라 최적의 비용이 아니라 그 이상이 투입되는 게 불가피하다는 의미다.
전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2019 아마존: 화성 커벤선'에서 말하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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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2000년의 믿음은 결과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실 기업이 사라졌을 뿐이다. 닷컴 버블의 파고 속에서 살아남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처럼 AI 광풍 속에 건실한 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설령 현재의 AI 투자 열풍에 거품이 끼어 있을지라도, AI가 인류의 생산성을 혁명적으로 바꿀 기술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AI 버블은 터지기 전까지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AI에 베팅을 할 것인지, 안전한 자산으로의 돌릴 것인지는 냉철한 판단이 요구된다.
sms@fnnews.com 성민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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