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회장의 '마중물 자본론'
금융은 이미 확인된 길을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아직 열리지 않은 길을 먼저 열 것인가. 박 회장이 여러 차례 강조해 온 “남들이 다 간 뒤에 가면, 그건 금융이 아니다”라는 말은 수사가 아니다. 그의 경영 이력을 요약하는 문장에 가깝다. 위험을 최소화하는 선택이 아니라, 위험을 관리하며 길을 만드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는 뜻이다. ‘마중물’이라는 말에 담긴 책임최근 박 회장이 국민성장펀드 민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한 배경도 이 연장선에서 읽을 수 있다. 국민성장펀드는 의사결정 단계마다 금융·산업계 전문가가 참여하도록 설계됐다. 자본을 행정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장의 경험과 판단을 제도 한가운데로 끌어들이려는 구조다. 박현주는 이 펀드를 이렇게 정의했다.
“150조 원 국민성장펀드는 AI, 로봇, 반도체, 바이오, 인프라 등 기업 성장의 초석이자, 창업을 춤추게 할 마중물이다.” ‘마중물’이라는 표현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중물은 결과가 확인된 뒤 붓는 물이 아니다. 아직 물이 나오지 않을 때 먼저 붓는 물이다. 실패 가능성을 감수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단기 수익의 논리로는 설명되기 어렵지만, 장기 산업 생태계의 논리로는 충분히 설명되는 선택이다. 성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아직 멀리 있을 때에 그를 보고 달려갔다.”
확인된 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이 보일 때 먼저 다가가는 선택이다. 마중물 자본의 논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프로네시스(phronesis), 곧 실천적 지혜라고 불렀다. 계산된 지식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옳은 방향을 선택하는 판단 능력이다. AI 시대 금융에 요구되는 덕목 역시 이 실천적 지혜에 가깝다. 25년의 평가, 그리고 다음 25년에 대한 주문이런 문제의식은 지난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5 아주경제 금융증권대상에서도 확인됐다. 이 자리에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금융감독원장상을, **미래에셋증권**은 한국거래소 이사장상을 각각 받았다. 단년도 실적이 아니라, 일관된 판단과 전략이 축적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박 회장이 민관 공동위원장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지난 25년간 금융에서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온 인물에게, 이제는 국가 성장의 마중물 역할까지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는 과거에 대한 평가이자, 앞으로에 대한 분명한 주문이다. 금융은 이제 질문을 피할 수 없다AI 시대의 금융은 더 이상 중립적일 수 없다. 자본의 선택은 산업의 생사를 가른다. 그래서 금융인의 기업가정신은 위험을 피하는 능력이 아니라, 위험을 어디까지 감당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으로 다시 정의돼야 한다. 국민성장펀드는 하나의 금융 상품이 아니다. 하나의 질문이다.
AI 시대, 한국 금융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감수할 것인가.
빠른 수익인가, 아니면 오래 살아남을 산업인가. 박현주의 ‘마중물’ 발언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이제 남은 것은 실천이다. 금융이 다시 한 번 기업가정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 그 시험은 이미 시작됐다.
[그래픽=노트북L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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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규진 뉴스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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