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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3 (화)

    [글로벌 아이] 스페인이 새해에 비상 삼각대를 버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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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요즘 스페인 운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한 필수템이 화제다. 바로 ‘V16 비콘(beacon)’이라고 불리는 휴대용 비상등인데, 내년 1월 1일부터 스페인에 등록된 모든 차량은 비상 삼각대 대신 이 장치를 의무적으로 구비해야 하는 새 도로교통 안전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스페인 교통총국(DGT)이 수년간 준비해 온 이 제도는 차량의 고장이나 사고 발생 시 도로 위에 삼각대를 세우던 오랜 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 핵심이다.

    V16 비콘은 차량 지붕 위에 자석으로 고정되는 주황색 점멸 경광등이다. 360도 강렬하게 깜빡이는 불빛은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띄고, 무엇보다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은 채 전원을 켜 지붕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된다. 장치엔 GPS와 SIM카드가 내장돼 있어 작동하는 순간 차량 위치가 DGT의 교통 관리 플랫폼으로 실시간 전송된다. 당국과 다른 운전자들이 동시에 위험 상황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설계된 것이다.

    중앙일보

    내년 1월 1일부터 스페인의 모든 차량은 삼각대 대신 ‘V16 비콘’이 필수다. [사진 DGT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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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법이 고안되기 시작한 출발점은 삼각대 자체가 아니라 삼각대를 설치하는 행위다. 고속도로나 간선도로에서 사고 발생 시 차량에서 내려 일정 거리를 뒤로 이동하여 삼각대를 세우는 과정은 늘 위험을 수반한다. 스페인 교통 당국에 의하면 지난 5년간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로 100명 넘는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 DGT는 결국 운전자를 보행자로 만들지 않는 것이 사고를 줄이는 핵심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반응은 엇갈린다. 찬성 측은 삼각대를 들고 도로 위에 서는 순간이 가장 공포스러웠다며 환영하면서 무엇보다 차 안에서 경고를 보낼 수 있다는 점이 큰 변화라고 말한다. 아울러 사고 처리 속도도 빨라지고, 2차 사고와 정체가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반면 반대 의견도 거세다. 전자 장비인 만큼 배터리 방전이나 통신 오류 가능성이 있고, 인증과 비인증 제품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적게는 30유로, 많게는 80유로인 장치 비용 역시 불만 요인이다. 이 장치를 갖추지 않은 차량에는 80유로(약 14만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제도 적용에는 예외도 있다. 스페인에 일시적으로 들어오는 외국 등록 차량은 기존 비상 삼각대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반대로 스페인 운전자가 다른 EU 나라로 여행할 경우, 여전히 삼각대를 챙겨야 한다.

    사고 시 도로 안전을 위한 세계 첫 시도란 점에서 그 취지는 공감되지만 시행의 혼란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고속도로 2차 사고 소식을 심심찮게 접하는 우리로서도 관심 있게 지켜볼 부분이다.

    안착히 글로벌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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