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 안젤리코, 수태고지, 1440~1442, 프레스코화, 190 x 164 cm, 피렌체 산마르코 수도원 제3호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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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아치형 회벽에 작은 창문 하나가 난 방. 이른 새벽, 어둠을 뚫고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면, 마치 막혀 있던 벽이 열리듯이 그 옆에 그려진 프라 안젤리코(Fra Angelico·1395~1455)의 벽화가 드러난다. 실제 천장과 마찬가지로 둥근 아치가 이어진 그림 속 공간에서는 성모 마리아 앞에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이 그녀가 하느님의 아들, 즉 예수를 잉태했다고 알리고 있다.
기독교 미술에서 이 ‘수태고지(受胎告知)’는 구세주의 도래를 알리는 가장 기쁘고 영광된 장면이다. 그러나 프라 안젤리코의 천사는 대단히 조심스럽고 차분하며 우아하다. 놀라운 소식을 듣는 성모 마리아 또한 책을 쥔 손을 그대로 가슴에 얹고 무릎 꿇고 기도하던 겸손한 자세로 조용히 신의 뜻을 받아들인다. 성모의 옷은 정갈하고, 주위에는 기도를 위한 나무 의자 이외에 아무것도 없다. 이곳은 신으로부터 권세를 빌려야 하는 왕이나 신에게 구원을 갈구하는 귀족의 궁전이 아니다. 오직 신 앞에 순종과 검약을 서약한 도미니코회 수도사가 홀로 거하는 공간이다. 그러니 그림이 화려하거나 장엄할 리 없다. 산마르코 수도원 2층에는 이러한 독실이 40개 있었고, 이 수도회의 수사(修士)였던 프라 안젤리코가 실내 벽화를 모두 맡아 그렸다.
‘프라 안젤리코’는 ‘천사 같은 수사’라는 뜻이다. 본명과 수도명이 따로 있으나, 화풍이 천사처럼 순수하고 경건해서 사람들은 그를 ‘안젤리코’라 불렀다. 1984년, 교황청에서는 그를 ‘복자 안젤리코’로 공식 시복했다. 성탄은 원래 이처럼 ‘나 홀로 집에’ 조용하고 경건하게 보내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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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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