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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김성재의 마켓 나우] 26년 전 투자 버블, 그리고 최후의 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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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2002년 7월, 미국 제2위 장거리 통신회사 월드컴이 파산했다. 미국 기업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었다.

    1999년 월드컴은 시가총액 1800억 달러로 상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초우량 기업으로 꼽혔다. 매출 370억 달러, 당기순이익 40억 달러를 기록하며 가장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평가되었다. 투자자를 매료시킨 것은 수익성만이 아니었다.

    광대역 인터넷 데이터 통신망 부문에서 경쟁력과 성장성이 돋보였다. 월드컴은 정보통신 인프라의 핵심인 광케이블 네트워크를 선점하기 위해 경쟁사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합병했다. 1998년에는 업계 2위 MCI를 품에 안았다. 월드컴이 구축한 광케이블 네트워크는 수십만 킬로미터에 달했다. 인터넷 사용과 데이터 전송이 광케이블을 따라 빛의 속도로 확산하면서 폭발적 수요가 발생했고, 데이터 통신 수수료만으로도 수익성의 확대 가능성은 무한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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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인프라 투자 속도였다. 월드컴은 미래 성장성이 투자를 정당화할 것이라 믿고 부채를 빠르게 늘렸다. 고금리 정크본드를 발행하고 은행에서 거액을 대출받아 부채가 급증했지만, 영업으로 안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했다.

    여기에 수익 모델을 잠식한 기술 환경의 급변이 결정타를 날렸다. 광케이블의 데이터 전송 속도가 수천 배 향상되면서 주 수입원인 데이터 전송 단가는 불과 몇 년 만에 90% 이상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인프라 투자 비용을 자산으로 처리해 이익을 부풀린 회계 부정까지 드러나면서, 월드컴은 파산을 피하지 못했다.

    반면, 미국 전역에 걸쳐 장거리 전화망과 풍부한 수익원을 갖춘 AT&T는 인터넷 광풍에 느긋이 대처했다. 위험 관리에 초점을 맞춘 신중한 투자 전략을 고수하며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현금흐름을 창출하는 사업에만 투자했다. 월드컴을 비롯한 후발 주자들이 파산하자 통신업계의 남은 시장을 차지하며 전통적 강자 지위를 더욱 공고히 했다.

    오늘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을 둘러싼 인프라 투자에서도 유사한 속도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고가의 AI 반도체와 서버 구축에 수조 달러의 자본이 투입되고 있다. 투자 경쟁을 선도하는 오픈AI는 아직 의미 있는 현금흐름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구글은 게임 규칙을 바꾸려 한다. 그래픽처리장치(GPU) 중심의 엔비디아 제품 대비 비용 효율적인 텐서처리장치(TPU)를 앞세워 시장 재편에 나섰다. 광범한 수익원과 자체 기술력을 갖춘 거대 기업의 본격적인 도전이다. 역사는 26년 만에 다시 반복될 것인가. 이번에는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시장이 주목하고 있다.

    김성재 미국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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