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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26 (금)

    [사설] 정통망법 강행 통과…‘입틀막’ 현실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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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힘 있는 공적 주체 거액 소송 남발 길 터줘





    사실적시 명예훼손은 대통령 발언과 배치



    ‘허위·조작 정보’ 유통에 대해 손해액의 최대 5배까지 배상을 가능케 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의 강행으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에 반대 입장인 국민의힘이 표결에 불참했을 뿐만 아니라 민주당과 정책 공조를 해 온 진보 성향의 소수 정당에서도 반대·기권표가 나왔다. 이 법안을 둘러싼 우려는 진영을 초월한다는 얘기다. ‘허위·조작 정보’를 이유로 정치인·고위공직자·대기업 등 힘 있는 ‘공적 주체’들이 언론을 상대로 거액의 소송을 남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삭제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던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도 되살아나 결론적으로 ‘입틀막법’이 됐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 조항의 경우, 이달 10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에서 삭제하기로 결의한 것을 18일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가 ‘사생활 보호’를 이유로 뒤집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국무회의에서 “있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은… 형사처벌할 일이 아니다”며 “사실적시 명예훼손 제도를 동시에 폐지하는 것을 검토하라”고 공개적으로 말했으나 법사위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이뿐이 아니다. 허위 사실 명예훼손죄의 경우도 제3자에 의한 고발 남용을 막기 위해 과방위가 친고죄로 전환키로 한 것을 법사위가 무산시켰다.

    정치인·고위공직자 등 공적 주체는 징벌적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없게 해야 한다는 언론계와 시민단체의 요구도 끝내 묵살됐다. 자원과 법률 대응 능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선 이들이 언론과 유튜버를 상대로 ‘겁주기용’으로 거액의 소송을 남발하는 ‘전략적 봉쇄 소송(SLAPP)’이 급증할 수 있다. 법원이 남용적 소송을 각하할 수 있다는 특칙을 두었다지만, 사후적 조치에 불과해 소송 자체로 인한 위축 효과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처벌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이 있어 전 세계적으로 줄여 나가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 봉쇄 소송을 막는 ‘안티슬랩(anti-SLAPP)’법이 있는 데다 언론 보도의 ‘악의’는 소송을 제기한 측이 입증하도록 돼 있고, 실제로 그 입증이 무척 까다롭다. 이와 달리, 정통망법 개정안은 허위 보도의 ‘악의’를 사실상 추정하는 구조로서, 공익을 위한 보도라는 입증 책임을 언론에 전가한다.

    이제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 헌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에 이의가 있으면 15일 이내에 재의를 요구(거부권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앞서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의 필요성을 직접 언급한 만큼 그 연장선에서 이번 법안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재의 요구를 포함한 현실적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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