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산업재해를 은폐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문건'이 추가로 확인됐다. 업무 중 사고 피해를 입은 노동자와 작성한 '합의서'다. 합의서에서 쿠팡은 사고 노동자에게 '기밀 유지'를 요구하며 언론, 노동조합과 접촉을 차단하고 있었다.
앞서 뉴스타파는 쿠팡이 만든 내부 문건인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을 입수해 공개한 바 있다. 이 문건에는 노동자 사망 사고 등 산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이슈화를 막을 것인지에 대한 쿠팡의 전략이 담겨 있었다. 매뉴얼에서 쿠팡은 유족 포섭, 언론·노조 차단, 정부·국회 로비를 위한 조직 차원의 지침을 제시했다. (관련 기사 : 쿠팡의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 입수... 포섭하고, 차단하고, 로비하라)
쿠팡 '합의서' 원본 입수... 사고 피해자에게 '부제소 특약'
뉴스타파는 쿠팡 계열사인 쿠팡풀필먼트서비스(이하 쿠팡풀필먼트)가 작성한 내부 문건 원본을 입수했다. 쿠팡풀필먼트는 쿠팡의 100% 자회사로 전국에 있는 쿠팡 물류센터를 운영한다.
문건의 이름은 '합의서'다. 문건에 적힌 합의 당사자는 쿠팡풀필먼트와 물류센터 노동자였다. 2022년 8월 11일 경기도의 한 물류센터에서 사고가 나 노동자가 다쳤고, 이에 쿠팡풀필먼트가 노동자에게 합의금을 지급하는 내용이다. 쿠팡이 주기로 한 합의금은 약 220만 원이었다.
쿠팡은 합의금을 지급하는 대가로 노동자에게 산재 사실을 외부로 알리지 못하도록 강제하는 조항들을 삽입했다. 먼저 합의서 2조 '부제소 특약'에서 쿠팡과 노동자는 아래와 같이 합의했다.
근로자는 향후 본 사건과 관련하여 쿠팡풀필먼트서비스, 그 계열사 및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및 그 계열사의 임직원 등에게 일체의 법적 책임을 묻지 아니하고, 이들을 상대로 법원, 수사기관 또는 정부기관에 민사·형사·행정 소송, 민원 신고, 진정, 고발, 고소 등을 제기·제출하지 아니하며, 이미 제기된 사건이 있는 경우 이를 모두 취하한다.합의금을 받았으니, 사고 과정에서 쿠팡의 과실이나 위법 소지가 발견됐어도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다.
- 쿠팡풀필먼트서비스 - 노동자 간 '합의서' 제2조(부제소 특약) 나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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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가 확보한 쿠팡풀필먼트서비스와 노동자 간 합의서. 쿠팡풀필먼트는 쿠팡 물류센터를 운영하는 회사다.
'부제소 특약'보다 더 문제가 있어 보이는 조항은 합의서 3, 4조다. 3조 '기밀 유지'에서 쿠팡은 사고 노동자가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사고 정보가 언론, 노조 등 외부에 알려지는 걸 막기 위한 조항으로 풀이된다.
3조에는 "근로자는 본 사건의 기초사실 및 본 합의서의 내용 등 본 사건과 관련된 일체에 대하여 쿠팡풀필먼트의 서면 동의 없이 제3자에게 공개하거나 누설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적혀 있다. 사고가 났다는 사실이나 합의서의 내용, 심지어 합의를 했다는 사실조차 외부에 발설할 수 없다는 뜻이다. 더구나 '제3자'라는 포괄적 개념을 집어넣어 언론, 노조뿐 아니라 동료 노동자, 친구, 가족까지도 사고 사실을 알 수 없도록 유도했다.
그러면서 쿠팡은 합의서 4조를 통해 노동자가 2, 3조를 어겼을 경우 합의금 전액을 반환해야 하고, 민형사상 책임도 질 수 있다고 명시했다. 4조에는 "근로자가 제2조 또는 제3조를 위반하는 경우, 근로자는 쿠팡풀필먼트로부터 지급받은 합의금 전액을 즉시 반환하여야 하며, 본 합의서 위반에 따른 민형사상 책임(손해배상 책임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아니함)을 부담함을 확인한다"고 적혀 있다. 합의 내용을 위반하면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기 등 혐의로 형사 고소까지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쿠팡의 사망 노동자 고 장덕준 씨 유족을 대리했던 정병민 변호사는 "피해를 충분히 보상한다는 것보다는 사고나 합의의 내용이 언론에 노출되지 않게 하거나, 아니면 추가적인 문제 제기를 봉쇄하는 것을 유도하는 걸로 보인다"며 "쿠팡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산업재해 신청이나 소송 등은 힘든 일이고, 합의금을 제안하면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쿠팡이 이런 상황을 알고, 기밀 유지 등 여러 내용을 제안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정 변호사는 "합의서 내용을 동료 노동자나 노조에도 알리지 말라고 한 것은 금액 문제 때문으로 보인다"며 "어떤 사람에게는 어느 정도 합의금을 줬다는 게 알려지면, '저 사람은 300만 원 받았다는데, 나는 왜 200만 원만 주느냐'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회사 입장에서는 합의금을 낮은 수준으로 계속 유지하는 게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자, 유가족 고립시키는 쿠팡의 '합의 전략'
사고 노동자와 사망 노동자 유가족을 상대로 한 쿠팡의 '합의 전략'은 최근까지도 계속됐다. 올해 1월 국회에서 열린 쿠팡 청문회를 앞두고는 사망 노동자인 고 장덕준, 정슬기, 김명규 씨의 유가족과 연달아 합의했다. 장덕준, 정슬기 씨 유가족은 청문회에 나와 발언하기로 예정돼 있었지만, 합의 이후 불참했다. 청문회 불출석은 쿠팡의 요구 사항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쿠팡이 이들 유가족과 맺은 합의서에도 '입막음' 조항이 있었다. '쿠팡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 '쿠팡에 부담되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내용이었다.
지난해 새벽 배송을 하다가 사망한 배송기사 박 모 씨의 유가족은 쿠팡과 합의 이후, 노조와 연락을 끊은 것으로 전해졌다.
강민욱 전국택배노조 쿠팡본부 준비위원장은 "새벽 배송 이후 쓰러져 중환자실에 가셨다고 해서 직접 병원에 갔다. 유가족에게 경위를 물으니 '일주일 연속 일한 적도 있다', '쉬는 날인데 어쩔 수 없이 나간 적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건 과로사가 명백했다. 그런데 거기에 사측도 있었고, 유족에게 합의금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며 "우리가 온 걸 알았는지 사측이 다시 유족을 불렀고, 다녀왔다. 유족이 와서 하는 말이 '억 단위 돈을 합의금으로 더 주겠다'고 했다더라. 이후 유족이 미안하다며 같이 회사를 상대로 해서 하는 일을 하기 어렵겠다고 얘기했다. 그때부터 연락이 안 됐다"고 설명했다.
숨진 배송기사 박 씨의 이야기는 이후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다. 최근 근로복지공단은 박 씨의 과로사 산업 재해를 인정했다. 박 씨 사망 전 12주를 기준으로 평균 노동 시간은 주당 61시간 45분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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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월 국회 '쿠팡 청문회'에 나온 (왼쪽부터) 강한승 전 쿠팡 대표, 홍용준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 대표, 정종철 쿠팡풀필먼트서비스 대표. 이들은 청문회를 앞두고 사망 노동자 유가족과 연달아 합의했다. 합의 과정에서 쿠팡은 유가족들에게 청문회 불출석을 요구했고, 실제 합의 후 유가족은 청문회에 나오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쿠팡의 중대재해 대응 매뉴얼과 합의서는 산재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쿠팡의 전략이 얼마나 치밀했는지 보여준다. 이 전략에 의해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사고와 죽음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만 종합하면, 올해 쿠팡에서 사망한 노동자는 모두 8명이다. 지난 2020년부터로 따지면 최소 29명으로 추산된다.
최근에는 쿠팡 창립자인 김범석 쿠팡Inc(쿠팡의 미국 모회사) 이사회 의장이 노동자 과로사 사실을 은폐하라고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그는 지난 2020년 쿠팡 노동자인 장덕준 씨가 과로사했을 때, "그가 열심히 일했다는 기록이 남지 않도록 확실히 하라"며 쿠팡 임원에게 지시했다. 또 임원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그(장덕준)가 왜 열심히 일하겠나? 말이 안 된다. 그들은 시간제 노동자다. 성과로 돈을 받지 않고, 시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왜 그동안 쿠팡이 노동자와 산재를 왜곡된 관점으로 접근해 비윤리적 대응을 해 왔는지,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병민 변호사는 "그동안 쿠팡이 합의 전략을 많이 썼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밝혀지지 않은 죽음과 드러나지 않는 진실들이 있을 거라고 본다. 쿠팡에서 과로사 문제가 지적된 게 2020년부터였다. 그때부터 이제 좀 시작이 돼서 언론에 보도가 되고 있지만, 이런 사례들은 외부에 드러났기 때문에 나오는 거다. 사건 초기 단계부터 합의를 해서 끝냈으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쿠팡에 연락해 취재진이 입수한 합의서와 같은 형태의 합의서를 추가 작성한 사실이 있는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노동자·유가족과 합의를 했는지, 합의서에 외부 발설 금지 조항을 넣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물었다. 쿠팡은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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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쿠팡Inc(쿠팡의 미국 모회사) 이사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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