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더 드레서' 개막…정동환·오만석 열연 돋보여
박근형·송승환 공연도 기대…'자유자재 변형' 무대 연출
연극 '더 드레서' 첫날 공연 커튼콜 |
(서울=연합뉴스) 임순현 기자 = "프랑스 왕과 버건디 공을 모셔 오게."
정신이 오락가락하던 노배우가 '최선을 다하라'는 전속 의상 담당자(드레서)의 충고를 듣고 마침내 극중극 무대에 올라 '리어왕'의 첫 대사를 읊자 현실의 객석에서 박수와 함께 환호가 터져 나온다. 시종일관 나약하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관객에게 혐오감을 부추겼던 인물이 본업 현장에 당당하게 나서는 모습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27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더 드레서'는 20세기 후반 최고의 연극 작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영국의 로널드 하우드 대표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벌어지고 있는 1942년을 배경으로 영국의 한 지역 극단이 셰익스피어 '리어왕'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다.
'선생님' 역의 정동환 |
'선생님'으로 불리는 주연 노배우가 공연 직전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고, 공습경보까지 울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선생님의 전속 의상 담당자 '노먼'이 공연을 올리려 고군분투한다. 배우가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한 과정과 그런 배우를 헌신적으로 보필하는 스태프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무엇보다 배우들의 연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이날 첫 공연에서 선생님 역으로 출연한 정동환(76)은 무대 위에선 멋있는 배우지만 무대 아래에선 한 없이 나약한 노인의 모습을 실감 나게 연기했다. '더 드레서' 무대에 처음 오른 날인데도 긴 대사를 한 번도 놓치지 않고 완벽하게 전달하는 정동환의 모습에선 60년 연기 베테랑의 경이로움이 느껴졌다.
2020년 국내 초연 때부터 네 시즌 연속 노먼 역으로 무대에 오른 오만석(50)의 연기도 노련했다. 자기 배우에게 한 없이 자상하고 헌신적이지만, 때로는 질투와 소외감을 느끼는 이중적인 모습을 설득력 있게 풀어냈다. 특히 공연 막바지 인생의 허무함에 원망하고 분노하는 모습에선 무대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다.
'노먼' 역의 오만석 |
극단의 만년 조연배우 제프리 역을 맡은 유병훈(53)의 '힘 뺀'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전쟁에 동원된 후배를 대신해 리어왕의 광대 역을 갑작스럽게 맡게 된 나이 든 조연의 말투와 표정, 심리를 제대로 묘사해냈다. 실제로도 여러 영화와 연극에서 조연으로 활약한 배우의 연기여서 몰입감이 더했다.
주요 출연진이 더블 캐스팅이어서 두 앙상블을 비교해 관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8일 오후 2시 공연에는 선생님 역에 67년 연기 경력의 박근형(85)이, 노먼 역으로 앞선 세 번의 시즌에서 선생님을 연기했던 송승환(68)이, 제프리 역에 송영재(60)가 나선다.
'선생님' 역의 박근형 |
이야기 전개에 맞춰 자유자재로 바뀌는 무대 연출도 돋보였다. 무대 뒤 백스테이지와 분장실 위주로 연극이 진행되다가 순식간에 극 속 작품인 리어왕 무대로 변형된다. 특히 리어왕 1막 부분은 관객이 무대 후면에 앉아 연극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도록 연출해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공연이 올라가기까지 배우와 스태프가 겪는 갈등과 노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다만 공연 도중 독일군의 갑작스러운 폭격을 표현한 장면에선 관객에 대한 배려가 다소 아쉬웠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불빛이 번쩍이는 장면을 사전에 알지 못했던 관객들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여기저기서 목격됐다. 공연 시작 직전 무대 옆 전광판과 안내 방송으로 고지가 됐지만,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이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 한 관객이 많았던 탓이다.
공연은 내년 3월 1일까지 이어진다.
연극 '더 드레서' |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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